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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쨍아리 Aug 26. 2024

제리의 경고 : 예상치 못한 손님





고양이의 눈이 언제나 정확한 건 아니다. 




가끔 어른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고 

수염을 잔뜩 세운 채 사냥 준비를 할 때도 있다.

우리 집 제리도 가끔 그러하다.







그날도 높은 확률로 별거 아닌 것에

잔뜩 집중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아리야, 자니?

얘 지금 뭐 땜에 이러는 건지 

너가 좀 봐봐 봐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얼른 책상에서 할 일을 마치고 잘 준비를 하려고

한창~집중을 하고 있던 터였다.


정말 나가보기 싫었다. 별거 아닐 텐데..

이모가 좀 보지 굳이 내가 나서서 봐야 하나.

생각은 마음속으로만 하고

주섬주섬 거실로 나섰다.


© kirillz, 출처 Unsplash



불이 다 꺼진 거실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는 제리.

수상하긴 하다.


일단 불을 켜고 제리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식탁 아래 구석진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리를  건드려 봐도


집중이 안 흐트러지길래 어라? 

심상치 않은 걸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불은 켜져 있는 상태고

피곤은 몰려오고

눈은 무겁고



아직 책상 위엔 할 일이 널브러져 있고

마음은 급한데

심상치 않은 것의 정체는 보이지 않았다.







굳이 굳이 자세히 보려고 하니

까만 점하나가 보였다.

아마 그냥 먼지 덩어리가 아닐까?




겨우 저거에 저렇게

초집중을 하고 있는 건가?

식탁 아래 큰 짐 구석 틈에 있던

검정 먼지를 일단 꺼내보아야 했다.

별거 아니겠지 뭐.




이모랑 같이 큰 짐을 치웠다.

그 순간. 고양이는 미동도 없이

계속 초집중 상태지만,


같이 지켜보던 나와 이모.

여자 두 명은 비명을 질렀다. 



끼야앗~!




검정 먼지는 그냥 먼지였다.

짐아래 틈 사이에 내가 못 봤던 것을

제리가 본 것이었다.

짐을 치우니 드러난 불청객. 




귀뚜라미였다. 

나름 도심지역의 아파트인데 귀뚜라미라니..!



© brookecagle, 출처 Unsplash








태어나서 처음 본 귀뚜라미는

제법 덩치 있는 모습에

긴 다리를 하고 있었다.

전형적으로 벌레를 무서워하는 사람인

이모와 나.



온갖 호들갑을 떨며 에프킬라를 찾았다.

그리고 이 집의 다른 해결사.

다른 여자인 엄마를 깨웠다. 




언니, 약 어딨어?

뭔가 나왔어!

저거 약 뿌려야 될 거 같은데





이미 거의 잠에 빠져있던 엄마가

졸린 눈으로 일어났다.

자정이 넘었으니 당연하지.



여자 세명이 귀뚜라미 앞에 모였다.

약은 엄마의 손에 들려있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약을 뿌렸다

“치이이익-” 



그 순간 또 이모와 나는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약이 닿는 그 순간.

엉뚱한 곳에 들어와

두리번거리던 귀뚜라미는

긴 다리로 뜀박질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귀뚜라미가 뛰면,

여자 두 명도 같이 뛴 다는 것.

.....




두 번 정도 뛰었을까.

움직임을 멈춘 귀뚜라미의 마지막은

역시 엄마가 처리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오밤중에 이게 무슨 난리람.




만약, 내가 귀찮다는 이유로

분명 또 헛것일 거라고

초집중해 있는 제리를

그냥 두고 잤으면 어땠을까.



온 집안을 귀뚜라미가 뛰어다녔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서둘러 제리를 칭찬해 줬다. 



© painchaud12, 출처 Unsplash






너 오늘 한건 제대로 했다 인마




옆을 보니 놀랐던 이모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괜히 놀리고 싶었다.

(사실 나도 놀랐지만)



나 : 이모, 내일 영화 에일리언 예매했다고 하지 않았어?

귀뚜라미 보고도 같이 펄쩍펄쩍 뛰었는데

이래가지고 영화 볼 수 있는 거야?ㅋㅋㅋ



이모: 맞아ㅋㅋㅋ내일 볼 건데ㅋㅋ무서워서 자리도 맨 뒷자리로 예매했어





귀뚜라미가 뛴다고 같이 펄쩍 뛰었었는데,

에일리언 같은 영화는

과연 괜찮긴 한 걸까.

뭐 내일은 아니긴 하지.




자정이 넘은 오밤중이었기에

여자 세명은 서둘러 흩어져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이 되고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지난밤 이야기를 전했다.

집에 귀뚜라미가 출현해서

소동이 있었다고.

나도 너무 놀랐다고.



친구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이야기였다.



아리야, 그거 .. 귀뚜라미 맞아?

다리가 길었다며, 혹시 곱등이 아니야?

귀뚜라미 우는소리는 들었어?





아니야 그러지 마 ~

곱등이 아니야 귀뚜라미 맞아!!

엄마가 귀뚜라미라고 그랬단 말이야.

근데 우는소리는 못 듣긴 했지만,

아니야 그래도 곱등이 아니야!





친구들은 귀뚜라미 본 적 있냐고,

어떻게 아파트에 귀뚜라미가 나오냐면서

계속 곱등이일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만약 곱등이라면..뭔가 더 징그러운 느낌에 

소름이 끼칠 것 같아 계속 부정했다.



귀뚜라미를 실제로 본건 처음이었지만,

이건 귀뚜라미가 맞고 (곱등이가 아니고)

우리 집은 아파트 저층이고

근처에 강이 있으니까 충분히 넘어올 수 있다고. 




그리고 아직까지 나는 귀뚜라미라고 믿고 있다.

오밤중 고양이 덕에 알게 된 귀뚜라미 사태로

펄쩍 뛰었던 그날.




사실 이건 그냥 하나의 벌레 출몰 에피소드다.

최초 발견자인 우리 제리에게

공을 돌리며 마무리되었던 그날.




이래서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다.



제리의 행동이 10년을 넘게 키웠기에

충분히 예상 가능하더라도,

별거 아닌 날이 많다고 귀찮아할지라

나가보길 잘했지.


몸은 피곤했고 눈은 더 무거워졌지만

놀란 심장은 벌렁벌렁 뛰었다.

다음날 곱등이 얘기를 나누면서는

소름까지 돋았다.


만약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고 졌다면,

그날 밤 그냥 잤다면 어땠을까


더 놀라고 더 소름 끼칠 일들이 있지 않았을까?

내 것에 집중이 오롯이 되었던 그때,

그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전체 생산성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런 쎄-한 귀찮음은 이길 필요가 있었다.



난 벌레가 너무 무섭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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