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라 그래』양희은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어린 희은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책
올해 70세.
1999년 7월부터~ <여성시대> 라디오 DJ 이자
데뷔 51년 차 가수.
챙겨주고 싶은 이들을 불러 갓 지은 밥을 맛나게 먹이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챙겨주고 싶은 연예인이 있다면!
"얘!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와"
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
51년 차 가수 양희은씨도 코로나 시국의 피해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근 1년 넘게 공연을 못한 것이죠.
생각보다 오랜 기간 무대에 서지 못하자 언제 노래했었는지 까마득했대요.
그리고 불안하더래요.
"다시 노래 할 수 있을까?"
"사람들 앞에 서서 노래 마무리나 할 수 있으려나?"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자 가득 차 있던 객석이 그녀는 너무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부끄럽지만 노래 대신 책으로나마 안부를 전하며,
그리움을 달래기로 한 것입니다.
✔ 1장. 무얼 하며 이 좋은 날들을 보냈나
삶을 관조하는 내용들
(같은 나이대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관한 일화들이 포함되어 있다.)
✔ 2장. 사실 노래에 목숨을 걸진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가정 형편, 빚을 갚기 위해 노래를 시작하게 된 사연, <아침 이슬>과의 인연, 김민기씨와의 에피소드, 가수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 3장. 어떻게 인생이 쉽기만 할까
개인사가 나온다.
(부모의 이혼, 새엄마의 등장. 아버지의 죽음, 가난....)
✔ 4장. 좋아하는 걸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 친구들과의 만남, 주말마다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일, 집밥을 만들어 먹는 일, 남편과의 첫 만남, 청혼 이야기, 애완견 이야기...
✔ 5장. 나답게 살면 그만이지
가수로서의 양희은, 방송인으로서의 양희은 말고도 나 양희은으로서의 삶도 열심히 살거다라고 이야기하는 부분.
(뚜렷한 삶의 주관. 할 말 다 하는 사람. 여자로서 주례 선 일...)
사실 양희은씨는 저희 엄마 시대 가수이기 때문에 그녀를 잘 모릅니다.
방송에서 비치는 모습으로 저는 그녀가 평탄한 인생을 보낸 줄 알았어요.
근데 책을 읽으며 기구한 그녀의 삶을 알게 되었죠.
3장 중에 <가을빛의 굴절을 보며>라는 꼭지가 있는데요.
특히 거기엔 양희은씨가 어려서부터 겪었던 모진 역경들이 적혀있습니다.
「부모의 이혼」
「새엄마의 등장」
「아버지의 죽음」
「새엄마 밑에서 지낼 때 주눅 들고 어려웠던 생활」.
「엄마와 새엄마 사이의 협상」
「그 후 엄마와 다시 함께 살게 됨」
그리고
「엄마의 병」
「빚보증으로 인한 엄마의 사업 실패」
「엄마의 양장점 누전으로 인한 화재」
「몰려드는 빚쟁이 그리고 차압....거리로의 내쫓김.... 」
어린 시절 겪지 않아도 좋을 모진 바람을 참 많이도 겪었더라고요.
그런 환경에서 양희은씨는
매일 긴장과 스트레스에 허덕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희망에 찬 내일이 과연 있을까?'
'천문학적인 이 빚을 죽기 전까지 갚을 수나 있을까?'
'다른 이들도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
그렇지만 모진 바람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맞이한 31살에
「예상치도 못한 시한부 선고와 암 투병」
그 시기 그녀는 진심으로 걱정과 위로와 격려를 보내준 친구가 있었기에 버티며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녀의 노래는 그토록 슬펐나 봅니다.
저희 친정 엄마가 말해줬어요.
양희은씨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슴 아래에서부터 슬픔이 막 쌓여 오른다고요.
그만큼 바닥까지 내려가 아픔에 짓이겼던 사람이기에 노래에 그대로 담겼던 것이죠.
양희은씨가 나이 들어보니 가장 좋은 것은 웬만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래요.
2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삶의 심경의 변화를 말한 구절이 있어요.
늘 긴장된 상태인 데다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나의 20대.
(중략) 서른이 되고 싶었다.
서른이면 두 발을 땅에 딱 딛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서른이 되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흔들림은 여전했다. (중략)
사십대가 되니 두렵고 떨리게 했던 것들에 대한 겁이 조금 없어졌다.
(중략) 왜! 뭐! 하며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할 말은 할 수 있게 되었다.
- 「1장. 무얼 하며 이 좋은 날들을 보냈나」 중, <흔들리는 나이는 지났는데>에서
50대에는 나와 다른 시선이나 기준에 대해서도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하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남 신경 쓰지 않고 내 마음 흘러가는대로살게되었대요.
60대가 돼서야 그토록 원했던 안정감을 찾았는데, 설렘이 없어 침잠되는 느낌이 들었대요.
70대는 대체 무얼 하며 이 좋은 날들을 보냈냐며 많은 나날이 손가락 사이 모래알처럼 덧없이 빠져나간 허망함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해요.
여기서 양희은씨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러라 그래' 하고 넘길 수 있는 여유라고 말해요.
남 신경 쓰지 않고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중요하다고요.
이것에 관해 송은이씨와의 에피소드도 나오는데요
송은이씨가 어떤 프로그램에서 그랬대요.
자기 인생에서 가장 도움이 되고 등대 같은 말이 '그러라 그래'라고요.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자기가 너무나 충격을 받고, 남들이 이래라저래라, 이러쿵저러쿵 흔들릴 때마다 그 말이 자기를 지켜준다고요.
이 시대엔 특히 힐링 에세이로 마음을 다독여 주는 책들이 많이 나오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아프다는 이야기겠죠.
마음을 다독여 주는 수많은 책을 읽다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요.
그건 타인의 시선을 거두고 나에게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의 연장선이 양희은씨가 이 책에서 계속 말하는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인 거 같아요.
70여생을 살며 타인의 평가에 숱하게 넘어지고, 흔들리고, 엉망이 됐던 양희은씨의 인생을 보면서 30대인 저도 나이듦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를 여러 번 곱씹을 수 있었습니다.
4장 중에서 「20년 만에 다시 만난 미미와 보보」
5장 중 「나만의 이별식」이라는 부분엔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그녀에겐 16년, 17년 동안 키운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어요.
강아지들은 나이 들자 아팠어요.
그중에 한 마리는 보보라는 이름을 가졌죠.
보보는 어렵게 신장 수술을 했는 데 간암에 걸려요.
간암으로 강아지는 많이 힘들어했어요.
씹어 먹는 건 일체 거부하고 물만 마시고, 독한 진통제로 안정을 취하지 못한 채 밤새 이방 저방을 돌아다녔죠.
그리고 또 한 마리는 미미인데요.
늙어서 눈이 멀고, 귀도 어둡습니다.
허리는 굽고 뒷다리엔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못 썼어요.
부부는 바빴기에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었어요.
양희은씨는 친정엄마와 같이 살았는데요.
그들이 나간 사이 아픈 강아지를 돌본 건 몸이 성치 않은 90대의 친정어머니셨죠.
늙고 병든 강아지 수발을 무릎 아픈 노모에게 맡기는 건 못할 짓이었대요.
강아지는 아파 힘들어하고,
그런 강아지를 몸이 성치 않은 노모가 보살피는 걸 보며 양희은씨 부부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러다
결심하죠.
강아지 두 마리를 주사 맞혀 떠나보내기로요.
책에는 강아지를 보내기 전의 장면들이 있어요.
전 이 부분에서 울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보내기로 했다.
자연스레 떠날 때를 기다리는 건 서로 못할 일이었다.
그날 아침 자기가 갈 것을 안 듯 출근길에
"잘 가, 보보" 하니까 내가 그렇게나 좋아했던 눈빛으로 한참 새기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보보를 보내고 그날 저녁 남편은 엉엉 울었다.
집에 오니까 너무 생각이 나고 보고 싶다고...
보보를 보낸 후 미미는 몸이 더 안 좋아졌나 봐요.
밥 먹다가도 기절을 했다고 하니까요. 양희은씨는 반년 가까이 고민했어요.
강아지가 자기 몸도 못 가누고 힘들어하는 모습에 미미 역시 주사 맞혀 보내기로 하죠.
그렇게 보보가 떠난 13개월 후 미미마저 떠나보내게 됩니다.
미미를 떠나보내기 전 장면이 있는데요.
역시나 감정이입이 되면서 너무 슬펐어요.
떠나보내던 아침 양희은씨는 미미를 품에 안고 말했어요.
"보보 있는 데로 가. 이젠 떠나라. 더 아프지 말고!"
그랬더니 갑자기 이상한 애기 울음소리를 내더래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소리로요.
전 이 부분에서 울었어요.(지금도 울컥하네요)
그렇게 울었을 강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지더라고요.
긴 세월 함께 했던 가족 이상의 반려견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슬플 겁니다.
몸이 아픈 노모를 위해 서기도 했고,
하루하루 아파서 허덕거리는 강아지가 안쓰러워 결정한 일이기도 하겠죠.
그렇지만
본인 결정으로 세상과의 이별을 시킨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미안함 마음이 클 거 같아요.
그리고 이게 평생 내내 따라다닐 거 같고요.
얼마나 괴로울까요.
그럼에도 긴 시간 고민하며 결정해야 했던 양희은씨 부부의 마음은 오죽했을까요.
전 강아지를 키우지 않아서 그 맘을 완벽히 잘 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 글을 읽고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 이 부분이 잊히지 않고 내내 기억날 거 같아요.
흐뭇했습니다.
이 시대에 여자로서 보고 배울 롤모델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양희은 씨도 그렇고,
요새 윤여정씨도 그렇죠.
그저 본인의 하루하루를 인생의 흐름대로 정성스레 살아낸 그녀들이죠.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깊게 뿌리내린 나무처럼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기 갈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왕언니들의 모습에 저 같은 어린 희은이들은 힘을 받게 됩니다.
이 책은 달콤하다가도 쌉싸름하고, 쓰다가도 구수했습니다.
인간 냄새나는 왕언니의 삶 이야기는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어린 희은이'들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왕언니의 여정을 따라가며 삶을 곱씹는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