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I write jolly tales
수도 없이 펜을 잡았다. 언제는 지금처럼 시제가 하나도 맞지 않는 긴 글을 마구잡이로 써내려 갔다. 나도 말 해야 한다 다짐하고는 친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때가 있었다. 미처 다듬기도 전에, 누가 볼 세라 지워버린 한글 파일이 휴지통에 가득했다.
무시할까. 속 시끄러운 이야기들 다 입 막고 무시하고 살자. 어떤 말도 하지 말자. 근데 이상했다. 쌤. 고통은 절대 공유될 수 없다면서요. 전 왜 제 고통같죠. 저도 그래요. 쌤도 그러시면, 전 평생 이럴까요. 그렇게 태어난 거죠. 와 그거 좆같네요. 그 쌤에게 여성의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고 적극적으로 사유해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다짐했다. 뭐라도 써야 한다. 써야만 했다.
어디서부터 써야하지. 고3 당시 수학 과외 경험? 보다 근본적인 게 있다. 이어폰 한 쪽을 꼭 빼놓고 다니는 습관? 너무 개인적이다. 나의 우울? 아니, 이 이야기는 너무 감정적이면 안 된다. 아빠의 실패? 지붕의 부재? 엄마의 신경증? 이건 너무 두렵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다른 죽음. 시작할 수 있을 리 없다. 다시다시. 가족에서 벗어나자. 유치원 때 피아노 학원으로 올라가던 계단. 중간층에 있던 화장실. 그 곳에서부터 시작할까.
단
한 문장도 쓸 수 없었다. 글쓰기가 그렇게 중요한 거라면.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최대한 많은 이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고통이 축소된 채 묘사되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과장된 것처럼 느껴져서도 안 된다. 감정과 이성은 적절한 비율로 배합돼있어야 한다. 필연코 덜어내야 하고 철저히 배치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쓰지 못할 거라면 쓰지 않는 것이 나았다.
그렇게. 끝내 쓰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쓰기로 했다. 이짧은 글 마저도 마무리할 수 없는 나는. 덜어낼 수 없는 것들은 전부 지운다. 완성할 수 없는 글을 쓴다. 쓰지 못하는 것들이라고만 쓴다. 난 영원히 그것들에 대하여 쓰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 수많은 글을 남기겠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안 쓴 것이 될 테다. 또 그래서 살지 않고 죽지 못한 몸일 거다. 고통이 아니라 사랑에 대해서만 쓴다. 시시한 이야기만 쓴다. 나는 그렇게만 쓴다.
일찌기 나는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