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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숨을 쉰다, 그리고..

드디어 야경을 제대로 본다.

by 쨍아리


그 질식하는 감옥

이 감옥을 탈출하는데

단 며칠 걸리지 않았다.



며칠 밤, 쓰리고 부은 내 눈이 날 괴롭혔고

며칠 내내, 가슴이 부풀었다 무너졌다 하는

마음 고생이 함께했고


그러느라 기운을 다 뺏는지

살도 좀 빠져있었지만



그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마치 오래 오래 잠들었던 미녀가

번쩍 눈을 뜨듯이.






어..?

아닌가.



사실은.. 며칠이 아니라

35년이 걸렸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성인이 된

그 이후로부터 셈하면...15년?



그런 세월동안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정말 쉽게도 지나갔다.




나 참...이게 뭐라고

그렇게 오래 끌었던가.

뭐가 그렇게 두렵고 또 두려워서

이번 생에서는 안된다며

그렇게 포기하고 있었던가




아니야.



이리도 오래 끌었던건 내가 아니라

나를 끝까지 놓지 못했던 그녀.


그녀 때문이라고

탓을 돌려본다.








이제 탈출을 감행한지 두 달이 되었다.

두 달이라는 시간

60일, 1,440시간, 86,400분이 지났다.




내 생애 최장기록이다.



남자친구와 여행도 가본 적 없는 나.

집밖에서 시간을 이렇게 오래보낸다?

훗...



개인 기록을 매일 갱신하고 있다.

본집을 떠나온 최장기록.








두 달전 까지,

하루하루 나란 사람의

모든 색채를 앗아가는

숨막히는 생활에 그만..



매일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숨을 꺽꺽대며

그날 그날 주어진 일을 해왔다.



아무도 숨을 꺽꺾대지 않는

침묵이 슬며시 찾아오는

다 자는 새벽이 되어서야



노트북에, 혹은 노트에

겨우 나의 내쉬는 숨을

전부 다 토해냈다.



그것만이 내가 살 수 있는 길이었다.



뭐, 거기에 그 다음날 붓고 빨갛게 토끼눈이 된 채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출근해야하는 건 뭐.

나의 디폴트인 무색채 생활의 보너스였다.



그것마저도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나는 프로니까.



이제는 그런 프로생활을 은퇴해도 된단다.

나, 탈출했거든






아직도 신기하다

아마 한동안 계속 신기하겠지



가슴을 옥죄다 못해

나를 저 아래까지 가라앉히던

깊은 늪과 같은 감옥에서 벗어났다니



마치 숲에서 살던 사람이 도시에 처음 나온 것 처럼

모든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배우고 있다



야경을 보면서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더이상의 불안함 없이..



호수의 불빛들과 가끔 보이는 별빛들

두려움이 아닌 따스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더라



저녁약속이 있는 날,

저녁을 먹으며 당장의 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음식의 맛, 같이 있는 사람, 같이 즐기는 시간.

오로지 그 시간이 몽땅 나의 시간이다.



모처럼 쉬는 날, 늦잠을 과연 내가 몇시까지 자도 되는 건지

미리 허락 받을 필요가 없다.

그냥...쭉 잘 수 있다.



잠자리의 소중함이,

내 침대가 너무 사랑스러워 보인다.

내가 온전히 회복할 수 있는 곳.








혼자있는 것.

사실 생각보다 꽤 익숙하다.

그런데 이렇게 까지 혼자인 건, 처음이다.



고요함과 자유가 뒤섞인 이 감각은 뭘까.

아직도 모르겠다.



예전엔 닫지도 열지도 않은

반쯤 지그려놓은 나의 방문 뒤로



내 자신보다 우선시 해야하는

모든 것들이 있었다.



그들의 숨소리, 발자국 소리, 말 소리

언제나 나를 부를 수 있는 대화들

인기척들.



나를 향한 소리들이 더 커지기 전에

그 문을 열고 나가보기도 했었다.



그게 언제가 되었던.

내가 무얼 하고 있던.

내 행동이나 생각하는 시간, 고민하는 시간,

모든 것들이 다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시간들.



지금은 내가 내 시간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기대하는 시간은

내가 기대하는 만큼 예측대로 움직여준다.



와 기분이 너무 깔끔하다.

시계를 이런 기분으로 바라볼 수 있구나



처음 일주일은 너무나 어색했다.

좋지 않다는게 아니다.

그전이 낫다는 것도 절대 아니다.



그냥 처음이라 어색한 그 느낌.

문득 문득 올라오는 ...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은 느낌.



이주정도 되니 차츰 그 빈도가 옅어져 갔다.

탈출은 그라데이션인가봐.



이제는 야경이 너무 예쁘다 이렇게 예쁜 걸..

마치 나만 몰랐던 것 같아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억울한게 뭐 한두가지 이겠나.

감정 꾹꾹눌러담기 프로는

억울함도 눌러 담는다.



집에 도착하면 이제 은은한 불안감,

어깨에서 시작된 무거움이 짓눌러

손과 발은 움직이더라도

가슴이 그렇게 눌려졌던 나날들

이제 그건 ...없다.



일과 후 집에 왔을 때 느끼는 아늑함.

이게...실재하는 느낌이구나.

존재하는 느낌이구나



혼자 있다고 해서

그녀가 매번 지적하고 뭐라고 한만큼

내가 막 사는 것도 아니다.

잘 씻고, 잘 닦고, 나름 규칙도 있다.



몸 정돈을 마치면, 잘 자리에 눕는다.

내가 끈 조명, 내가 남긴 침묵



가끔 건물 밖의 소음이 방해하지만

피식.. 웃으면 그뿐.


내 휴식에 절대 방해되지 않는다.



나 쨍아리.

빚도 꽤 있고

돈은 없고



몸 누일 곳도 변변치 않지만



숨은 있다.



이제 억눌려 컥컥대는 숨이 아니라

자유로운 호흡.







나는 지금, 숨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처음 느끼는 이 자유라는 공기를 마주한 것처럼

부서지고 찔리고 억눌렸던 내 자신을 천천히


한 숨씩 쉬어가면서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

이 하루가 이렇게 행복해서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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