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여름을 아시나요?
1994년 여름.
몇 달간 지속된 폭염과 가뭄에 지쳐 있을 때였다. 논과 밭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갈라졌고, 들판의 초목도 갈증을 견디는데 모든 집중력을 쏟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인심이 사나워진 동네 사람들은 살인적인 더위에 성난 얼굴을 하고 다녔다. 그런데 그날, 먼 곳에서 한 통의 전화 벨소리가 무거운 몸을 끌고 서서히 다가왔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작은 삼촌의 전화였다.
엄마가 그렇게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하얀 천에 감싼 할머니의 몸뚱이가 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이모들과 엄마는 통곡했다.
이로서 엄마와 아빠는 고아가 됐다.
"느그 아부지는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울었가니? 고모들이 다 울었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음정 박자 없이 홀로 노래하다가 우는 아빠를, 가요무대를 보다가 우는 아빠를, 연속극 보다가 우는 아빠를. 그런 엄마와 아빠를 둔 나는 태어났다. 다른 아이들처럼 앉다, 기다, 걷다, 달릴 수 있게 되었고, 웃고, 울고, 종알거리다가 어느 순간 무럭 자라 요리사가 되었다.
[침묵의 미래] 우리는 모어를 통해 자란다. 세상에는 수많은 언어들이 있지만 우리 각자 소수 언어를 갖게 된다. 부모가 사라지면 말은 내게 남고 그 말은 자식에게 또다시 전해진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가 그토록 울었던 것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말의 고향 때문이었다.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자기 부족의 언어. 아빠 역시 노래를 부르다가, 연속극을 보다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모어의 부재 때문에 울었던 것이다.
[침묵의 미래]는 견딜 수 없는 '말'의 부재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어미는 자식에게 자기 언어를 그렇게 강조하며, 침 튀기며 가르친다. 김애란은 언제나 이 말, 자기 부족의 말로 우리 부족의 말로 돌아가라고 속삭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