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렇지도 못한 좀비 영화, #살아있다
새로운 것은 항상 설렌다. 극장도 그렇다. 매번 가는 곳만 가다가 처음으로 여의도 CGV를 갔다. 약속까지 딱 영화 한 편을 보기 좋은 시간이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영화관엔 사람이 없었고 그 덕분에 원래 럭셔리 해 보이는 여의도 CGV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영화관 자체가 왠지 프리미엄 급의 영화관이라 색다르게 느껴지던 찰나에 #살아있다가 유일하게 시간이 맞는 영화였다. 내가 또 좀비 영화엔 환장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딱딱 맞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정말 별로였다. '킹덤 2'를 볼 때처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2시간 킬링타임용으로 가볍게 생각했음에도,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영화는 수준 미달이었다.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냥 바로 떠오르는 이유를 몇 가지 적어보겠다.
라는 물음이 들 정도로 내용이 빈약하다. 아니 뭐라 표현해야 적절할지 모르겠다. 그냥 별로다. 요약하자면 아파트에 고립돼 그 아파트를 탈출하는 내용인데, 동료를 만나거나 생존에 필요한 템들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 옮기며 구출되는 과정이다. 마치 로빈슨 크루소의 무인도 표류기가 좀비와 함께인 아파트 버전으로 변한 느낌이다. 내 생각엔 영화가 아니라 이건 차라리 게임으로 만들었다면 더 흥미로웠을 거다.
그리고 중간에 나타나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나름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뜬금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인물은 아파트 내에 주인공 일행(유아인, 박신혜 분) 외의 생존자인데 그의 아내가 좀비가 된 까닭에 주인공들을 유인해 좀비가 된 아내의 먹이로 주려고 한다. 근데 그게 진짜 어떤 사전 암시나 떡밥도 없이 등장하는 사건이라 개연성이고 뭐고 그냥 뜬금없다. 마치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해, 특히 기승전결에서 '전' 부분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기 위해 작위적으로 삽입한 에피소드 같다랄까. 캐릭터와 사건 전개에 대해 연구가 시급해 보인다.
또 하나 어처구니가 없던 것은 역시 결말이다. 안 좋은 의미로 기억에 남는다. (보통 내 기준에 영화를 보고 기억에 남는다고 표현하는 것은 인상 깊다는 뜻이다) 요컨대 좀비들을 피해 옥상까지 올라간 주인공들은 절체절명의 순간, 헬기에 의해 구조된다. 엑시트처럼 옥상에서 '따따 따따따'와 같은 열렬한 구호를 외쳐댄 것도 아니고 구조 요청을 위해 그동안 애쓴 것도 아니기에 논리적으로 납득이 불가하다. 또 그렇다고 감정적 여운이 남거나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인물들 감정선이 중요하지도 않았으며 또 그렇다 한들 그것을 겹겹이 잘 쌓아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결말은 그냥 신파스럽다. 주인공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은 감독이 논리 혹은 감정, 둘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생긴 불상사다. 그러니까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좀비 소재의 재난 영화는 관객이 인물과 동화되어 그 스릴을 즐기는 맛에 본다. 그러려면 그 안의 세계가 제법 리얼해야 한다. 근데 이 영화는 정말이지 그렇지 못하다. 일단 좀비 영화의 기본이자 기본인 '분노 바이러스의 원인과 배경'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다. 그냥 방 안에서 게임 중인 주인공에게 한 순간에 닥친 현실로 설명 끝이다. 이렇게 불친절하다니. 감독은 정녕 관객들이 어떤 부분을 궁금해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 그 부분 말고 다른 곳만 긁어댄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바이러스의 배경이니 뭐니 안 궁금하고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는 게 더 중요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 헤쳐나가는 과정이 너무 엉성하다. 물도 전기도 끊긴 집에 휴대폰과 컴퓨터로 라이브 방송과 게임은 웬 말인가. 집에 칩거한 지 한 달이 다 돼가는데 항상 멀끔한 주인공들은 또 웬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헬기가 그렇게 가까이서 구출하러 등장하는데 주인공들은 그 소리를 못 들었을까. 들었다면 그렇게 쥐어짜 내기 식의 감정 연기는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이라이트는 유빈(박신혜 분)이 단검 한 자루로 좀비들을 학살하는 장면이다. 좀비 소리에도 벌벌 떨던 유빈에게 갑자기 청룡언월도를 든 관우 영혼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어찌 한 순간에 그리 용맹해질 수 있단 말인가. 유빈이라는 인물은, 실로 감독의 놀라운 캐릭터라이징을 거쳐 탄생했을 것이다.
워킹데드부터 킹덤, 심지어 곧 개봉 예정인 반도까지. 예나 지금이나 좀비물은 항상 인기인, 책에 비유하자면 스테디셀러다. 그런 좀비물이 별 특징 없다? 그냥 평범하다? 이러면 망작이다. 내 생각엔 좀비란 소재가 흥미롭다는 것에 기대에 평범한 좀비물은 만드는 것은 영화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나는 좀비물은 과하다 혹은 괴이하다 싶을 정도로 파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좀비 비디오 테이프 속에 파묻힌 그저 그런 좀비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근데 이 영화는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 외에 다른 특징이 없다. 그래서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가 주요 셀링 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 몇몇 장면에서는 밀폐된 공간이 주는 답답함이 좀비와의 결합을 통해 공포감을 부스트 시키긴 했다. 특히 주인공 시점 샷을 통해 언제 어디서 좀비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감과 갑자기 나왔을 때의 스릴은 어느 정도 있었다. 이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아파트라는 공간, 즉 미로와 같은 이 공간을 하나의 큰 틀로서는 활용하지 못한 것 같다. 하나의 맵처럼 사용하여 전략 게임처럼 연출했더라면 좀 더 짜임새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영화를 보며 '스위트홈'이라는 웹툰이 생각났다. 괴물에게서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의 생존기인데 주요 무대가 아파트다. 1시간 반짜리의 이 영화보다 140화 이상의 이 웹툰이 훨씬 길었음에도 웹툰 보는 시간이 내게는 훨씬 짧게 느껴졌다. 아파트라는 공간 활용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또 이 영화에서 좀비가 된 인간들이 개별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설정(예를 들어 소방관 좀비가 아파트 외벽을 잘 타는 것)은 스위트홈의 괴물들이 개별 욕망에 따라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과 일맥상통하다 생각하는데, 결정적으로 스위트홈은 이 부분이 굉장히 매력적인데 #살아있다는 이걸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이 또한 패착일 것이다.
쓰다 보니 영화에 대한 욕만 주구장창 늘어놓게 됐다. 사실 큰 기대를 안 하고 봐서인지 실망도 크지 않았다. 때문에 이렇게까지 욕할 것은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아무튼 내 두 시간을 잘 때우게 해 준 건 감사하다. 그럼에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살아있다, 별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