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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Dec 21. 2023

영하 20도쯤이야, 스키장은 만원입니다.


눈이 무섭고 눈길은 공포이다.

그래도 겨울은 오고 아이들은 스키어를 꿈꾼다.

올겨울 가장 춥다고 소문난 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 다음날 고속도로를 뚫고 스키장에 도착했다.



동남아인들이 설국 패키지로 싱글벙글하며 중년 어른들이 줄지어서 스키 강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 분은 엉덩방아를 찧으시고 아예 앉아서 설경에 심취하신다.

어쩜 평생 처음 보는 눈, 스키 패키지가 이색여행임은 틀림없겠다.

그 옆에서 시즌을 맞아 스키캠프에 온 올망졸망 꿈나무들.

초보는 어디빛난다.

똘망똘망 희망에 부풀어 프로를 꿈꾸는 눈망울들.


앉기도 서기도 주저하던 겁쟁이 어린이가 한 시간이면 리프트를 앞장서서 타고

두 시간이면 만능 스키어처럼 겁이 없어지고 더 탄다 야단이다.

설국열차 맨 앞자리는 초보 어린이들이 따놓은 당상.

추위가 추위로 느껴지지 않고 스포츠에 박차를 가하는 악센트.



우아하게 카페 2층에 앉아 대기 중인 부모도 배가 고파온다,

고랭지 배추 맛이 궁금하여 맛있는 김치와 막걸리를 둘러본다.

엉덩방아 이쁘게 찧고 넘어지는 자세부터 배우다가 A자를 시작하는 베이비 스키어들.

바깥에서 지켜보는 부모도 점차 몸이 굳어간다.

미끄러워 무섭다고, 입김 하얗게 나와 춥다고 고개 젓던 아이들은 그제야 발동 걸려 더 탄단다.

주간에 야간에 심야도 불사르는.

초보의 열정은 아무도 못 말린다.



오래전 차 지붕에 싣고 오던 시절에 입던 스키복 밑단 색이 바래고 도톰하던 두께가 내려앉았다.

일기예보의 눈소식에 눈살을 찌푸리고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길어지면 동파사고와 보일러비부터 걱정이다.

그사이에도 스키장은 스키와 보드가 눈 위에서 고운 자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좀처럼 눈사람까지 만들기 힘들게 소심하게 오는 눈발에 큰맘 먹고 눈썰매장이나 아이스링크 다녀오는 것도 고단한 어른이었다.

큰맘 먹고 이리저리 가족 구성원들 스케줄을 조정하여 일박이일 스키여행.

눈송이와 눈밭은 멀리 서는 늘 천국 같다. 아름답다.



이를 어쩌나.

내일 무려 영하 20도 예보.

온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려오고

핫팩 주렁주렁도 두 겹 내복과 양말에 ㅁ속겉 이중장갑에도 속수무책.

멀리에 있는 설경이나 줄지어 올라선 리프트로 내려다보는 흰 눈 사이의 스키어들이 아름다울 뿐 귀가 이마가 손발이 떨어져 나갈 듯.

영하 20도라는 듣도보고 못한 막강한파와 산에서 만나는 위력은 난생처음이다.



스키장 한 편에는 눈썰매장과 케이블카.

도깨비 팬인 가족들이 여기구나, 하면서도 엄두도 안나는 극한 추위 속 케이블카.

외국 관광객들은 줄을 잇는다.

여기서도 만나는 네이밍이 기가 막힌 인생 네 컷.



다음날의 스키장.

어제보다 한술 더 뜨는 혹한 소식에 스키장이 텅 빌 거라는 우려는.

연예인 걱정만큼 부질없었다.

성탄연휴와 연말연시를 앞두고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되었다.

극성수기 초읽기인 만큼 오늘의 대관령 체감온도 마이너스 삼십 도도 거뜬히 즐기는 겨울 마니아들.


겨울아, 거기 섰거라.

제 아무리 최강한파라도 스키장의 열기는 활활 뷰타는 중이다.



덧붙임.


스키장에서 투숙이 처음이라 벌어진 실수.

밤에 사람과 함께 스키 신발도 밖에 놔두면 동상 걸린다.

반드시 숙소로 데려가 잠재워야 한다.

신발을 굳이 실내로 가져가는 수고 안 하는 바람에 애꿎은 발을 구겨가며 스키신발에 집어넣다 넣다 동태가 된 신발을 다시 유료 렌털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바라클라바도 좋지만. 면마스크도 괜찮다.

콧물 범벅에 입김 가득해도 큼지막한 마스크로 얼굴장착에 고글을 쓰면. 찬서리도 감당된다.

코로나 시국 KF마스크 대란에 궁여지책 쟁여놓은 면마스크를 소진한 기회가 되었다.



* 커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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