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스칸썬 Aug 14. 2023

엘에이, 줄을 서다.

미국, 넌 누구니?


헐레벌떡 아이 픽업을 갔다.

정시 전에 미리 문이 열려 아이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 서둘렀다.

줄지어선 엄마들 라인에서 등교 시와 마찬가지로 진행요원 역할인 교사들이 잠시 후 수업종료 한다는 안내를 반복하고 있었다.

정시에 문이 개방되었다.

(이 사례는 L.A 여름캠프 특정 경우입니다.)


열 살 넘은 학생도 내정된 보호자에게만 인계한다.

옆집 엄마가 가는 길에 우리 아이도 데려와달라는 식은 통하지 않는다.

들어왔던 입구로 나가려니 진행요원 교사가 상냥하지만 단호하게 안내한다.

"입구 반대 방향으로 나가주세요!"


입출구가 동일할 것으로 예상하고 주차한 상황.

입구로 들어오는 학부모도 없는데 빙돌아가란다.

순간적으로 원리원칙에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지, 싶었다.


우리 문화에선 그렇게 안 한다.

적당한 반칙이 때론 당연하다. 

원칙은 원칙일 뿐 상황 봐서 나 하나쯤이 쉽다.


개인주의가 강한 곳이므로 어디서나 각 잡는 건 말도 안 된다. 허용된 범위 내에서 자유와 개방은 얼마든지!


L.A 에서 본 줄 서기의 '사회적 거리두기' 간격은 코로나19로 인한 학습효과 같지 않다.

이미 몸에 베인 일정 거리를 둔 줄 서기 문화.

전염병 우려로 인한 우리나라 거리 두기는 세계적으로 찬사 받은 수준.

후의 일상 속 거리 둔 줄 서기는 원점이 되었다.


다닥 디 붙다 못해 밀면서도 자신도 밀려 이럴 수밖에 없다는 피해자 코스프레다.

차든 사람이든 간격이 바싹 붙어있게 마련.

이곳 줄 서기의 간격이 감이 안 와서 우리식 짧디 짧은 줄간격을 어림잡아 줄과 줄 사이에 섰다 무안당하고 뒤로 돌아가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알려준 '사회적 거리두기'지혜를 한시적 위기상황으로 끝내지 않았으면,

일상 어디서나 거리 두고 줄 서기는 무리일까.


아메리카나의 애플스토어. 천장이 통유리라 상하 데칼코마니의 질서정연한 배치.


차를 주정차하거나 차문을 여닫을 때의 문콕 조심.

주차공간의 상대적인 여건이 여유가 있다 보니 어디나 활짝 여는 것까진 아니어도 납작 오징어 경험은 없다.

차간 주차 시 거리 두기가 가능한 것.

주차공간의 타고난 지리적, 물리적 차이이부러움에서 마무리.


신체나 소지품으로 타인이 불편할 수 있음을 미리 고려한다.

놀이동산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있었다.

아이 동반한 체격 큰 아빠 가방이 줄이 당겨질 때마다 내 뒤에서 살짝살짝 닿는 상황이었다.

한번, 두 번, 세 번...

얼마나 반복해서 미안하다 하던지 괜찮다고 답변하기 바빴다.

배려라기에는 그냥 몸에 배어 보였다.




남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빈틈없이 양해구하고 흔쾌히 괜찮다고 응수하는 너그러움은 어디서 올까.

인구밀도는 높고 선착순이 대세인 시절, 아는 놈이 몽땅 차지하던  있었다.

우리도 이젠 선진대열이고 교육 수준도 높아졌는데 줄 서기 앞에서는 매번 급해지는 이유는 뭘까.


이곳에서 느낀 안전과 직결되는 원칙이 있다.

인원이 일정이상 되면 입구와 출구가 엄격히 분리된다는 점이다.

엉키거나 섞여서 생기는 불상사, 병목현상을 사전 봉쇄하는 시스템.

땅이 넓어서 공간이 넉넉해서 가능한 방법일까?




아웃렛 쇼핑몰 인기매장은 입구에 대기선이 있다. 

입장하는 인원을 그때그때 잘랐다. 대기시켰다.

쇼핑하는 고객의 쾌적함을 최우선 고려하는 것.

파리 날리는 매장은 봤어도 손님이 많으니 못 들어가게 제지하는 매장은, 처음 봤다.

대단히 신선한 운영 방법이었다.

내부는 발 디딜 틈 없는 수준이 전혀 아닌데 일정 인원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쇼핑하게끔 시스템을 잡아놓았다.


우측이 대기줄이다. 특별판이 나오는 시기여서가 아니라 늘 일정인원 유지가 우선 같다.


나이키 매장에서 신박한 아이디어를 보았다.

바닥 곳곳에 그어진 발에 맞춰 자기 발을 대보고 맞는 치수의 신발을 찾아 구입하면 된다.

신발 사이즈를 찾으러 다니는 직원이 필요 없는 시스템이다.

아이는 양말까지 벗고 적극적으로 스스로 발 치수를 재고 그에 맞는 신발과 한 치수 위의 신발, 두 박스를 꺼내어 착용하고 선택하여 계산대로 갔다.

직원이나 보호자 도움이 없이도 미국에서 내 발에 맞는 신발 찾기는 논스톱으로 끝.

바닥에 죽죽 그어진 빗금만으로.



바글바글 대는 곳이어야 더 주머니를 열게 된다는 건 선입견인가.

삼십 초 더 늦어지면 인생 삼십 년 늦어지듯 황급히 앞서가려는 마음.

한번 보고 말 사람이니 몸 부딪침이 있어도 뒤돌지 않고 가버리는 무례함.

조금 느긋한 게 남을 위함이 아닌 결국 나를 위한 배려임을, 돌려받는 경험이 없어서 우린 주저한다.

몸에 잘못 베인 빨리빨리! 의 문화 딜런에서 이젠 헤어져야 할 시간은 아닐까.



미국여행 이전글

https://brunch.co.kr/@pcs20002000/266


매거진의 이전글 엘에이, 아카데미상을 안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