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프롤로그] 더 늦기 전에 운동하기로 했다

33살부터였다. 아이와 나들이만 갔다 오면 뒷골이 땡기면서 무거운 바위가 온몸을 짓누르듯 힘겹기 시작했던 게. 어떨 땐 울렁거려 한동안 누워있어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움푹 패인 뒷골을 엄지와 검지에 힘을 실어 꾹꾹 누르는 일뿐이었다. 손가락이 얼얼해지면서 힘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꾹꾹 눌렀다. 손을 뗄 때면 몸과 머리 사이에 꽉 막혀 있던 것이 뻥하고 뚫리듯 시원한 쾌감이 퍼져나갔다. 머리가 가벼워졌고, 시야가 환해졌다.




근데 지내보니 그랬다. 많고 많은 날 몸을 건사하기 위해 쉼표를 찍기보단, 앞에 놓인 엄마의 일을 해치우기 급급했다. 어서 끝내서 한숨 돌리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하고 또 했다. 외출하고 돌아와서는 힘겨운 몸을 이고지며 땅바닥에 내팽개친 아이들의 옷가지를 주섬주섬 주웠고, 기저귀 가방을 정리했다. 33살 때까진 그나마 해내었으나, 34살부턴 버거울 때가 많아졌다. 거기다 조금이라도 더 움직였다가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들었다. ‘또 왔구나.' 부엌 선반에서 타이레놀 한 알을 꺼내 꿀꺽 삼켰다. 두통은 엄마가 되면서 자주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엄마 8년 차. 아픈 몸을 질질 끌어가며 꾸역꾸역 육아를 헤쳐나간 여러 날의 서러움이 만나고 쌓이는 동안 명확히 깨달은 바가 있다. 내가 아프면 고생하는 건 바로 나란 사실. 아프다고 육아를 대신해 줄 사람은 없다는 사실. 그러니 엄마가 아프면 안 된다는 사실. 내가 나를 잘 챙겨야 했다. 이 사실은 이제 알아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아프면 약을 먹고, 조금 더 아프면 미루지 않고 병원에 다녀온다.




한 생명을 낳을 때마다 체력은 반 토막씩 숭덩 잘려 나가듯 여파가 컸다. 첫째를 낳고선 빈혈과 두통이 자주 왔고, 속이 자주 더부룩했다. 둘째를 낳고선 앞의 증상은 한층 짙어진데 더해 왼쪽 무릎엔 통증이 자주 왔고, 그네만 타도 어지러운 지경이 되었다. 째깍째깍 시간이 흐를수록 잦아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과 어디 나갔다 오는 게 겁나고, 아이들의 텐션에 맞춰 놀아주는 게 버겁다.





체력이라면 자신 있던 나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대학 시절 산업디자인과 과제를 할 때도, 영상 분야에서 일할 때도 밤샘을 밥 먹듯 해도 거뜬하던 나였는데... 이젠 하루라도 밤을 지새우면 다음 날 맨 정신으로 지낼 수 없는 내가 서 있다. 점점 흐느적거리는 팔뚝 안녕살과 더욱 도드라지는 허벅지 뒤쪽 셀룰라이트를 지닌 내가. 싱그러움은 저물고, 몸의 탄력을 잃어가는 내가. 쭉쭉 떨어지는 체력을 온몸으로 느끼는 내가 서 있다.




그럴 때마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어린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운동은 언제나 가장 후순위었다. 워킹맘 일 땐 일하랴 살림하랴, 육아하랴 분주했고, 둘째를 낳고 나선 초기화된 육아로 다른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5일 동안 머리를 못 감기도 했는데 말해 무얼까. 아이를 안고 재우거나, 분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 때 매체에서 운동으로 젊어진 사람, 운동으로 건강을 찾은 사람 이야기를 접할 때면 귀가 솔깃하면서도,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내 품에 안긴 아기를 보고, 분유병을 씻고, 설거지를 했다.




분주한 엄마의 일상에선 운동은 거추장스러웠다. 그래서 걸리적 거리지 않게 옆으로 아예 치워버렸다. 그렇게 시간은 한참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 목욕을 시키기 위해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반바지를 갈아입었는데 신랑이 말했다.



"허벅지 셀룰라이트 진짜 심하다. 어떻게 걸을 때마다 출렁거리지?! 진짜 신기하다~"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새삼 왜 이래?!!"



퉁명스럽게 신랑에게 대답하면서도 머리에선 벼락이 떨어지 듯 번뜩거렸다. 신랑에게 서운해서였다기보단 더는 나를 방치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머리 위로 쿵 떨어졌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바로 다음 날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지금 돌아봐도 그때의 추진력이 신기하기만 하다. 생각해 보면 8년 동안 몸을 방치했다는 속상함과 못한 날의 한이 제법 자란 아이들을 보자 터져 벼렸던 거 같다. 이젠 아이를 안고 재울 일도 없고, 새벽에 여러 번 깨날 일도 없다. 무엇보다 두 아이 모두 기관에 가기 때문에 예전보단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나만 마음 먹는다면, 엄마의 일상에 운동을 끼워 넣기엔 충분했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려니 두근거렸다. 묵은 체증을 쫘~악 쫘내듯이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본 게 언제였더라. 그때의 개운함을 다시 느끼려니 설레었다. 들뜬 마음으로 어떤 운동을 할지 생각했다. 전업주부에다가 운동 초짜인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운동엔 조건이 몇 가지 따랐다.



- 돈이 들지 않아야 한다

- 집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

- 육아의 변수로 운동 일정이 들쑥날쑥하더라도 차질이 없어야 한다

- 시간이 날 때 후딱 끝낼 수 있어야 한다

- 기구가 필요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건 맨손 홈트였다. 운동 종류가 정해졌으니 이젠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는 일만 남았다. 손만 뻗으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산다는 게 그 어느 때보다도 감사했다. 운동 초짜다 보니 시간이 길고, 난이도가 높다면 꾸준히 하기 힘들 듯하여 10~20분 안짝의 운동으로만 검색했다. 그 결과 땅끄부부의 '전신 다이어트 시리즈’와 소미핏의 '18분 복싱 카디오', 핏블리의 '홈트레이닝 시리즈'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젠 꾸준한 실천만이 남았다.




‘근데 혼자서 어떻게 꾸준히 하지?’



순간 ‘블로그 100일 챌린지’가 생각났다. '옳거니! 너로 정했어!' 여러 사람에게 공표한다면 중간에 포기하진 않을 듯했다. 운동 챌린지까지 정해졌으니 이젠 운동 목표를 정리할 일만 남았다. 꾸준히 하기 위해선 에너지를 비축할 시간이 필요하다 여겼다. 이로써 주 5~6일 하루 20분! 맨손 홈트 100일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이 글들은 맨손 홈트를 시작하면서부터의 기록이자 변화되는 모습에 관한 기록이다. 글을 쓰는 오늘은 맨손 홈트 21일차다. 갈 길이 멀다. 100일 후엔 어떤 변화가 있을지 나 역시 궁금하면서도 염려된다. 변화가 없으면... 어쩌지...




비록 20분 운동 일지라도, 꾸준함의 힘은 강하다고 믿는다. 혹여나 큰 변화가 없을지라도 홈트를 한 100일이란 시간은 분명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줄 거라 믿는다. 체력이 생기면 지금의 나보단 나아져 있을 거라고 여기며 그저 나아가 본다.




- 2021년 12월 17일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