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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섭 Jul 26. 2020

테크니션과 프로듀서는 다르다

[인턴 일기] 여섯째 주 2020.07.20~2020.07.24

저번 주엔 일기를 못 썼다. 게으른 탓이다. 기억을 되살려 써볼까 했지만 이미 휘발되어버린 그 날 그 날의 감정을 복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비록 생생한 감정을 기록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일주일의 기록을 통째로 날리기 싫어 간단히 적어본다.


2020.07.13 - 2020.07.17 [다섯째 주]

일단 근무 5주 차만에 프로그램 라이브 방송을 구경 갔다. 대본 리딩부터 스튜디오 생방, 그리고 스태프들이 일하는 부조정실까지 방송국 견학 온 줄 알았다. 10년만 일찍 왔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었다. 막차 시간 때문에 다 못 본 게 살짝 아쉬울 만큼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런데 한 번이면 족한 것 같다.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 눈치가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다음 날은 아무래도 생방 구경의 여파로 굉장히 피곤했다. 네 시간 정도 자고 간 것 같은데 하루에 이 정도 자는 걸 밥 먹듯이 하는 예능 드라마 피디를 지망하는 게 아이러니 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엔 스터디 멤버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처음 꾸렸던 스터디이고 오래 봐서인지 나름 끈끈한 멤버들이다. 몇 번 가보지 않은 이태원에서 만났는데 얘네 아니었으면 이태원 루프탑 카페에 올 일은 없었을 거다. 그걸 생각하니 멀지만 이렇게 서울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다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래도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새삼 위안이 되는 것 같다. 다음번 모임엔 다 같이 좋은 소식도 함께 곱씹었으면 좋겠다.


어이없게 한국경제 필기를 붙었다. 바짝 면접 준비를 하려고 경제 프로그램이랑 유튜브를 모니터하고 기획안을 썼다. 경제 분야라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준비는 했다. 근데 다 무용지물이 될 것을 이때까진 몰랐다. 다시 돌아간다면 이 준비한 삼일의 시간이 아까워 그냥 체육관 가서 운동할 거다.



2020.07.20


이렇게 힘 빠지는 면접은 처음이었다. 내게 주어진 것은 질문 세 개와 체감상 10분 남짓의 시간이었다. 내 기획안 발표 후, 질의응답에서 황당하다는 면접관들의 실소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물론 내가 경제라는 분야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안다. 그럼에도 너무 짧고 심지어 민망하기까지 했던 이런 면접을 겪으니 면접 준비한 지난 3일이 허탈하기만 하다. 합격의 가능성은 정말 0.1도 없다. 어이없으면서 황당하고 동시에 무관심한 면접관들에 대한 그 기억들은 마치 영화 장면처럼 머릿속에 남을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하게 받은 면접비 3만 원으로 위안 삼아야겠다.



2020.07.21


하루가 굉장히 빠르게 지나갔다. 근무부터 회의, 오랜만의 만남과 운동까지 오래간만에 스케줄로 꽉꽉 찬 날이었다. 운동하다 현기증 날 정도로 체력적으로 지치는 날이었지만, 그래도 바쁜 게 할 일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리고 역시나 면접은 떨어졌다.


거의 8, 9개월 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분위기가 좀 달라져 있었다. 시간이 사람을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보고 싶었고 오랜만이었지만 과거의 그 분위기랑은 좀 달랐다. 그때의 모습이 살짝 그립기도 하다.



2020.07.22


이번 주는 계속 친구를 만났다. 한강에 가기로 했으나 비 와서 실내에 있었다. 온 더 보더에 처음 갔는데 나름 괜찮았다. 가격이 꽤 있었지만 진짜 별로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요즘 하나하나 계산 따지는 것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서일까.


어제 친구에게 들은 내 앞머리에 관한 얘기를 해줬더니 내 머리가 쥐 파먹은 것 같다는 말에 그 친구도 동의했다. 이러면 문제가 있는 거다. 그래서 과감하게 헤어스타일을 바꾸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말마따나 자기를 꾸밀 줄 아는 것도 젊을 때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꿈치랑 발등이 아직 아픈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좀 세게 치고 싶은 날이었다. 무리 안 하는 선에서 오래간만에 힘 있게 쳤는데 진짜 뭔가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사범님이 미트를 잡아준 덕에 아주 개운하게 땀 빼고 왔다. 진짜 오랜만에 느껴보는 운동 후 개운함이다. 다시 운동이 재밌어지려 한다.


피디님께 혼 아닌 혼이 났다. 영상을 꾸밀 줄만 아는 것은 테크니션이라며, 우리에게 그걸 기대하고 뽑은 건 아니라고 했다. 주객전도의 영상이 나오지 않으려면 생각해야 한다. 채널 타깃 오디언스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알아야 하고, 대본을 토대로 구성을 잘해야 한다. 그게 프로듀서이고 우리는 웹 프로듀서로 뽑힌 거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신경 쓰지 못했던 것 같다. 반성하고 개선해 나가야겠다. 좋은 것 배웠다.



2020.07.23


오늘은 스터디 같이 했던, 현재는 언론사와 리트를 병행하는 친구를 만났다. 통화도 했지만 대화의 주요 내용은 신세 한탄인 것 같다. 그래서 얘기가 더 잘 통하는 것도 있지만.


재밌는 건 헤어스타일 얘기를 해줬더니 이 친구도 동의했다. 세 명이나 지적해줬으니 이제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시도해봐야겠다. 자신의 꾸미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을 다시금 곱씹었다. 아무튼 이걸 계기로 잊힌, 아니 아예 애써 신경 안 쓰고 살던 것을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이게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의 문이 하나 더 열렸고 개선하기로 했다. 아무튼 이 얘기와 연애 얘기로 오래간만에 만나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어댔다. 다음엔 제발 둘 다 좋은 소식을 안고 만나자고 했다. 제발 그랬으면.



2020.07.24


다음 주는 팀 휴가 기간이다. 그 기간에 클립 하나를 맡아서 편집하게 됐는데, 이번엔 진짜 프로답게 잘해야 한다. 시간도 있으니 집중해서 잘해봐야겠다.


결심한 대로 미용실에 갔다. 부푼 마음을 안고 갔지만 결국 펌은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나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미용실에서 슬프고 두렵고 울고 싶었다. 덕분에 체육관에서 빡세게 샌드백을 쳤다. 오래간만에 한계까지 집중해서 운동한 것이다. 머리 때문에 생긴 분노 덕택에 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도 빨리 머리가 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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