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등고래의 노래
따뜻한 바람이 내 곱슬머리를 간지럽혔다. 그때서야 나는 입을 쩍 벌리고 멍하니 서있다가, 혹등고래가 떼 지어 있는 걸 보고, 내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걸 알게 됐다.
옆을 보니, 내 빗자루도 함께 있었다. 순간 안심이 되었다.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걱정이 찾아왔다.
"세상에! 혹등고래가 이렇게 많이 모여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대체 여기서 어떻게 찾지?"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상담을 요청한 혹등고래를 찾기 위해 손 그늘을 만들어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았지만, 이건 바다속에서 진주알을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맞다! 편지가 있었지. 편지에 이름이 있을 텐데..."
나는 순간이동 망토 왼쪽 주머니에 들어있는 편지를 얼른 꺼내 보았다. 편지를 보낸 주인공의 이름은 '네루'라는 혹등고래였다.
"네루. 이름이 네루구나!"
나는 좀 더 가까이 혹등고래가 무리 지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배가 위로 보이게 솟구쳐올랐다가 등을 활 모양처럼 구부린 뒤, 머리부터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혹등고래도 보였고, 마치 한 마리의 우아한 나비처럼, 물속에서 넓고 긴 가슴지느러미를 펴고 하늘하늘 날아다니듯 수영하는 혹등고래도 보였다.
"저기!! 너희들 혹시 '네루'를 알고 있니???"
나는 두 손을 나팔처럼 만들어 크게 외쳤다. 내 목소리를 들은 혹등고래 몇몇은 수면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나를 쳐다봤지만, 이내 모두 관심이 없다는 듯, 도로 바다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 아이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그리고 '네루'는 어떻게 아는 거야?"
낮고 묵직한 목소리. 이건 혹등고래가 하는 말이었다. 동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의 능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기회를 놓칠새라, 얼른 내 소개를 했다.
"안녕!! 나는 마녀 '율율'이야. 내가 갑자기 나타나서 많이 놀랐지? 나는 '네루'가 보낸 편지를 받고 왔어. '네루'가 도와달라며, 상담을 요청했거든!"
"응? 마녀 '율율'? 저 아이는 우리 말을 알아 듣나봐!"
또 한 번 낮고 묵직한 혹등고래의 말소리가 들렸다.
"응! 난 너희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 너희들도 내 말이 들리는 거지?"
"들리다마다!!!!"
귀가 찌르르 할 정도로 큰 목소리를 낸 혹등고래 한 마리가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대답했다. 그 바람에 나는 물에 젖은 생쥐처럼, 바닷물을 옴팡 뒤집어쓰고 말았다.
내 머리와 옷을 다 젖게 만든 혹등고래는 이마에 하얀색의 물결 모양이 나 있는 녀석이었다. 눈은 까만 유리구슬처럼 영롱했다. 나는 넋을 놓고 그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앞머리에서 뚝뚝 떨어진 바닷물이 내 입안으로 주르륵 스며드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으...... 바닷물은 정말 짜구나."
"미안! 나 때문에 다 젖었네??"
"괜찮아! 햇볕에 마르겠지 뭐."
"하하하. 우리처럼 긍정적인데?? 그런데 '네루'는 왜 찾는 거야? 지금 그 녀석 노래연습 하느라 바빠 보이던데?"
"노래연습? 혹시 네루가 있는 곳을 알고 있어? 날 좀 안내해줄래?"
"어려운 일도 아니지. 내 등에 올라탈래? 데려다줄게!"
"음...."
나는 잠시 고민했다. 혹등고래의 등에 올라탄다면, 잠수를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렇게되면 짜디짠 바닷물이 콧구멍 속으로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아니. 나는 내 빗자루를 타고 따라갈게. 네루가 있는 곳까지 잘 부탁해!"
"좋았어! 그럼 잘 쫓아와!!!"
이마에 하얀 물결 모양이 나 있는 그 녀석은 15m나 되는 큰 키를 자랑하며, 바다 위로 훌쩍 뛰어오르다가 다시 바다속으로 깊게 잠수하는 재주를 부렸다. 그로 인해 푸른 바다 위로는 거대한 포말과 웅장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빗자루에 올라타서 내려다본 그 풍경은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을 만큼 장관이었다. 바닷물에 젖어있던 내 머리와 옷이 다 말라갈 즈음, 나는 상담소 앞으로 편지를 보낸 '네루'를 만날 수 있었다.
"저기 보이는 저 녀석이 '네루'야. 참! 조심해. 저 녀석은 엄청난 음치거든. 귀를 막고 만나야 할지도 몰라. 난 이만 간다! 또 보자 율율!"
"고마워!! 참, 넌 이름이 뭐니?"
"내 이름? '윙'이라고 해."
"윙! 만나서 반가웠어!!"
윙은 또 한 번 하늘 위로 점프를 하더니, 멋지게 바다 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날개처럼 꼬리를 철썩거리는 윙의 수영 솜씨는 다시 봐도 굉장했다.
"혹시, 고민 상담소에서 온 마녀?"
네루는 나를 알아보고, 가까이 다가왔다.
"어! 안녕? 난 '율율'이라고 해."
"굉장하다. 고래로 변신하지 않고도, 우리 말을 바로 알아듣다니?"
"고래로 변신하려다가 고릴라가 되어버릴지도 몰라. 내 변신술은 정말 엉망진창이거든. 그래도 다행이지 뭐야. 변신 없이도 난 모든 동물들과 대화할 수 있거든."
"그거 정말 다행이네! 물론 고릴라로 변신했어도, 정말 재미있었겠다!"
"흠. 글쎄... 그보다! 이 편지, 네가 보낸 거 맞지?"
"맞아. 3일 후면, 우리 혹등고래는 서로의 짝을 찾기 위해 청혼가를 불러. 보통은 내가 좋아하는 상대에게 열심히 준비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주곤 하지."
"사랑의 세레나데? 정말 로맨틱하다. 네루 너는 누구에게 불러주고 싶은데?"
"있어.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 이마에 하트 모양의 흰 무늬가 있는 아주 예쁜 친구지. 그런데 그 친구의 이상형이 노래를 잘하는 고래라는 걸 알게 됐어. 오... 세상에. 왜 하필이면 노래를 잘하는 고래일까? 그 친구의 마음에 들기 위해선 노래를 정말 잘해야 할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노래를 정말 못해. 제일 자신 없는 게 노래라고...!"
"음.... 네루! 그럼 잠깐 네 노래 좀 들어볼 수 있을까?"
네루는 흠흠 하며 목을 풀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휘우, 휘휘꾸우우우우, 끼우우욱, 휘휘휘."
네루가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내 옆에 서 있던 빗자루는 갑자기 몸서리를 치더니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고, 바다 위를 날던 갈매기는 눈살을 찌푸리며 왔던 길로 되돌아 날아갔다. 편지에 적혀 있는 대로, 네루는 음치가 확실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을 쥐어짜며 부르고 있었다. 게다가 음정 박자 무엇하나 맞는 게 없었다.
"네루! 멈춰!! 멈춰봐!!"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눈까지 꼭 감고 노래를 부르던 네루는 잘못한 것도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율율, 너도 내 노래가 듣기 싫지? 이거 봐. 이러니 누가 날 좋아하겠어. 음치인 나는 분명 혼자가 될 거야. 나만 짝을 찾지 못할 거라고."
"네루! 포기하기엔 일러. 아직 시간이 남았잖아. 내가 도와줄게. 남은 시간 동안 우리 열심히 연습해보자.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거야. 도레미파솔라시도. 이것부터 연습해보자."
"연습하면, 나도 노래를 잘할 수 있게 될까?"
"물론이지! 그 전에, 이 근처에 있는 마녀 호텔부터 잡아야겠어. 3일 동안 이곳에 있으려면 말야."
나는 어딘가에 숨어버린 빗자루를 목청껏 불렀다. 세 번쯤 부르자 마지못해 나타난 빗자루는 나를 바닷가 근처에 있는 마녀 호텔로 데려갔다. 바닷가 근처에 있는 곳 답게, 모래로 쌓아 올린 이 호텔은 바람이 불 때마다 모래가 솔솔솔 날아다니는 허름한 건물이었다. 도넛처럼 가운데가 뻥 뚫린 둥근 문고리에도 모래가 잔뜩 쌓여 있었다. 나는 후하고 바람을 불어 모래를 털어낸 뒤, 문고리로 문을 두 번 탁탁 두들겼다.
"뉘신가?"
바다처럼 푸른 빛깔의 머리카락을 가졌지만, 등이 굽고 얼굴에는 전체적으로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 마녀 한 분이 나오셨다.
"아!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는 '율율'이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마녀가 찾아왔구먼. 들어오려무나."
모래로 쌓아 올린 허름한 겉모습과는 달리, 실내는 깔끔하게 정돈이 잘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잔꽃 무늬의 천으로 뒤덮인 쇼파에 앉자, 그와 비슷한 잔꽃 무늬의 주전자가 스스로 움직이며, 잘 우려낸 홍차를 한잔 따라주었다. 나는 그것을 한 모금 마셨다.
"으..."
씁쓸하면서도 떫은 홍차의 맛을 즐기기에는 아직 나는 어렸다. 우유 생각이 간절했다.
"냉장고에 우유가 아주 조금 남아 있을게다."
할머니 마녀는 내 마음을 단박에 알아차리셨는지, 우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셨다.
"아! 고맙습니다."
따뜻한 홍차에 찬 우유를 들이붓자, 잔꽃 무늬의 주전자는 뚜껑을 들어 올렸다 놨다하면서,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는 행동을 취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홍차에
우유를 넣어 마시는 밀크티가 내 입에는 딱이었으니까.
"이제 막 졸업을 한 마녀로구나. 혹시 이게 첫 일이니?"
"맞아요. 이번이 상담사로서의 첫 출장이기도 하고요. 이번 일을 잘하면 돈도 받을 수 있을 거에요. 숙박비는 그때 꼭 갚도록 할게요. 그러니 이틀 밤만 재워주세요. 밥도 아주 조금만 먹을게요."
"허허허허허허. 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네가 일하고 있는 곳에 출장비를 청구하면 되니까. 아니! 파트너가 이런 이야기도 안 해주든?"
"설명을 들을 새도 없이, 제가 순간이동 망토를 입고 편지를 주머니에 넣어버렸거든요. 그렇게 순식간에 이동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허허허허허허. 이렇게 배우면서 크는 거 아니겠니? 한 번의 경험은 열 번의 설명보다 더 낫단 말이지! 이번 첫 출장이 너에게 귀한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마녀 할머니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나는, 모래성 마녀 호텔에 머물면서 네루의 노래연습을 함께 도왔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자! 네루, 어제는 '도레미파'를 연습했으니까, 오늘은 '솔라시도'까지 해보자. 자 나를 따라해 봐. 솔~~"
"솔...."
"네루?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음을 더 높여서 불러볼래? 솔!"
"솔...."
"아니, 지금 네가 내고 있는 음은 '미' 정도 밖에 안 돼. 조금 더 높여볼까? 솔~~"
"휴. 율율! 아무래도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난 아무리 해도 안 된다고."
"네루! 아무리 해도 안 된다니? 기억 안나? 어제 도레미파를 멋지게 성공했잖아. 오늘도 넌 잘해 낼 거야. 연습할 시간도 충분히 있는데, 이대로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까워."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연습을 하면 할수록 내가 노래를 정말 못한다는 걸 더 확실히 알겠어."
"네루. 나도 어디선가 들은 얘긴데, 이 세상에 헛된 시간은 없대. 언젠가는 네가 한 노력과 연습이 빛을 볼 때가 꼭 올 거야. 그러니까 우리, 해보기도 전에 안 될 거라는 결론부터 내지 말자."
"정말 빛을 볼 날이 올까?"
"물론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한다면, 무슨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돼 있고!"
"그래! 좋았어! 우리 될 때까지 계속 연습해보자!"
네루는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몽땅 노래연습에 시간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혹등고래가 서로의 짝을 찾는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그날 밤, 나는 최종연습을 돕기 위해 네루를 찾았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보다 30분이 훌쩍 지나도, 네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네루! 어디 있어? 네루???"
나는 바다 근처를 서성이며 네루를 찾았다.
"덩치 큰 녀석이 대체 어디로 숨은 거야?"
"흑... 흑흑...."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커다란 바위 뒤에서 누군가 훌쩍이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살며시 다가가 보니 '네루'가 꼬리를 펄떡거리며 울고 있었다.
"네루! 무슨 일이야? 왜 울고 있어?"
"율율. 큰일 났어. 연습을 너무 많이 했나봐. 목이 다 쉬어 버렸어... 내일 노래해야 하는데, 이렇게 갈라지는 목소리로는 어떤 노래를 해도 아름답지 않을거야."
네루의 목소리는 정말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연습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목이 다 쉬어서 몸이 움츠러들 만큼, 끽끽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율율! 너는 마녀잖아. 나를 위해서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주지 않을래? 그것만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그 친구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미안해. 나는 사랑의 묘약을 만들 줄 몰라."
"뭐? 말도 안 돼. 넌 마녀잖아. 마녀가 사랑의 묘약을 만들 줄 모른다니, 그게 말이 돼?"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어. 설령 만든다 해도, 사랑의 묘약이 힘을 발휘하려면,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나에게 주어야 해. "
"나의 가장 소중한 것...?"
"그래. 어쩌면 너의 그 멋진 꼬리. 꼬리를 잘라, 내게 주어야 할지도 몰라."
"괜찮아! 내 꼬리를 원한다면 바로 떼어서 너에게 줄게."
"아니, 네루! 난 받을 수 없어. 너의 꼬리를 떼어간다면, 넌 평생 수영을 할 수 없게 될 거야. 미안해. 네루. 나는 사랑의 묘약을 만들 수 없어."
"맙소사. 난 망했네. 아무도 내 노래를 들어주지 않을 거야."
"네루... 우리 엄마가 그랬어. 앞으로 한발 나가기도 전에 뒤로 두 걸음 물러설 필요는 없다고. 난 네루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의 진심을 안다면, 분명 네 노래를 들어줄 누군가가 나타날 거야."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하늘과 바다는 데칼코마니 작품처럼 사이좋게 맑고 투명한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가장 먼저 노래를 시작한 건 '윙'이었다. 이곳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혹등고래. 나를 네루가 있는 곳까지 안내해 준 친절하고 다정한 '윙'이었다. 윙은 바다 수면 위에서 고개를 번쩍 들더니, '휘유휘유'하는 휘파람 비슷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바다 밑으로 깊숙이 내려가더니, 20분 정도 규칙적인 패턴의 노래를 불러댔다. 그러다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서 처음에 불렀던 '휘유휘유'하는 휘파람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불렀다. 그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멜로디였다. 사람들의 귀에는 그저 '우우우'하거나 '휘유휘유'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에 불과하겠지만, 내 귀에는 이토록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노래가 없었다. 특히 혹등고래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종의 주제가처럼 모두가 똑같은 노래를 불렀고, 동일한 패턴으로 움직이며 자신의 짝을 찾았다. 첫 마디를 부를 때는 수면 위로 고개를 들었다가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마디를 부를 때는 바다 밑으로 내려가 세레나데를 열창했다. '윙'을 비롯해 다른 혹등고래들도 모두 힘껏 노래를 불러댔다. 하지만 '네루'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노래를 하지 않고 있었다.
"네루. 뭐하고 있는 거야? 노래해야지!"
나는 네루를 향해 소리쳤다. 네루는 내 목소리를 들었지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채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네루, 제발! 노래를 불러줘. 제발!"
나와 눈이 마주친 네루는 길게 한숨을 내 쉬더니 결심했다는 듯, 눈을 꼭 감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휘유휘유, 휘유우우우우우우"
비록 네루의 목소리는 모두를 감동시킬 만큼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네루는 진심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그러는 사이, 다른 혹등고래들은 저마다 짝을 찾아 넓은 바다를 마구 헤엄치며 놀았다. 하지만 네루는 아직 혼자였다. 네루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네루! 포기하지마! 계속 노래해!!"
나는 왜인지 눈물이 났다. 목소리 끝이 떨려왔지만, 눈물을 훔치며 네루를 응원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바다 밑에서 마지막 마디까지 노래를 하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네루 앞에 이마에 하트모양의 흰 무늬가 있는 고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네루가 좋아하는 그 친구라는 것을. 나는 가만히 두 녀석의 대화를 들어보기로 했다.
"켈리! 정말 너야? 내 노래를 듣고 온 거야?"
"물론이지. 네루! 그런데 네 노래 실력은 여전히 형편없는 걸?"
"아..... 그렇구나."
"노래 실력은 엉망이었지만, 네 노래소리가 가장 따뜻했어. 저 멀리서부터 헤엄쳐 오는데, 나를 사랑하는 네 마음이 느껴지더라. 고마워. 나를 이곳까지 불러줘서."
"켈리... 난 네가 노래 잘하는 고래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
"노래 잘하는 고래를 좋아하는 건 맞아. 하지만 난 너를 제일 좋아해. 멋진 꼬리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수영하는 너를 좋아하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사냥하는 너를 좋아하고, 나를 위해 진심으로 노래해 준 너를 많이 좋아해."
"말도 안돼!! 켈리, 진심이야?"
"당연히 진심이지!"
"난 네가 날 좋아하지 않을 줄 알았어. 난 정말 노래를 못하니까."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그건 아무 상관없어. 네가 날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그 마음이 중요한 거지."
"켈리! 너를 좋아해. 많이 많이 좋아해!!"
"네루! 나도 너를 좋아해."
네루의 행복한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네루는 켈리에게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속삭이더니,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단숨에 나에게 다가왔다. 그 바람에 내 머리와 옷은 또 흠뻑 젖고 말았다.
"율율!"
"네루! 내 머리와 옷이 다 젖긴 했어도, 너의 행복한 표정을 보니까, 나도 정말 기쁘다."
"이런.. 나도 모르게 급하게 오느라.."
"괜찮아. 옷은 금방 마르더라. 그보다 네루! 축하해. 네가 좋아한다던 그 친구가 켈리구나."
"헤헤.. 율율, 네 말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를 잘한 것 같아. 맞아. 중요한 건 노래실력이 아니라, 진심이더라. 용기 낼 수 있게 응원해줘서 고마워. 영원히 너를 잊지 않을게."
"나도 너를 잊지 않을게. 행복하렴!"
"율율, 너도!"
그렇게 네루는 날개 같은 커다란 꼬리를 철썩거리며 켈리와 함께, 더 먼 바다로 길고 긴 여행을 떠났다. 이제 나도 다시 돌아갈 시간이었다.
"할머니! 잘 쉬다가 가요. 감사했어요."
"율율, 다음에 또 놀러 오려무나. 네가 또 보고 싶을 것 같구나."
"저도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그런데 할머니. 전 어떻게 하면 돌아갈 수 있나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 마녀로구나. 자, 그 순간이동 망토를 입고, 왼쪽 주머니를 살펴보려무나."
"왼쪽 주머니라면, 네루에게서 온 편지가 있을 텐데..."
나는 순간이동 망토를 걸치고, 왼쪽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네루가 보낸 편지가 주머니 밖으로 쏙 빠져나오더니, 갑자기 편지에 화르륵 불이 붙었고, 까맣게 타들어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은 또 다시 투명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런 나를 보고 놀란 빗자루는 찰싹 내 왼손에 달라붙었다.
"일이 잘 해결되면, 이렇게 다시 돌아갈 수가 있는 거군요!"
"율율,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웠구나. 자! 조심히 가거라!"
"할머니! 건강하세요!!!"
할머니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나는 돌아와 있었다.
보랏빛 벽지와 책상 세 개가 디귿자 모양으로 배치된 그곳,
고민 상담소 사무실로 나는 무사히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