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샀다. 네 캔이나. 딱 어제 밤, 딱 그때 한 모금이 고파서. 어차피 몇 모금 먹지도 못하고 하수구에 버릴 것들이었다. 과일 맛이 나는 맥주는 한 캔엔 사천원, 네 캔에는 만원이었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정가를 주고 사기에 손해보는 기분이 드는지라. 그냥 네 캔을 사버렸다. 오늘은 맥주 중에서도 도수가 높은 IPA가 당겼고, 그냥 맛있는 음료수가 먹고 싶을 어느 날의 나를 위해 도수가 낮은 라들러와 라거, 사이다로 나머지 세 캔을 채웠다. 마지못해 네 캔에 만원. 자취생의 숙명같은 거였다.
오늘은 정말 빨래를 널어야 하는데.
8kg 짜리 세탁기는 이미 포화상태였다. 일요일 밤에는 빨래를 널고 자야 출근날인 화요일에 입고 나갈 수 있을 터였다. 으레 해야 하는, 자취생의 의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일을 뒤로 하고 맥주를 사러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태업으로 가득 채운 하루의 핑계가 생긴 셈이었다. 일조량이 적은 날 내 머리속에는 공백이 생기고, 그 공백감 옆에는 어김없이 무기력이 자리잡는다. 끝도 없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끼며 그저, 잠겨 있는 동안 빨래나 쓰레기는 부피를 늘려간다.
삶은 여행 같은 게 아니다. 맥주를 사기 전 집 앞에서 담배를 피며 문득 든 생각이었다. 적어도 비가 내리는 날에는 그렇다. 무기력하고 보잘 것 없는 하루를 보낸 날이면 늘 비관적이게 된다. 물 위의 부표 같은 게 맑은 날의 삶이라면, 어디든 떠다니며 여행이라 여길텐데. 비가 오는 날이면 이렇게 끝끝내 잠겨버리고 만다.
삶은 시원한 IPA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 세캔 하고도 반을 하수구에 버려야 하는 것이다. 비오는 날 끈적한 장판을 말리기 위해 보일러와 에어컨을 같이 틀어야 하는 것이고. 궁금했던 하나를 물어보기 위해 두 시간 내내 잡담을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삶의 대부분은 마지못해 하는 일들로 채워진다.
같은 이치로, 언제인지도 모를 한 순간을 위해 나는 쓰레기 같은 글만 쓴다. 내 속에 담겨 있는 대부분의 글은 뱉어지면 버려진다. 언젠가 어딘가로 옮겨질 날을 기다리며. 생각이 흐름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같고, 사념의 바다에서 끌어올려지는 건 수리도 어려운 폐품들 뿐이다. ...나도 너처럼. 쓰레기 같은 글은 그만, 쓰고 싶다.
어떤 글이든 우울과 흠집 그 이후를 적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다만, 그런 포장이 불가능한 글도 있다. 상흔보다 상처 그 자체에 가까운 일을 쓸 때엔 더 그렇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비 오는 날의 우울을 언젠가 설명할 수 있게 될까.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사랑해도 애석하지 않을까. 그땐 맥주 한 캔 쯤은 달게 비우는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