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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Dec 12. 2023

은비야, 문 좀 열어봐라.

비번이 뭐였더라? 

성당에 가려고 서둘러 나왔다. 

문을 닫는 순간, '아차! 열쇠(카드키)를 놓고 왔네...'

시계를 한번 보고는, 있다가 와서 해결하지 하는 맘으로 집을 나섰다.

미사가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구역 사람들과 집 근처의 찻집에서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무리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비번이 이게 아니었나?

세 번, 네 번, 다섯 번, 경고음이 들렸다. 그래도 복도가 떠날갈 듯한 소리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10분, 20분, 30여분...

띡띡띡... 소리가 날 때 마나 은비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래...

은비야, 문 좀 열어봐라. 오늘은 네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드네. 

아이고... 중간문을 열어놓았으면, 문을 열어주었을까??


오늘은 일요일인데..., 폰으로 아파트 주변의 열쇠집을 검색해 보다가 경비실로 달려갔다.


"제가요, 0003동에 사는 입주민인데요, 여차여차..."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전화를 걸어서 관리실 담당자를 통해서 열쇠집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이런~ 계획에도 없는 생돈을 날리게 생겼다.

경비실에서 열쇠집 사장님을 기다리다가, 번쩍 떠오르는 번호가 있어서 다시 한번 시도해 보려고 뛰어갔다.


"아직 못 들어간 거야?" 

옆동에 사는 성당 언니가 지나가다가 말을 걸었다. 

"그렇게 됐네요. 그래서 열쇠집을 불러놓았어요." 하면서 바쁘게 손 인사를 날렸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키패드를 눌러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은비가 문너머에서 야옹, 야옹 소리를 낸다.

[얼굴을 파묻고 있는 은비]


왜 안 들어와요? 언제 들어와요? 왜 자꾸 문만 누르고 있어요?

컴컴한 복도 한쪽 벽에 기대어 선채 멍한 표정으로 내 머릿속에 있는 의미 있는 숫자는 수도 없이 되새겨 보았지만...

'미쳤구나... 내 생애 이런 날이 있을 줄이야... 나의 총기[聰氣]는 다 어디로 사라진 거야...'

드디어 40여분을 기다려서 열쇠집 사장님을 만났다.


요란한 전동드릴소리에 키패드가 사정없이 뜯겨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멀쩡한 문고리를 뜯어내는 속 쓰린 장면...]


친절한 사장님은 새 전자열쇠를 달아주고 나서 사용방법을 알려주셨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시면서 이번 기회에 새 비번을 꼭 폰에 입력을 해 두라고 말씀하셨다.


상황이 정리가 되고 나니, 피곤이 확~ 몰려왔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답답한 생각이 들어서 멀리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였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ㅋㅋㅋ... 살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일도 있더라.

오랜만에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관문 앞에서 문고리를 잡고 시름하던 시간은 지나갔고, 이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나도 꽤 총기 있는 사람이었는데... 


혼자 사는 어떤 분이 화장실 문고리가 안쪽에서 열리지 않아서... 어쩔수 없이 부수고 나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다. 바깥에서 생쇼를 하다가 최후에는 문고리를 뽀싸버렸으니....


오늘 같은 일을 겪고 보니, 나라는 사람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한 오늘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아니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 


#현관문 #출입문 #대문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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