그리고 서수진의 질문들
서수진의 첫 번째 앨범이 세상에 나온 날부터 나는 그녀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왔다.
재즈라는 낯선 언어는 내 일상에 침입한 새로운 세계였다. 포크 음악에 익숙한 내 귀에는 서수진의 음악이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낯섦이야말로 흥미였다. 그녀의 음표는 시대를 향한 물음표였고, 그것은 거대한 담론이나 무거운 철학이 아닌, 평범한 날들 속에서 빚어진 질문들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그 물음들이 리듬에 실려 나를 찾아왔다. 처음엔 어리둥절한 실험처럼 보였지만, 곧 음악이라는 언어 속에서 그녀의 질문은 뚜렷해졌다. 그 언어를 이해해 가는 과정은 마치 처음 보는 길을 걷는 여정 같았다. 낯설고도 아름다운 길 끝에서 나는 그녀의 세계에 더 깊이 스며들었다.
서수진의 드럼 소리는 단순한 타격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때로는 음으로, 때로는 언어로, 또 다른 차원의 소리로 다가왔다. 그녀의 연주는 고정된 틀을 깨부수고, 익숙한 질문들을 새롭게 꺼내 들게 했다. 이번 공연에서 나는 음악이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인간에게 필수적인 존재임을 뼛속까지 느꼈다. 소리는 연주자들의 손끝에서 시작되어, 그들의 몸을 통해 살아 있는 실체로 피어났다. 무용수들과의 협업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소리가 몸짓으로 변하고, 관념이 실재가 되는 순간들. 마치 꿈결처럼 펼쳐지는 그 장면들 속에서 나는 인간적 해방감을 느꼈다. 음악적 질문과 해답이 춤으로 구현될 때, 나는 무대 위에서 경이로움을 마주했다. 그것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닌, 온몸으로 느끼는 예술이었다.
서수진의 세계는 왜 그녀를 ‘젊은 거장’이라 부르는지 그 자체로 증명해 보였다.
공연의 한 장면, 또 다른 장면, 그리고 그 사이의 여운. 몇 번이고 되새기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녀의 음악은 단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속으로, 그리고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각자의 신세계’라는 제목이 품고 있는 의미를 이해했을 때, 이 공연이 단순히 흘러가는 소리가 아닌, 한 편의 서사로 완성된 작품임을 깨달았다. 서수진의 음악은 우리 시대가 꼭 필요로 하는 예술적 순간을 만들어냈다. 그녀의 언어로 만들어진 이 세계는 이제 내 안의 또 다른 세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