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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쨍아리 Dec 18. 2024

13. 퇴원 했으니 다행이네, 다행맞아?

어느 덧 병원생활이 끝나고 내 방에서 잠을 잘 수 있는 날이 왔다.

그렇지만 왠지 마음속에는 기쁨보다는 불안함이 더 컸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집으로 간다는 그 말에 내 마음이 또 걱정으로 울렁이기 시작했다.



며칠 전까지도 알 수 없었던 병원에서의 생활. 

어느새 나는 여기에 익숙해져버렸는지 막상 집으로 간다 하니 얼떨떨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얀 벽, 한밤 중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복도.

수시로 울려대는 의료모니터 소리들.


이제는 드디어 헤어지는 시간이었다.




할아버지가 이동을 시작하니 보호자가 한 명으로는 부족했다.

엄마와 내가 동시에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 할배 옆에 붙어서 같이 이동하기도 하고, 한 명은 따로 수납 줄을 서는 등

한겨울이지만 순식간에 얼굴이 벌겋게 변한채 땀을 흘리며 병원 안을 쏘다녔다.

병동과 헤어지는 날, 땀으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더 힘을 내야 했다.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사실 누구보다 할아버지의 퇴원을 기다렸던 것은 나였다.

병원에서의 생활이 크게 나쁜 것은 아니었고, 나는 환자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집이 너무 그리웠다.

아니 무엇보다 제대로 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막상 내 침대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니 또 다른 두려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이상 의료진이 없는 곳인 ‘집’에서 할아버지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그 걱정이 불쑥 불쑥 솟아 올랐다.

주의사항을 충분히 듣고 퇴원을 했지만, 그래도 좀 무서웠다.



내가 보는 할아버지는 여전히 위태로워 보였다.

겉으로는 더 이상 환자복을 입지 않은 일상의 할아버지 같지만, 

내 눈으로 보는 할아버지는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아슬아슬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더더욱 할아버지를 살펴볼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보내던 일상들이 이제는 집으로 완전히 옮겨왔다.

그 일상을 이어나가며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의 보호자로 지내게 되었다.

아직 환자이기에 다녀와야 하는 외래진료들을 모셔 다니고, 그 외의 할아버지 일상에도 함께했다.

교회나 이발소 등등. 하루 세끼를 함께 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이런 작은 일상 하나하나를 같이 해낼수록 왠지 책임감은 더 커져가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무언가 작은 거 하나라도 실수해서 큰일이라도 날까봐 너무 무서워졌다.

아 이게 보호자로서의 무게감인 것인가.




며칠 전만 해도, 퇴원 후 일상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시 예전의 평범했던 일상으로.

너무 순진했었나 싶은 생각에 나는 지금도 이렇게 하나씩 배우는 중이구나 싶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내 침대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 일상은 내 머릿속에서 그리던 그런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조한 걱정들과 찾아오는 불안함을 무서워 하면서도 

이것도 나중에는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병원에서의 첫 날을 기억하자면, 정말 무섭기 그지 없었지만 어느새 적응해버렸듯이,

지금 이 무거운 어깨도 어느 순간 나의 당연한 일상이 되어있지 않을까



입원 기간 중에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날인데, 이렇게 실제로 다가오니 생각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더라. 그러고 보면 내가 항상 바라던 일들이 진짜로 내 앞에 다가왔을 때엔 또 어떤 문턱들이 있을지 모르는 것 같다.




이것마저 겪어내며 적응하고 나면, 

뭐야, 나 더 업그레이드 되는거 아닌가.


얼마나 더 완벽한 K장녀가, 손녀가 되려고 어려움이 계속되는 거지?



예전처럼의 건강한 모습이 아닌, 

앞으로도 환자로서 계속 관리받아야 하는 할배.


그리고 그런 할배를 또 걱정하고 있는 손녀인 나.



오늘도 ‘나‘라는 K장녀는 

이 가족들에 대해서 점점 더 완전한 전문가가 되어가는 것 같다.



레벨업이다 이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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