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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Nov 23. 2021

마녀 ‘율율’은 고민 상담 중

- 초록색 깃털이 이끄는 대로

"아빠! 이것 좀 보세요. 초록색 깃털이에요. 또 초록색이라구요!!"

나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빠는 두 눈을 반짝거리며 말씀하셨다. 

"오! 멋진 초록색이구나!"

"멋진 초록색이요? 아니요. 이 세상에 멋진 초록색은 있을 수 없어요! 초록색은 다 별로에요. 브로콜리도 초록색, 오이도 초록색, 파도 초록색, 아스파라거스도 초록색.

초록색 음식은 다 맛이 없어요. 그리고 뭐랄까. 초록색은... 초록색은 촌스러워요!" 

"율율. 아빠 눈에 이 초록색 깃털은 뭔가 특별해 보이는 걸? 사실 말이다. 색깔은 중요하지 않아. 율율, 네 마음이 중요한 거지. 네 마음 속에 있는 모든 불만과 편견을 지우고, 있는 그대로 이 초록색을 바라보렴. 그럼 율율! 네가 보지 못한, 특별한 무언가가 보일 거야." 

방으로 올라온 나는 거울을 통해 내 머리에 꽂힌 초록색 깃털을 자세히 살펴봤다. 

"모든 불만과 편견을 지우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나는 아빠의 말을 되새겨보며,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거울을 바라봤다.


초록색 깃털은 마치 바람결에 나부끼다가 내 머리에 찰싹 달라붙은 이름 모를 나뭇잎처럼 보였다.  

"촌스러워. 아무리 봐도 초록색은 촌스러워!" 

이때 똑똑-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율율! 엄마 들어가도 되니?"

"네. 들어오세요."

"율율! 짜자잔! 졸업 축하해~ 이건 엄마가 직접 만든 케이크란다!" 

"엄마! 지난번처럼 날개 달린 케이크는 아니겠죠? 날아다니는 케이크 잡느라, 제 방이 엉망이 됐잖아요."

"그래도 재미있었잖니? 이번엔 그런 거 아니니까, 어서 한입 먹어보렴!" 

나는 내 전용 포크를 이용해, 입안에 케이크를 한입 가득 넣었다. 

펑! 펑펑! 퍼퍼펑!!! 내 입안에서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율율!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려보렴!" 

"아아-" 

아-하고 입을 벌리자, 입안에서 빨갛고, 노랗고, 파란 불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어떠니? 이번 케이크는 불꽃놀이 케이크야! 예쁘지 않니?" 

"아아- 합!" 

감동에 부푼 엄마의 표정을 뒤로하고, 나는 무심하게 입을 다물었다. 

"어머! 입을 아-하고 벌려야 불꽃놀이를 볼 수 있을 텐데, 입을 그렇게 꾹 닫으면 안되지."

"엄마. 턱이 빠질 것 같아요." 

"어머! 그렇겠구나. 호호호."

"엄마. 초록색 깃털은 저를 어디로 데려갈까요? 거기서 제가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전 아직 어려요. 힘없는 꼬마 마녀일 뿐이라고요." 

"율율. 앞으로 한발 나가기도 전에 뒤로 두 걸음 물러설 필요는 없어. 한발 한발 내딛다 보면, 막상 별일이 아닐지도 몰라. 아직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잖니.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 거고. 걱정하지 말고, 기대부터 해봐." 

"기대해도 되는 걸까요?"

"당연하지. 그리고 율율! 엄마를 봐. 엄마는 묘약을 제조하다가 지금은 아빠와 함께

마법 빗자루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잖니? 깃털이 이끈 곳이 너와 맞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른 일을 해도 좋아. 하지만 그 일이 너와 맞는지, 아닌지를 알려면 일단 겪어봐야 알 수 있겠지?" 

초승달이 뾰족하게 날을 세운 그 밤,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

했다. 

'초록색 깃털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잠깐 눈을 감은 것 같은데, 번쩍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몸도 날아갈 것처럼 개운했다. 세수를 하고, 엉킨 머리를 풀어내고, 엄마가 정성껏 만들어주신 옥수수 파이를 먹었다. 이제 남은 건, 이 집을 떠나 초록색 깃털이 이끄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율율! 엄마 아빠한테 편지하는 거 잊지 말고! 몸 조심하렴!" 

아빠는 떠나는 나를 못 보겠다며 눈물을 보이셨고, 엄마는 그런 아빠가 주책이라며 서둘러 내 등을 미셨다. 빗자루에 올라탄 나는 오른손을 높이 들어 엄마 아빠에게 인사를 했다. 인사를 마치자 빗자루는 하늘 위로 두둥실 올랐고, 머리에 꽂혀있던 초록색 깃털은 두 번 파르르 떨렸다. 그러자 빗자루는 잘 알겠다는 듯, 바람을 가르며 날았다. 슬며시 뒤를 돌아봤다. 정들었던 우리 집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산 하나를 넘고, 바다를 건넜다. 편백 나무로 우거진 숲길을 지나, 빨간 지붕의 앙증맞은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 하나도 지나쳤다. 그러다가 커다란 다리 하나를 건넌 끝에 도착한 곳은, 호두나무로 만든 단단한 문에 금빛 가루로 정확히 다섯 글자, <고민 상담소>라는 글자가 새겨진 곳이었다. 


"고민 상담소...?"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멍하니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빗자루는 탁탁 문을 두 번 두들겼다. 

"야! 네 멋대로 문을 두들기면 어떡해???" 

그때였다. 단단한 호두나무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고, 내 머리에 꽂혀있던 초록색 깃털은 기다렸다는 듯 톡 하고 빠지더니, 어두워 보이는 상담소 안으로 팔랑거리며 날아 들어갔다. 그 순간,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계속 서 있을 거니?"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상냥하지 않았다.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들어와. 할 일이 산더미라고!" 

차가운 데다가 짜증까지 살짝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 

"아! 네네. 들어갑니다!!!" 

왠지 빨리 뛰어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들어서자 호두나무 문은 다시 드르륵 소리를 내며 굳게 닫혔다. 실내로 들어서자 보랏빛 벽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책상 세 개는 디귿자 모양으로 배치돼 있었다. 책상 위로는 움직이는 양초들이 놓여 있었다. 그 양초들은 서로 후후거리며 옆에 있는 다른 양초의 불을 꺼뜨리는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 장난은 무척 재미있어 보였다. 나도 모르게 킥킥 웃었다. 그러자 탁! 하며 책을 덮는 소리가 나더니, 벽지와 똑같은 보랏빛 쇼파가 빙그르 한 바퀴를 돌았다. 그 쇼파에는 방금 전 목소리의 주인공이 앉아있었다. 상냥하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 은발 머리에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나와 같은 마녀였다. 키는 나보다 세 뼘 정도는 더 커 보였다. 

"어...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잠시만!" 

보랏빛 쇼파에 앉아있던 은발 마녀는 내 소개를 막아서며, 책상 위로 하얀 종이를 쭉 펼쳤다. 그러자, 허공에서 팔랑거리던 초록색 깃털은 그 위에 무언가를 적어갔다. 

"이름은 율율. 빗자루 운전이 서툴고, 사랑의 묘약을 눈물의 묘약으로 잘못 만들어 두더지 선생을 이혼시킬 뻔한 적이 있다. 토끼 변신술 수업시간에는 혼자만 개구리로 변신한 적도 있다." 

은발 마녀는 초록색 깃털이 적어주는 대로 소리 내어 읽었다. 실수투성이였던 학교생활이 오늘 처음 보는 은발 마녀에게 모조리 공개되자, 나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물들어갔다. 입이 있었지만, 금붕어처럼 뻐끔뻐끔거릴 뿐,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율율은 동물들과 교감하고,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단점만 줄줄 써내려갔던 초록색 깃털이 마침내 내가 제일 잘하는 걸 쓰기 시작했다. 

나는 초록색 깃털이 계속 움직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초승달처럼 쑤욱 올라갔던 내 입꼬리는 다시 추욱 쳐졌다. 

"응? 표정이 왜 그래?" 

은발 마녀는 내 앞으로 불쑥 얼굴을 내밀며, 양쪽 검지손가락으로 내 입술 끝을 쭈욱 위로 치켜 올렸다. 

"지금 이 표정! 딱 좋은데?" 

은발 마녀가 입술 끝을 올려놓은 그대로 나는 얼음이 되어, 아주 어색하게 웃고 있는 모양새였다. 

"내 이름은 조야. 너와 같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이자, 너의 파트너기도 하지. 우리 앞으로 잘해보자." 

"아....네네! 선배."

"율율! 그냥 조라고 불러." 

"네. 조!"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는데? 긴장 풀고, 저쪽 자리에 앉으면 돼." 

내 자리는 조의 가운데 책상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는 책상이었다. 책상에 앉자 움직이는 양초 하나가 나를 보고 '메롱' 하면서 촛불을 뱀의 혀처럼 길게 늘어뜨렸다. 

나는 메롱 대신 후- 하고 바람을 불어 촛불을 꺼뜨렸다. 그러자 꺼진 양초는 화가 났는지 화르륵 불을 뿜었다. 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다시 후-하고 바람을 불었다. 다시 또 불이 꺼지자 이번에는 자기 몸집보다 더 크게 불을 뿜으며 솟구쳤다. 

"계속 장난치면 차가운 물을 확 부어 버린다!" 

조가 소리치자, 내 책상 위의 양초는 다시 얌전해졌다. 

"율율! 양초와 씨름할 시간 없어. 지금 이 편지들이 안 보이니?"

"이게 다 뭐에요?"

"뭐긴, 고민 상담 의뢰서지! 맞다, 율율 너는 동물들과 대화 할 수 있다고 했지? 그럼 첫 번째 상담으로, 이게 좋겠다." 

조는 핑거스냅으로 손가락을 딱딱 두 번 튕겼다. 그러자 내 책상 위로 편지봉투 하나가 툭 떨어졌다.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평범한 편지봉투였다. 편지 내용을 읽기 전에 보낸 이부터 확인했다. 

"혹등... 고래? 조! 이 편지가 혹등고래가 보낸 편지라고요?" 

"맞아! 혹등고래가 단단히 사랑에 빠진 모양이야. 그런데 굉장한 음치래." 

"음치요? 그게 사랑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죠?"

"혹등고래는 노래로 자신의 짝을 찾아. 하지만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면 좋아하는 짝을 놓치게 될지도 몰라.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가 봐."  

"제가 뭘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율율! 걱정하고 고민할 시간에 혹등고래를 먼저 만나봐야 하지 않을까?" 

"아... 네네! 그런데 조.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저기 옷장을 열어봐. 그 안에 순간이동 망토가 있을 거야."

"순간이동 망토요? 굉장해!!" 

"멀리 출장을 가야 할 때는 빗자루보다 순간이동 망토가 제격이지. 물론 개인적으로 사용해서는 절대 안 돼. 출장 갈 때만 써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해.“

”네. 알겠어요. 조!“ 

”좋아. 그럼, 순간이동 망토를 입고, 왼쪽 주머니에 의뢰받은 편지봉투를 넣어봐." 

"아. 이렇게요?" 

나는 조의 말대로 혹등고래에게서 받은 편지봉투를 왼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내 몸이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조! 내 몸이 왜 이래요? 조! 어떻게 좀 해 봐요!!"

"율율! 잘 다녀와. 성공을 빌어!" 


내 몸은 공기처럼 투명해졌고, 그대로 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그 느낌이 썩 유쾌하지는 않아서,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떠보니, 어느새 낯선 곳에 도착해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고,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가 보이는 곳. 혹등고래들이 왁자지껄 모여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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