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현재 맘스홀릭 엄마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맘스홀릭에 올렸던 글에 다급한 댓글이 달렸다.
'저희가 어제부터 자가격리 시작했는데, 아이 열이 39.6에다가 토까지 해요! 아직 자가격리 담당 공무원도 안정해졌는데, 진료가 가능할까요?ㅠㅠㅠ'
새벽 4시에 달린 댓글을 2시간 후에 발견한 나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어쩌지... 너무 늦게 확인한 거 아닐까?' 마음이 타들어가던 얼마 전 우리의 모습이었다. 그 시간을 그들도 보내고 있을 터였다. '어떻게든 도움을 드려야 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였다. 자가격리 중에 어떤 과정을 통해 응급실에 갈 수 있었는지 될 수 있는 대로 상세히 알려드리는 것.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 꾹꾹 눌러 담아 다급히 적어나갔다. 다 쓰고서도 네댓 번 읽고 빠진 부분은 없는지, 틀린 부분은 없는지와 같은 것들을 확인하며 온 마음을 담아 댓글 달기 버튼을 눌렀다.
그녀에게 대댓글이 달린 건 1시간 반 후였다.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물어볼 데가 없어서ㅠ 지금도 열이 39.6이고, 계속 토하고, 해열제도 안 먹으려고 해요. 물도 안 마시려 하고요.'
상황은 심각했다. 열도 열이지만 아이들은 구토로 탈수와 저혈당이 쉽게 오기 때문에 자칫하면 일이 커질 수도 있었다. 당장 응급실에 가야 하는데, 자가격리로 발만 동동 거리며 어떠한 조치도 할 수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고 싶었으나, 할 수 있는 최선은 1339밖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1339는 24시간 운영되니까 아침 7시 반이라 할지라도 어떠한 도움이라도 주지 않을까. 그녀에게 빠르게 댓글을 달았다.
그 후로도 우린 문자를 주고받듯 댓글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았다. 상황은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1339에서도, 보건소에서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일축한 것도 모자라, 외출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말에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 댓글에 달린 'ㅠ' 표시가 가슴을 징건하게 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나는 어떻게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애가 닳았다. 문득 우리를 응급실에 연결해주셨던 보건소 담당자가 떠올랐다. 진심으로 걱정해주셨고, 격려해주셨던 분. 만약 그분이랑 연결만 된다면 기어코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시기와 시간대 통화 시간을 추려가며 찾다 보니 하나의 번호로 좁혀졌다. 틀릴지도 모르니 확인이 필요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보건소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맞네 맞아. 번호를 확인했으니 그녀에게 알려줄 일만 남았다.
근데 망설여졌다. 혹시.... 공직자 번호 유출과 같은 법에 위반되는 일이 아닌가 싶었던 것. 한참을 머뭇거렸다. 39도를 웃도는 아이, 그 옆에서 마음이 타들어가는 엄마.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대신에 댓글이 아닌 쪽지에 적어나갔다.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가득 채워 보냈다.
답이 없었다. 1시간 후에도, 3시간 후에도, 5시간 후에도. 일과를 보내는 내내 그녀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잘 해결됐을까.' 궁금해하면서도 쪽지 보낼 때 애써 외면했던 걱정들이 불안함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갔다. 알려드린 번호가 도움이 되지 않았으면 어쩌지. 오히려 곤란하게 만든 건 아닐까. 답장이 올 때까지 시험 결과를 기다리 듯 입술을 매만지고, 손톱을 뜯고, 방안을 뱅뱅 돌았다.
그녀에게서 답장이 온 건 다음날이었다.
"저 돌고 돌아 결국 알려주신 번호로 전화했는데, 그쪽에서 병원 연결해주셔서 다녀왓어여 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애타게 기다리던 답장이었고, 그토록 원하던 내용이었다. 내가 알려준 번호가 정말 도움이 될 줄이야. 우리와 통화했던 분이 도와주신 걸까 궁금하다가도, 누구든지 간에 더없이 감사했다. 보내온 쪽지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잠시 그러고 있었다. 내가 만약 글을 안 썼다면 그녀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스쳤다. 내 글이 그녀를 붙잡았고, 그녀와 내가 연결됐다. 결국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쓰는 행위는 나를 넘어 상대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도움을 준다.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픔을 드러내기도 한다. 거기에 이번 일이 추가됐다. 당장에 직면한 위급한 상황에서 실체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걸. 글을 쓰면서 경험하기 힘든 일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이유로 뭉클했다. 자주 오는 뭉클함은 아니므로 내내 품은 채 한동안 지냈다. 내 몸에 기억될 따뜻하고도, 둔중한 감촉을 오래오래 고스란히 기억하고 싶어서. 차차 날아가는 여운일지라도 그 여운이 진하고도 농밀하게 남길 바라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해내려 이맛살을 찌푸릴 테지만, 내 안 어딘가에 진한 자국으로 남는다는 걸 안다. 뭉클함이 나를 찾아오는 길이 어렵지 않길 바라면서. 또 다른 뭉클함을 만나기 위해서. 언제나처럼 보고 듣고 느꼈던 감정에 집중하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채워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