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스물다섯 살 때 혼다 스쿠터를 하나 샀는데, 난 그걸 매일같이 후회했다. 왜냐면 나는 아주 지독한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회사생활 초년차에 거금 265만 원을 주고 샀으니 이걸로 출퇴근을 해야 돈이 아깝지 않을 텐데, 초보(쫄보) 운전자에게 서울시내주행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무서워서 밤에 잠이 안 올 지경이었고, 겨우 회사에 도착해도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집에는 또 어떻게 가나 심장이 요동을 쳤다. 야간 주행은 차선이 잘 안 보여서 더 무섭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신호가 연달아 뚫릴 때면, 빨리 멈춰 서고 싶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렇게 겁이 많은 사람이 인도 여행을 떠나면 어떻겠는가? 안전장치로 자신을 겹겹이 싸매고, 최대한 안전한 장소만 골라 아주 재미없게 다녀올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맞다. 나 같은 쫄보가 굳이 장기 털릴까 봐 봉변당할까 봐 무서워하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때로는 백견이 불여일문이기 때문이다.
내가 백번 여행을 다닌다 한들 류시화처럼 여행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은 류시화가 다년간 인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겪은 체험을 짧게 한편 한편 엮은 책이다. 그 한편 한편 모두 서사가 내 예상을 빗나갔다. 그건 인도 문화가 특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자가 그 못지않은 괴짜이기 때문이다.
어느 챕터에서, 류시화는 지도를 펼쳐놓고 눈을 감은 채 어느 한 곳을 집었다. 그곳을 다음 여행지로 삼기 위해서였다. 그의 손끝에 닿은 지명은 '쿠리'였는데, 관광지가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외지였다. 심지어 거기를 가려면 가장 빠른 기차로 40시간이 걸리는데, 인도의 기차는 연착이 기본이기 때문에 실제로 류시화는 200시간이 걸려서야 쿠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쿠리는 정말 마을이라고도 하기 어려울 수준이었고,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 위에 흙집 몇 채 정도가 다였다.
그런 곳에 장발을 풀어헤친 동양인 남자가 배회하고 있으니, 이를 수상하게 여긴 군인이 하나 다가와 물었다.
"당신, 왜 쿠리엘 왔소? 여긴 아무것도 볼 게 없는데!"
괜히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류시화는 눈에 초점을 풀고 멍청하게 군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걸 보러 왔어요. 오래전부터 난 그걸 보고 싶었거든요."
미친 사람 행세를 한 것이다! 군인은 더 이상 말을 걸 필요를 못 느꼈는지 금방 가버렸다. 류시화는 여행 중에 성가신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자주 이 방법을 썼다고 한다. 세상에! 나는 이런 기지를 발휘할 재치도 없고, 관료를 상대로 미친 척할 담도 없다. 그것 말고도 류시화처럼 능하게 사기꾼을 알아보면서 때로는 눈 감고 속아주는 여유를 부릴 수도 없고, 머리를 왜 기르고 있냐는 질문에 '머리를 자르면 몸이 아픈 병에 걸렸소.'라며 장난 섞인 거짓말을 할 줄도 모른다. 그래서 간접 여행은 때로는 직접 여행보다 곱절은 값지다. 이런 특출난 체험을 일체의 위험부담 없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위험을 보지 않으면, 위험 또한 너를 보지 못한다."
언젠가 안나라는 이탈리아인 친구가 했던 이 말은 내 20대의 만트라가 되었다. 겁이 날 때마다 주문처럼 외우면 정말 신기하게도 용기가 솟았다. 덕분에 망할 놈의 스쿠터로 전국일주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 아직 친구사이였던 남편은 내가 그 만트라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딱밤 자세를 취했다.
"눈 감아 봐. 어디 한번 내 손이 절로 빗겨나가나 보자."
나는 단 한 번도 순순히 눈을 감아준 적이 없다. 하하. 남편이 시니컬하고 짓궂은 사람이기도 했지만 나도 아마 그 만트라를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던 것이다. 역시 아무리 자기 최면을 한들 겁이 많고 소심한 것이 내 본질임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때로 많은 걸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인도인들이 자주 하는 핑계가 요즘 정신적인 평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나는 이걸 새로운 만트라로 삼으려 한다.
"왜 애초에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아쉬워해서, 스스로의 영혼을 괴롭히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