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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니크 Jun 17. 2021

테크네의 유혹

과학기술시대의 교육

# 과학기술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과학기술 없이 한시도 살 수 없다. 21세기 들어 과학기술의 영향력은 다른 무엇보다도 크다. 과학기술의 영문인 technology는 희랍어 테크네(techne)와 로고스(logos)를 어원으로 하는 합성어이다. 먼저 희랍어로 테크네는 원래 예술(art)과 기술(craft)을 동시에 지칭하였으나, 현재는 예술의 의미는 약해지고, 기술의 의미로만 쓰이고 있다. 다음으로 희랍어 로고스는 말이나 글, 또는 사물의 설명이나 근거, 이유 등을 의미한다. 희랍인은 로고스로부터 과학(episteme)과 철학(philosophia)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과학기술이란 말은 과학을 뜻하는 에피스테메(episteme)와 기술을 뜻하는 테크네(techne)의 합성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에피스테메는 이론적 지식(theoria)을, 테크네는 제작적 지식(poiesis)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론적 지식은 이론적 활동과 제작적 지식은 제작적 활동과 연계된다.

 


# 왜 과학과 기술은 한 몸이 되었는가?


오늘날 가시적인 물건을 만들어 내는 제작 활동은 이론적 활동인 과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마찬가지로 과학적 연구 활동에서도 기술의 힘을 빌리고 있다. 아주 간단한 기계인 토스트기에 들어가는 부품인 용수철을 제련하기 위해서는 소재와 열에 대한 수준 높은 과학적 지식(이론적 지식)이 필요하다. 또한, 과학의 영역인 미생물의 발견에는 현미경이라는 정밀기술이 필요하며, 우주의 신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천체 망원경이라는 기술(제작적 지식)이 필요하다. 요컨대 과학과 기술은 각각의 발전을 서로 견인하기 위해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론적 지식을 활용해 제작 활동을 하는 과정(혹은 그 반대 과정)에서 과학은 절차와 방법 중심의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제작 활동은 과학에 의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설명 체계로서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 과학기술의 성공이 불러온 현상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눈부신 성과는 인간 활동 전반에 대한 방법화의 기대(에피스테메의 테크닉화(technicalization))를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이론적 지식의 절차화/방법화라는 과학기술의 성공에 힘입어, 여러 다른 분야에서도 테크닉화를 요구하게 된다. 물론 테크닉화가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방송에서 백종원씨가 보여준 요리의 테크닉화(그가 알려주는 비법 양념을 생각해 보라!)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또한, 기업에서 나온 간편식이 가정식 못지않게 맛있고 편리하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다만 이러한 요리의 대중화는 위에서 말한 순기능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엄마의 손맛’ 같은 비법(秘法)이 낱낱이 공개됨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잊게 만든다는 역기능도 있다.



# 과학기술의 시대에 교육은?


요즘에 교육 분야에서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언택트 교육, 에듀테크 등등을 보는 나의 마음은 심란하다. 이것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교육 분야에서도 테크네의 유혹이 그만큼 강한 것이다. 비단 교육 분야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기술의 문제가 아닌 것을 기술로 해결하려고 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는 것도 우려된다. 오늘날 기술은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일찍이 경고한 것처럼 인간을 무섭게 닦달하고 있다. 더 무서운 점은 우리가 그것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 교육은 심성함양 활동


짐작컨대, 교육의 테크닉화가 문제가 되는 원인은 교육과 같은 인간의 심성함양 활동이 제작 활동과 달리 그 활동과 목적이 분리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제작 활동에서 제작하는 행위와 제작물의 목적은 선후관계가 있고 분리 가능하다. 제작자는 미리 구안된 제작 목적에 맞춰 제작을 하면 된다. 그러나 인간의 심성함양 활동의 목적은 그 활동과 분리 불가능하다. 예컨대, 모든 수업의 상황에서 적용 가능한 수업 모형은 없다. 이런 측면에서 교육공학은 교육의 테크닉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절차화가 가능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매 상황에서 순간순간 당사자적 관점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



# 프로네시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프로네시스(phronesis)이다. 프로네시스는 실천적 지혜로 번역되는데, 매번 달라지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이다. 오늘날 교육 등 인간의 심성함양 활동에서 프로네시스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인간의 삶의 모습은 다양하며, 그것이 동일하게 보이더라도 완전히 똑같은 것은 없다. 남이 만든 방법이나 절차에 매달리기보다는 매 순간 자신만의 프로네시스를 발휘하며 사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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