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끝나지 싶었던 입원 생활이 끝나고, 퇴원하면 그냥 바로 일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아주 후련하게.
집에서 씻고 내 침대에서 눈을 붙이는 게 어찌나 그리웠던지.
아무 걱정 없이 그런 나날들을 보내게 될 줄로만 알았다.
한가지 상황이 끝났다고 걱정도 끝나는 건 아니었다.
당장 내 일상이 일부분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일을 포기하고 할아버지를 보살피는 보호자였다.
식구들이 일을 나간 낮에 할아버지와 일상을 같이 했다.
말이 별로 없는 조손 사이인데도 하루는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나의 일상에 할아버지의 일상을 챙기는 일이 포함되었다.
식사를 챙기고 매일 몸무게, 혈압, 혈당 등을 체크하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이 와중에 가족 모두가 중요하게 챙긴 것이 있다. 바로 병원 외래진료 일정이다.
의료파업 기간이 시작된 지라 정해진 예약시간과 일정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더 예민하게 챙기게 되었다.
내 달력에 체크는 물론이고 냉장고에도 일정을 붙여놓고 할아버지 핸드폰 일정에도 체크를 해놓았다.
그렇게 체크 된 일정 당일, 무사히 병원에 접수하고 기다림만 견뎌내면 그날의 큰 어려움은 해결이다.
동네 병원에서 간단한 진료를 볼 때도 대기가 길어지면 기다림이 참 쉽지 않다.
큰 병원일수록 대기도 길어지는 것일까, 퇴원 일주일 후 진료, 한 달 후 진료 등등을 겪게 되면서 긴 진료를 견뎌내는 것을 연습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할아버지는 하나 둘 씩 진료과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기다림의 시간이 점차 익숙해졌다.
예약시간보다 거의 30분은 일찍 가서 미리 접수하고 대기하면,
예약시간보다 40분 정도 지난 시간에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진료를 기다렸던 시간만 총 1시간이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운이 좋으면 1시간이 안 걸려 진료를 볼 수도 있었다.
처음엔 익숙하지도 않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이렇게 길게 기다려도 막상 진료는 생각보다 금방 끝나 허망한 마음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 진료를 잠깐 보기 위해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 건지.
그렇지만 막상 둘러보면 그 누구 하나 안 바쁜 사람이 없었다.
더 재촉할 틈이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각기 역할이 다른 간호사들도 교수님들도 모두 땀이 날 만큼 뛰어다닌다. 이 정도 기다리는 것이 이 시스템 안에서는 서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구나 알 수 있었다.
외래가 있는 날, 나의 미션 중 하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진료 전 긴 대기시간을 잘 지내보는 것.
다른 보호자들도 그렇겠지만, 이때가 환자와 가장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다.
주로 나이가 있는 환자들은 이때 옆에 있는 보호자에게 옛날얘기 즉, 라떼토크를 하기 시작한다.
우리 할아버지는 이 병원에 처음 내원했던 40년 전 이야기가 항상 그 시작이다.
그러다 보호자에게로 발언권이 넘어가면 환자에게 잔소리를 쏟기 시작한다.
몸이 불편하니 이런 건 조심해야 한다느니, 꼭 이런 건 참지 말고 말을 해야 한다느니 등등.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모두 다 했는데도 대기시간이 여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대화도 없이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간단한 읽을거리를 챙겨올 걸 그랬나.
나는 벽에 비치된 팸플릿들을 둘러보며 하나씩 꺼내 읽었다.
그러면서 언제 호명될지 모르니 수시로 전광판에 진료 현황을 체크하며 시간을 보내었다.
사실 이런 기다림, 일종의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병원 팸플릿을 손에 들고 전광판을 보는 것 대신, 다른 것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텐데.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 수도 있고, 내 미래를 위해 무언가 배우러 다닐 수도 있고, 글을 더 쓸 수도 있고. 이처럼 다른 것들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굳이 이러기로 선택하고 결정했을 때, 이걸 ‘희생’이라고 하지 않을까?
혹여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선택하였을 경우,
그 선택은 희생이 아니라 그저 유일한 선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 있기로 한 내 선택이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 선택이 엄청나게 큰 희생이었다고 느껴질 만큼 나 자신이 빛나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이 희생도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더 보호자 역할에 진심이었다.
완벽한 희생이라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한 진료를 마치고 다른 과 진료를 위해 다시 대기 상태에 들어가며 또 생각에 빠진다.
눈은 전광판에 고정한다. 혹시 내가 다른 능력이 없어서, 능력이 충분치 않아서,
다른 사람 대신 간병을 하게 된 것일까? 난 희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일에만 적합한 그릇을 가진 건 아닐까? 내 기대보다는 작은 그릇.
이렇게 나 자신마저 흔들리는 이 대기시간이 가장 힘들다.
이 자체로 나의 능력의 크기가 결정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진료 후, 3개월 뒤로 예약을 잡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병원을 가지 않고, 할아버지도 평온한 하루를 보내는 날들이 생겼다.
이렇게 나에게 시간이 조금 더 생긴 날에는 더욱 많은 것들을 하려고 애썼다.
다시 구직사이트를 둘러보고 도서관을 다녔다. 온라인 강의도 챙겨 듣고, 박람회도 다녔다.
다시 내 일상을 찾기 위해 부족했던 것들을 채우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헌데, 이것들 또한 내가 해온 것들이 ‘희생’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을지 모르겠다.
내 열심은, 내 미래를 내가 스스로 그려나가고 싶어서 일수도,
그냥 나의 ‘희생이 컸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일수도 있다.
어떤 것이 되었던 나는 빛나는 사람이고 싶다. 앞으로도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