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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Mar 05. 2023

스타트업의 성공 공식을 알려드립니다

에릭 리스의 <린 스타트업> '유효한 학습'을 위해 지루한 일을 반복하라

"전혀 해서는 안 될 일을 매우 효율적으로 하는 것만큼 무용한 짓은 확실히 없다.(There is surely nothing quite so useless as doing with great efficiency what should not be done at all)"

- 피터 드러커, <린 스타트업> (283P)


누군가 스타트업에 대해 알고 싶다며 책을 딱 한 권만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아마도 에릭 리스의 <린 스타트업>을 고를 것 같다.


이 책은 스타트업을 처음 창업해 성공시키기 위한 단계별 '실전 매뉴얼'이라 할 수 있다. 스타트업을 경영하면서 사업의 각 단계별로 어떻게 대응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스타트업계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들, 왜 MVP가 가장 우수한 운동선수(Most Valued Player)가 아닌 최소요건제품(Minimum Viable Product)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 배우게 되는 건 덤이다.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이란 이름은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혁신적인 생산 방식인 린 제조(lean manufacturing)에서 영감을 받았다. 스스로 IMVU란 스타트업을 창업했던 저자 에릭 리스는 "스타트업의 성공은 좋은 유전자의 결과나 시기, 장소 때문이 아니다. 올바른 프로세스를 따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프로세스는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인 만큼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매뉴얼을 충실히 따르면 스타트업을 성공시킬 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철학이다.


그런 점에서 '스타트업을 성공시키는 공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피터 틸의 <제로 투 원> 같은 책과는 접근 방식이 많이 다르다고 하겠다. 실제로 피터 틸은 <제로 투 원>에서 스타트업계에서 '린 스타트업' 방법론이 유행하는 데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인 <비전>에서는 창업가와 스타트업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스타트업에 필요한 '유효한 학습'이란 개념에 대해 소개한다. MVP나 피보팅 같은 익숙한 용어가 등장하는 2부에서는 '만들기-측정-학습'으로 이어지는 린 스타트업의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 살펴본다. 3부 <가속>에서는 말 그대로 속도를 내 사업을 성장시키는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에릭 리스의 <린 스타트업> 표지


불확실성, 스타트업을 가르는 전제 조건


에릭 리스는 스타트업 경영을 도로 상황에 따라 변수가 많은 '자동차 운전'에 비유한다. 차를 운전하는 것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다. 스타트업의 목적지에 해당하는 것은 '비전(Vision)'이다. '클릭 한 번만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구글처럼 스타트업의 비전은 '세상을 바꿀 만한 사업을 일으키겠다'는 담대한 계획을 담고 있다.  


스타트업의 목적지에 해당하는 '비전'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 전략의 결과물인 제품이나 서비스는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이는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할 때 미리 '목적지'만 정해놓을 뿐 어디서 차선을 바꾸고 멈춰야 할지 같은 세세한 부분은 도로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대응하는 것과 같다. 스타트업 경영은 달 궤도 진입에 성공한 '다누리호' 로켓 발사처럼 사전에 모든 것이 계획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에선 스타트업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스타트업이란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 신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려고 나온 조직"으로 정의된다. 혼잡한 도로처럼 불확실한 환경이 스타트업을 기존 기업들과 구분하는 전제조건인 것이다. 여기서 회사의 규모나 사업분야는 상관이 없다. 대기업의 신규사업 부서나 비영리 조직도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다면 얼마든지 스타트업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다 보니 스타트업에 표준적인 예측모델을 적용하거나 대기업처럼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시장을 예측하는 건 소용이 없다. 상황에 맞게 운전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를 '유효한 학습(validated learning)'이라고 부른다. 유효한 학습이란 '실제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을 말한다.

에릭 리스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활동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며 "유효한 학습은 진짜 고객으로부터 나오는 실제 데이터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린 스타트업에서 고객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가치' 있는 행동이고 그 외엔 모두 '낭비'인 셈이다.    


유효한 학습은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이뤄진다. 실험을 할 때는 먼저 예상되는 결과를 예측하는 '가설'을 세운다. 또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가려면 먼저 실험에 사용할 '도구'가 있어야 한다. 도구를 사용해 실험을 마쳤다면 그 결과를 제대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실험을 통해 측정한 결과를 애초 가설과 비교해 봄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학습'을 하게 된다. 이처럼 만들기-측정-학습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loop)를 반복하는 지루한 작업이 스타트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핵심이다.


회사의 존폐를 좌우할 '가장 위험한 가정'은 무엇인가


스타트업이 검증해야 할 가설(hypothesis) 혹은 가정(assumption)엔 여러가지가 있다. A라는 기능을 개발했는데, 이 기능이 고객의 회원가입률을 늘릴 것인지에 대한 검증부터 회사의 존폐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가정도 있다. 책에선 이를 '신뢰의 도약(leap-of-faith) 가정'('가장 위험한 가정'으로 번역)으로 명명했다.


이러한 가정이 사실이라면 사업적으로 엄청난 기회가 기다린다. 반대로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면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 제품이 과연 만들 가치가 있는가?”를 묻는 '가치 가설'과 “이 제품과 서비스를 기반으로 우리가 지속 가능한 사업을 만들 수 있는가?”를 묻는 '성장 가설'이 있다. 스타트업이 이 두 가지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고객이 외면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는 셈이고, 이런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존속할 수 없다.


가장 위험한 가정을 포함해 사업에 필요한 어떤 가설(가정)들을 검증할 것인지 결정했다면 이젠 실험에 나설 차례다. 실험은 구체적으로 '만들기-측정-학습' 피드백을 반복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기능을 개발하고 그 성과를 측정한 뒤 이를 유효한 학습으로 만드는 과정이 바로 실험이다. 특히 실험에는 도구가 필요한데, 최소요건제품(혹은 최소기능제품)이라고 불리는 MVP(Minimum Viable Product)가 바로 그것이다.


MVP의 목표는 빠르게 실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능은 빼고 고객의 구매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 정도만 담은 채로 출시한다. 책에선 "의심스럽다면 단순하게 만들라"고 조언한다. 다만, 내부적으로 품질 검증을 위해 제작하는 '시제품'과 달리 MVP는 시장에 출시해 고객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 목적이다. 아무리 품질이 조악하더라도 일단 시장에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에릭 리스는 "MVP의 목적은 학습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지, 끝내는 것이 아니다. 그 목표는 근본적인 사업 가설을 테스트하는 것"(90P)이라고 말했다.  


MVP의 MVP '페이스북', 모객부터 한 '드롭박스'와 '토스'


스타트업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MVP 사례는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가 하버드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취미 삼아 만든 일종의 인맥 쌓기용 프로그램이었다. 개인의 간단한 프로필을 기반으로 서로 친구를 맺고 댓글을 남길 수 있도록 한 몹시 단순한 형태의 SNS 서비스로 출발했다.


페이스북은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절반이 넘는 사용자가 매일 사이트에 접속할 정도로 일찌감치 서비스의 '가치'를 입증했다. 특히 광고비를 한 푼도 쓰지 않고도 서비스 개시 한 달 만에 하버드 학부생의 4분의 3이 사용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금세 다른 대학들로 확산됐다. 온라인 인맥 형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 갖추고도 만들 가치가 있고, 지속 가능한 사업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때론 제품(서비스)이 개발조차 안 된 상태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이런 기능을 가진 제품이 있다면 사용하겠냐'는 식으로 고객의 니즈부터 파악한 뒤 실제 제품 개발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스모크 테스트'라고도 한다.


책에 소개된 미국의 '드롭박스''파일 동기화'라는 제품의 기능을 시연하는 짧은 동영상을 IT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웹사이트에 올려봄으로써 고객의 수요를 파악했다. 드롭박스의 위험한 가정은 '뛰어난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드롭박스를 써보려 할까'라는 질문이었다.


드롭박스는 '파일 동기화'라는 강력한 기술을 보유했지만 이런 생소한 기술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드롭박스의 창업자들은 좋은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고객은 알아서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런 제품이 있다면 고객들이 사용할 것인지 실험해 보기로 했다. 기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여주는 3분짜리 동영상을 IT 마니아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 올렸고, 하룻밤 사이에 수 만 명의 희망 고객을 확보했다.


국내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지금은 인터넷은행과 증권사를 거느린 금융플랫폼이 된 토스(toss)다. 토스는 '사람들은 간편한 송금 서비스를 원한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이틀 동안 1만원을 들여 간편 송금에 대한 수요를 묻는 페이스북 광고를 실시했다. 이 광고는 약 6000명에게 노출돼 35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24명은 광고를 클릭해 봤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는 이 정도면 간편 송금에 대한 고객의 '니즈'가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 간편 송금이 가능한 '제품(서비스)'은 만들지도 않은 채 광고 MVP 테스트를 통해 위험한 가정을 검증한 것이다.


혁신 회계로 측정하고 '고-스톱'을 결정하라


MVP를 출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성과를 제대로 '측정'하는 것이다. 제대로 측정하지 않으면 실제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내는 '유효한 학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측정하기 위한 도구로 린 스타트업에서는 혁신 회계(Innovation accounting)란 개념을 제시한다.


책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혁신회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혁신회계에서 사용하는 구체적인 지표 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나와있지 않다. 다만,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같은 전통적인 회계방식으로는 스타트업의 성과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스타트업의 현실에 맞는 지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혁신 회계'의 요지다. 이와 달리 외견상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회사의 현실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해 회사가 성장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는 지표는 허무지표(vanity metrics)로 표현한다. 실제로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고객 등이 섞여있는 '총 고객수' 같은 지표가 그런 경우다.


쿠팡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만약 쿠팡이란 회사의 가치를 '영업이익'으로 측정했다면 만성 적자인 회사가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것은 물론, 초기에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쿠팡의 경쟁력은 대한민국 거의 모든 가정이 사용하는 플랫폼으로서의 네트워크 효과에 있다. 따라서 쿠팡의 가치는 영업이익이 아닌, 1주일 혹은 매일 쿠팡 앱에 들어와서 결제하는 활성 사용자 같은 지표를 통해 측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이 혁신 회계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MVP를 시장에 출시한 뒤 혁신회계를 통해 '측정'해 유효한 학습을 했다면 이젠 중대한 결정을 내릴 차례다. 한마디로 '고(go)'냐, '스톱(stop)'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위험한 가정이 유효한 것으로 나타나 회사가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면 이 상태를 밀고 가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바로 지금 가던 방향으로의 진행을 멈추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에서는 이와 같은 '방향 전환'을 '피봇(pivot)'이라고 한다. 피봇은 한 발을 축으로 고정한 상태에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처음부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까지 학습한 데이터를 토대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


피봇의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현재 제품이 갖고 있는 기능 중 특정 기능에 초점을 맞춘 제품을 출시하는 경우(줌인 전환), 제품은 그대로 두고 영업이나 마케팅을 하는 대상 고객을 바꾸는 경우(고객군 전환) 등이 있다. 중요한 건 고객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그것을 제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회사를 운전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성장 엔진'을 찾아라


MVP를 통해 제품의 가치가 입증되었다면 이젠 이를 밀고 나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단계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유효한 학습'을 계속해야 한다는 점이다. 에릭 리스는 "린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질문은 어떤 행위가 가치를 창조해 내고, 어떤 행위가 낭비를 만들어내는지 알아내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적절히 기초를 세워두면 린 스타트업이 확정해 갈 때 기민함, 학습 지향, 혁신 문화를 유지하면서 큰 회사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회사를 성장시키는 단계에서 경계해야 할 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큰 일괄작업'(large batch)으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기능을 추가한 새로운 버전의 제품을 출시하느라 몇 달씩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내부에서 진행하는 작업 기간이 길어지면 그동안 고객에게 검증을 받을 수 없고, 나중에 가서야 결국 (고객이 전혀 원하지 않는) 쓸데없는 일을 벌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의 성장의 핵심은 '지속가능(sustainable)'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계속해서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갈 성장 엔진(growth engine)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아내야 한다. 성장 엔진은 이벤트를 통해 유입되는 고객처럼 일시적이고 1회적인 활동을 제외하고 눈덩이가 언덕을 굴러내려 가듯 스스로의 동력으로 지속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인지를 가늠하기 위해선 "새로운 고객은 기존 고객의 행동에서 나온다(New customers come from the actions of past customers, 214P)"는 명제를 명심해야 한다. 기존 고객들이 어떤 방식으로 제품을 사용하는지를 보면 어떤 방식을 성장 엔진으로 삼아야 할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에릭 리스는 스타트업 성장 엔진의 유형을 3가지로 제시했다. 재방문에 의한 성장, 바이럴(입소문)에 의한 성장, 유료 성장을 통한 경우다.


재방문에 의한 성장 엔진


먼저 재방문에 의한 성장(The Sticky Engine of Growth)은 특성상 고객이 그 제품을 한 번 쓰면 어지간해선 다른 제품으로 갈아타기 힘들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재구매(retention)가 일어나는 경우다. 예를 들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사업을 하는 회사의 경우 고객이 한번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비용이나 시간 때문에 금세 다른 제품으로 갈아타기가 어렵다.

카카오톡의 경우도 대규모 서비스 중단 사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다시 카톡을 사용하게 됐다. 처음 사용한 제품(서비스)에 갇혀 버리는(lock-in) 것이다.


이런 회사에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지표는 자연 감소율(attrition rate) 혹은 가입 해지율(churn rate)이다. 이런 유형의 스타트업에서는 새로 유입되는 고객이 해지하는 고객보다 많으면 성장한다. 이런 유형의 회사가 신규 고객 유치에만 집중해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이보다는 제품의 기능을 더 매력적으로 개선하는 등 기존 고객을 잡아두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 효과적이다. 독의 밑바닥을 고쳐서 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옳은 방향이란 얘기다.


바이럴 성장 엔진


바이럴 성장 엔진(The Viral Engine of Growth)은 고객의 입소문이나 추천을 통해 제품이 성장하는 방식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고객이 또 다른 새로운 고객을 데려오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한 핫메일이 대표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되기 전 핫메일은 마케팅 비용이 부족한 조그만 스타트업이었다. 이 회사의 성장은 이메일 마지막에 "P.S. Get your free e-mail at Hotmail"이라는 문구가 적힌 링크를 달아두면서 시작됐다. 이메일을 받아본 사람들이 링크를 타고 신규 고객으로 가입해 6개월 만에 100만명이 넘는 신규 고객을 유치한 것이다.


바이럴 성장의 경우 고객 한 명이 몇 명의 신규고객을 데려오느냐가 관건이다. 고객 1명이 1명(바이럴 계수가 1.0) 이상을 데려오면 회사는 성장할 테고 그보다 적으면 성장은 정체된다. 즉, 고객 10명 중 1명만 새로운 고객을 데려온다면(바이럴 계수가 0.1) 금세 성장은 벽에 부딪히게 된다. 이런 유형의 성장 엔진을 장착했다면 고객이 새로운 고객을 쉽게 데려오도록 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구독 같은 유료화 대신 광고를 유치해서 수익을 내는 모델을 채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유료 성장 엔진


유료 성장 엔진(The Paid Engine of Growth)은 돈을 써서 고객을 유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무작정 광고 같은 마케팅 예산을 늘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 같은 방식을 채택하려면 먼저 고객 생애 가치(lifetime value, LTV)를 따져봐야 한다.


LTV란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는 동안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총금액을 말한다. A라는 회사의 고객은 한 달에 1만원짜리 서비스에 평균적으로 2년간 가입한다고 하면 LTV는 24만원이 된다. 이 경우 광고나 신규 가입 시 경품 등을 제공해 신규 고객 1명을 유치하는 비용(cost per acquisition, CPA)이 24만원보다 적다면 광고나 경품으로 고객을 끌어들여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 이 방식은 스타트업뿐 아니라 일반 기업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국내 통신사들이 대표적이다. 휴대폰 보조금 등을 통해 사실상 고객에게 현금을 지급하면서 신규 고객 유치에 나서는 것이다. 대신 24개월 약정 같은 조항을 적용해 장기간에 걸쳐 비용을 회수한다. 일단 통신사를 선택하면 같은 번호를 계속 쓰기 위해서라도 다른 통신사로 갈아타기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피터 틸이 창업한 미국의 결제시스템 '페이팔'도 사업 초기에 신규 고객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대규모 성장을 이뤄냈다. 페이팔의 경우엔 초기엔 결제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 페이팔을 온라인 결제시스템의 표준으로 만들어놓으면 장기적으로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현금을 통한 성장이란 승부수를 띄울 수 있었다.


이상의 3가지 성장 엔진 가운데 2가지 이상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에릭 리스는 "내 경험을 봤을 때 성공적인 스타트업은 대개 단 한 가지 성장 엔진에 집중하고 그 성장 엔진이 돌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에 특화한다"며 한 번에 한 가지 성장 엔진에 집중할 것을 권고한다.


우리 제품은 시장에 적합한가(product market fit)


모든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과연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 market fit)'을 찾아냈는지다. 만드는 족족 팔려나간 포드의 T모델 자동차나 한 달 만에 하버드 전교생 4분의 3이 사용하게 된 페이스북처럼 누가 봐도 시장에 맞는 제품이 명백한 사례도 있지만 대다수 스타트업은 제품가 시장의 적합성 여부가 주관적인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성장 엔진이란 개념은 스타트에 출시한 제품이 시장에 맞는지를 판단하는 보다 객관적인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바이럴 계수나 LTV(고객생애가치)와 CAC(고객획득비용) 간의 비교처럼 수치화된 지표를 통해 회사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시장을 찾았느냐이다. 스타트업이 애초에 너무 작은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면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 매출규모가 100억원인 시장을 독점하는 것보다 매출 1조원 시장에서 당장 1%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이 훨씬 유망하다. 같은 100억원을 벌더라도 후자는 성장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시장과 성장 엔진을 찾았더라도 안심해선 안 된다. 성장 엔진은 언젠가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애초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스타트업의 환경은 스타트업이 성장해 나가는 동안에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달라진 환경에서 기존의 전제를 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한다면 '유효한 학습'이 불가능해진다. 스타트업이 유효한 학습을 멈추는 순간, 고객과 시장으로부터 멀어지고 경쟁력을 잃게 된다.



'유효한 학습'이 핵심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마라"


이 책의 후반부는 고객에게 충분한 가치를 제공하는 매력적인 제품을 토대로 성장 엔진을 확보한 스타트업이 어떻게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성장하고 적응해 나갈 수 있는지, 나아가 규모가 커진 스타트업이 파괴적 혁신을 통해 정체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지를 다룬다. 네이버나 카카오처럼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기업들이 공룡으로 성장한 뒤에도 혁신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한 조직관리 방법 등에 대한 내용이다.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내용을 다룬 책들은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린 스타트업>에 등장하는 개념과 용어는 스타트업계에서 일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친숙하거나 적어도 들어본 적이 있는 내용들이다. 이 책에서 다룬 요소요소가 스타트업계의 일상에 스며들어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스타트업의 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다양한 통찰을 주는 책이지만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맨 위에 소개한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마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애초 불확실한 환경에서 출발해 이상(理想)은 높되 시간과 자원은 한정된 스타트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꼭 필요한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핵심은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유효한 학습'을 반복하는 데 있다.


저자 에릭 릭스는 "혁신적인 제품의 성공 확률을 전 세계적으로 높이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말했다. <린 스타트업>은 그 방법론을 정리한 책이다. 책이 발간된 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스타트업의 성공 공식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스타트업은 물론 이제는 대기업들도 책에서 소개한 방법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챗GPT'에게 '린 스타트업이 여전히 스타트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유효한 접근방식이라고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대답은 'Ye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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