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에 실린 '율율’
다시 돌아온 사무실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꺄! 잘 도착했다. 조!! 다녀왔어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무실을 둘러보자, 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움직이는 양초들 몇몇이 졸고 있는걸로 보아, 조가 자리를 오랜 시간 비운 것 같았다. 나는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기지개를 켜고, 순간이동 망토를 탁탁 털어 옷장에 걸었다. 책상에는 상담의뢰서가 아직도 잔뜩 있었다. 그런데 그걸 당장 읽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 조도 없으니, 졸고 있는 양초처럼, 나도 아주 잠깐 잠을 청해볼까 싶어서, 쇼파에 털썩 앉아 몸을 기댔다. 내 머리카락에는 아직도 바다 냄새가 베어 있었다. 킁킁 거리며 코를 벌름거리자, 바닷물의 짠 냄새가 더욱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이곳에 올 때 챙겨왔던 내 가방을 찾았다. 가방은 내 책상 옆에 놓여 있었다. 가방을 열어 꾸깃꾸깃해진 마녀 모자를 집어 들었고, 바다의 짠 냄새를 가리기 위해 모자를 푹 눌러썼다.
"모자를 쓰는 것보다, 머리를 감는 게 어때?"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면서, 조의 모습이 보였다. 내 휴식은 바로 끝이었다.
"조! 보고 싶었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 그나저나 율율? 네가 신문에 났던데?"
"신문이요?"
정말이었다. 1면은 아니었지만, 2장 정도 넘기고 나니, 졸업식 때 찍은 내 사진과 함께 혹등고래의 모습이 신문에 커다랗게 실려 있었다.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마녀 율율, 마법의 힘을 쓰지 않고도, 혹등고래의 첫사랑을 이뤄주다!>
"와! 신기해! 내가 신문에 나오다니!!"
"그만큼 율율 네가 일을 잘했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조' 이 제목이요. 이건 칭찬일까요? 여기 이 부분이요. '마법의 힘을 쓰지 않고도', 이 부분이 좀 걸리는데..."
"글쎄... 어쨌든 중요한 건, 율율 네가 신문에 났다는 거 아니겠어?"
"잠깐! 이 기사를 쓴 마녀의 이름이... 리아??"
"아는 사이야?"
"알다마다요! 이건 칭찬이 아니에요. 리아가 저를 깎아내리려고 이런 기사를 쓴 거라고요."
나는 신문을 있는 힘껏 구겨, 공처럼 만들어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골인! 휴지통에 기가 막히게 잘 들어가네? 이것도 재능인걸?"
"조! 놀리지 말아요. 생각해보면 리아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에요. 저는 혹등고래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어요. 그 녀석이 스스로 해낸 거라고요. 전 그저 옆에서 응원만 해줬을 뿐이고요."
"율율! 만약 너의 응원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위로를 하고, 응원을 해주는 게 우리 상담 마녀의 역할이고 할 일이야. 넌 그 일을 아주 잘 해낸 거고. 이런 기사 한줄 한줄에 상처받지 말고, 다음 미션을 더 잘 해내면 되는 거 아니겠어?"
"다음 미션이요...? 또 있어요? 좀 쉬면 안될까요?"
"지금도 충분히 쉰 것 같은데? 자, 받아!"
이번에도 조는 핑거스냅으로 손가락을 딱딱 두 번 튕겼다. 그러자 편지봉투 하나가 내 머리 위로 톡 떨어졌다.
"뿔논병아리...? 조! 이번에 만나볼 동물은 병아리에요?"
"네가 생각하는 노랗고 작은 병아리는 아닐걸?"
나는 봉투를 열어 편지 내용을 읽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폴이라고 해요. 저는 지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어릴 적에 저와 함께 놀던 친구들은 모두 무럭무럭 자랐어요. 하지만 제 키는 여전히 그대로죠. 저는 너무 작고 겁도 많아요. 그래서 매일 놀림을 받고, 늘 혼자 있어요...'
편지의 내용은 아직도 더 남아있었지만, 시작부터 폴의 외로움이 묻어났다. 당장이라도 폴에게 달려가 어깨를 내어주며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문득 내 머릿속에 이런저런 궁금증이 떠올랐다.
"조! 궁금한 게 있어요. 우리는 동물들의 상담 의뢰만 받나요?"
"아니, 동물들의 상담 의뢰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아. 알아서들 잘 해결하는 편이거든."
"그런데 저에게는 왜 동물상담만 맡기는 거에요?"
"그야, 율율 네가 동물들의 말을 바로 알아듣는 재능이 있기 때문이지? 보통의 마녀들은 동물과 대화를 하려면, 그 동물로 변신해야 가능하잖아. 그런데 넌 변신을 하지 않고도 바로 대화가 가능하니까, 얼마나 대단해?"
"그럼 이 편지는요? 동물들이 우리 마녀의 언어를 알리가 없을 텐데, 마녀의 언어로 쓰여 있잖아요."
"율율!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야 당연히 마녀우체국을 방문했겠지? 그곳에 가면 마법의 편지지가 있어. 자신의 언어로 편지를 써도, 우리에게 도착할 때는 마녀의 언어로 번역돼서 도착하지. 이건 마녀학교 2학년 즈음에 배웠을 텐데, 율율! 혹시 수업시간에 졸았니?"
나는 내 학창시절의 모습을 조에게 들킨 것 같아서, 헛기침을 하고 얼른 말을 돌렸다.
"흠흠. 조! 저는 얼른 폴에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잠시만요! 폴의 상담의뢰서는 어디 있어요?"
"편지 내용을 다 읽지도 않고, 정리된 상담의뢰서만 읽어보시겠다?"
"음... 편지 내용이 너무 길어서요... 아! 물론 다 읽어보긴 할거에요!!"
"자, 여기! 폴이 상담을 의뢰한 이유는 이거야. 예전처럼 친구들과 다시 잘 어울리고 싶다. 지금 친구들이 한창 배우고 있는 하트 춤을 나도 함께 배우고 싶다."
"하트 춤이요?"
"뿔논병아리의 구애춤이라고도 하지.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나면 춤을 추거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박자야. 박자가 잘 맞아야 좋아하는 짝과 평생을 함께할 수 있지.
하지만 엇박자로 잘 맞지 않으면 상대가 외면하기도 해. 지금 폴은 그 춤을 배워야 하는 시기인가 봐. 하지만 그 누구도 폴을 껴주지 않으니, 아마 혼자서 끙끙대고 있겠지?"
"아예 방법을 모를 수도 있겠네요. 춤을 추는 순서를 모를 수도 있고."
"그건 만나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는데?"
"맞아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요. 조! 다녀올게요!"
"몸 조심히!"
나는 조금 전 걸어놓았던 순간이동 망토를 다시 꺼내 입었다. 마녀 모자는 벗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머리카락에 베어 있는 바닷물의 냄새가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있는 힘껏 모자를 푹 눌러쓴 나는 망토의 왼쪽 주머니에 폴의 편지를 집어넣었다. 내 몸은 또 다시 점점 투명해졌고, 나를 놓칠새라 빗자루는 얼른 내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는 또 공기에 뒤섞여 바람처럼 날아가는 중이었고, 멈칫하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갈대숲으로 둘러싸인 파랗고 투명한 호수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