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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잊어버린, 잃어버린 편지, 기억, 나

내 손으로 직접 버릴거야

by 쨍아리



요즘 내가 특히나 예민해진 거 같다.

방 정리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인데 그녀가 말하면 반감부터 든다.


옛날 나의 추억거리 들을 모아놓은 클리어 파일이 있다.

학창시절 받았던 롤링페이퍼 같은 것들


상장을 모아놓은 클리어 파일을 찾아달라는 엄마의 말에

같이 파일들을 찾다가 그 추억 파일을 찾았다.


그 파일엔 쉽게 볼 수 없도록

뒤집어서 하얀 뒷면이 보이게 껴놓은 종이가 참 많았다.


말할 수 없었고,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 모아져 있는 곳.


파일 정리를 하라는 말에

툴툴거리고 잔뜩 뿔이난 채로 파일을 펼쳤다.


내 추억을 왜 함부로 정리하라는지 이해도 안되고 하고싶지도 않았다.

그냥 다시 바로 덮을 요량으로 펼친 것이었다.


" 어..? 이건 뭐지? "


한 편지를 발견했다.


2009년, 내가 막 20살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미처 그녀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

A4로 무려 7장이나 되었다.


나는 그 편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한 줄 한 줄 읽어나가자

그때의 ‘내’가 다시 살아났다.




내 핸드폰에 친구와의 문자를 훔쳐 보고 (카톡이 없던 시절)

내가 잠든 틈에 내 욕을 했다.


이유는..내가 친구와 놀고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


나 또한 곱지 않은 말투로 반항하는 듯이 그녀를 대했겠지.

그래서 더 화를 돋구었겠지.

나도 잘 한 건 없었다.


그치만 그 편지속에 묘사되어있는 그녀의 모습은


내가 정말 왜 그렇게 엄마라면 치를 떨었는지

다시 기억나게 했다.


지금도 충분히 감옥같은데

그때엔 정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어떤 잘못 때문이었는지

이유는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일 투성이었다


이미 그때 듣고 보았던 경멸스러운 눈빛과 욕설은

난 이 땅에 계속 피해만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24시간 내내 하게 했다.






나는 그 시절의 '나'를

그 시절의 '그녀'를


홀랑 잊고 있었다.


기억하기 싫었던 건지

너무 자연스럽게 내 기억에서 없었던 기억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꽤 많은 부분이

기억에서 빠져있다.


어릴 적 기억, 학창시절 기억은

친구의 입을 통해 들어도 기억이 안나서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왜..기억을 안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는

...

..




아마..

그나마 숨쉬며 살기위한 선택이었지 않았을까?





추억이 깃든 그 클리어 파일은

노트에 적은 일기를 쭉 찢어 보관해놓은 종이들도 있더라.


나는 꽤 많은 부분 기억을 못한다.


그 시절을 그냥 살아가기에만도 힘들어서

기억하기를 포기했었나봐.


다 잊어버리면

'나'를 다 잃을 것 같아서 였을까



내 감정을 적어 찢은 종이

노트 한켠을 찢은 종이

못 보낸 편지

짧은 일기

등등



얼마나 처절하게 살았던 걸까


그 편지를 읽으며

나는 잠깐 모든 걸 멈추고

그 시절의 나를 위로해야 했다




더 이상 '나'의 일부를

기억 못하고 싶지 않다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만 상처받고

기억할 수 있는 추억들이 가득한

평범한 삶이길 바란다.


옥죄고 옥죄어

다 으깨져 사라져버리기 전에


나를 쥐고 있는

그 손에서 벗어날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손으로 내 집을 버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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