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유교사회에서의 여성 지위 차이의 원인분석
세계경제포럼(WEF) 발표, '세계성차별리포트(Global Gender Gap Report)에 따르면, 베트남의 성평등 순위는 146개국 중 83위(2022년 보고서)다. 한국은 99위를 차지했다. 불행하게도 동남아시아에서 태국이 79위로 제일 높고, 중국은 102위. 일본은 116위로 선진국 중에서는 최하위에 랭크되었다.
왜 아시아 국가들은 유독 남녀평등 부분에서는 낮은 점수를 기록하는 것일까? 특히 유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중국과 한국, 베트남, 일본은 모두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선진국에 포함된 한국과 일본이 아직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그저 남존여비 사상과 유교적 가부장제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베트남 여성이 한국의 여성보다는 보다 높은 지위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 원인을 찾고 있었다. 단순히 사회주의 국가여서 남녀평등이 실현되었다 또는 프랑스와의 독립전쟁, 남북통일전쟁을 거치면서 남성들이 대부분 죽음으로써 여성들이 그 몫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고, 역사적으로는 하이바쯩 자매의 대중국 독립투쟁과 국가 건설 등으로 베트남 여성들이 선천적으로 삶에 강했다는 것은 단편적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그 이면에 한국과는 다른, 같은 유교사회에서도 역사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현상이 사회에서 나타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베트남의 한 다문화가정의 아내이자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한국학과 호 티 롱안씨의 박사학위 논문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일부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의 글은 대부분 그 논문의 내용을 인용하거나 정리한 것임을 밝혀두면서 유교의 영향을 받고 남존여비 사상이 묻어 있으면서도 베트남의 여성이 한국 여성보다 보다 높은 지위와 역할을 인정받는 이유에 대해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가족 내 여성의 역할 및 지위에 있어 베트남은 경험 많은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교문화권 내에서 여성의 지위라는 것은 한계를 가졌음에도, 상대적으로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그에 따른 지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에서는 “남편은 논을 갈고, 아내는 모를 심으며, 물소는 써레질을 한다(Chồng cày, vợ cấy, con trâu đi bừa)라고 하여 베트남 여성들이 농사일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며 가정경제에 기여하는 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농사일에서 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가족 내에서 어머니는 가정경제 담당자이며 자녀교육도담 당하였다. 즉 어머니의 역할은 아버지만큼 때로는 아버지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여성은 주로 가사 일에만 전념해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베트남 여성은 전통적으로 집안내의 대소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높은 지위의식이 있어왔다. 베트남사람의 생계방식이 주로 소농이라는 점에서 가족구조 또한 소농,소가족에 입각한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이런 가부장적인 성격은 어디까지나 형식이고 실제로는 양면성을 갖는다. 양면성의 가족구조는 여전히 여성으로 하여금 가족을 대신해서 사회의 대외적인 일을 하게 한다. 즉 베트남 여성들은 한국 여성보다 활동적인 범위가 사회로 확대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조형률의 법조문에서 보면 베트남 여성에게는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되어 있었다. 또한 이혼 후 남편이 재혼을 방해할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여성의 권한을 폭넓게 인정하였다. 농사일에서 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가족 내에서 (시) 어머니는 가정경제 담당자이며 자녀교육을 주관하는 가정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가족 재산의 분할에 있어서도 딸이 차별을 받지 않았고 부모 살아생전에도 자녀에게 상속이 이루어졌다. 여성의 권리와 권한이 상대적으로 보장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둘째, 전통시대 베트남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부부별산제와 남녀균분상속제를 들 수 있다. 베트남 가족재산의 경우 남편의 재산, 아내의 재산 및 부부공동의 재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베트남 법에서는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고 자녀 모두 부모의 유산에 대해 동등한 상속권이 인정되어 있었다. 부부간의 재산소유권과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점은 남편이 아내의 재산을 상속할 권리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부부 사이에 자녀가 없을 때조차도 처의 재산은 그가 사망하고 나면 그의 부모나 친족에게로 되돌아갔고 그의 제사도 이들에 의해 지내졌다. 부부의 재산권에 있어서는 남편 재산이나 부인 재산은 결혼 생활 중에도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독립된 채로 존재하였으며 단지 그 관리만 공동으로 하였다. 남편은 부인의 재산을 지배할 권리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녀가 없이 부인이 사망했을 때조차 그녀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이 없었다.
즉 부부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제력이다. 아내의 경제력이 약할수록 남편에 대한 관계에 있어 예속의 정도가 강해지고 아내의 경제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남편에 대한 상대적 지위는 높아진다. 베트남에서 결혼한 여성의 이러한 재산상의 권리는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윤리와 출가외인 개념처럼 여성이 결혼에 의해 자신의 원가족과 완전히 분리되어 남편의 집안에 예속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이렇듯 베트남의 경우는 유교가 수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재산권을 계속 인정해 주었다는 점에서 한국과 큰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조선시대 중기 이전까지는 재산상속에 있어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았다. ‘남녀균분상속’이라 하여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고 균등하게 상속해 주었다. 이로 인해 여자들도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고 자신의 재산을 매매할 수 있었으며 상속에 있어서도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만약 여자가 죽으면서 상속자를 지명하지 않을 경우 그 재산은 여자집안으로 귀속되게 하여 남자의 재산권이 미치지 못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보장된 여자의 재산권이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이르러 성리학이 사회전반에 수용되면서 남녀의 관계가 대등한 관계에서 차별적인 관계로 변화되었고 재산상속에 있어 여자들이 제외되면서 급속도로 남성중심사회로 변모해 갔다. 가부장 체제 하에서는 상속도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은 장자가 결혼하면 부모와 동거하면서 부모를 봉양하고, 조상의 제사를 드리며, 외부 손님을 접대해야 하기 때문에 장자우대 불균등 상속을 행하여 왔다. 한국에서는 아들이 중요하고, 큰 아들이 가계를 계승해야 하므로 자식이 없으면 가까운 친척에서 양자를 들여 직계가족의 형태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하였다. 딸의 경우는 형제순위나 나이가 무시되었으며, 재산 상속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학자들은 부인이 남편에 비해 집안이나 사회에서 신분이 일반적으로 낮은 것은 그 주요 원인이 재산의 소유권이 없고 경제적으로 남편에 의존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전통시대 베트남의 부인들은 결코 남편에 비해 신분적으로 열등했다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편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재산을 소유했고 또 경제적으로도 매우 활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베트남사람은 형제를 창자와 피와 같이 여긴다. 반면 한국사람들은 ‘피를 나눈 형제’라고 표현할 뿐이다. 베트남에서는 인체의 중요한 요소인 창자를 추가함으로써 보다 긴밀성을 확대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형은 아버지의 역할을 이어받아 아우에 대한 아버지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상명하복관념이 부자관계뿐만 아니라 형제관계에서도 엄격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마을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공동체이다. 베트남사람이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한 개인의 모든 희로애락이 그 공동체의 공사(公事)와 연관되어 있었다. 따라서 공동체사회에서 한 구성원의 결혼은 자연적으로 결혼당사자의 사사(私事)가 아니라 가족, 친족, 그리고 마을과 연관되고 있다. 혼인이 가족과 친족에게는 혈통유지, 노동력확보, 명예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을에도 토지분배와 같은 경제적인 변화에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시) 어머니가 가족 내와 공동체 내에서 경험의 풍부와 보다 나은 우월적인 지위를 통해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베트남전통사회에서 공동체문화를 강조한 현상으로 인하여 가족 내에서나 공동체 내에서 여성의 역할이 강조되고 활동영역도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베트남의 가족제도, 가족관계는 부계제, 남아선호사상, 조상제사의 중시 등에서 외형상 한국제도와 유사점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재산상속과 경제력의 유지, 부인으로서의 지위와 권한 인정 그리고 공동체 내에서 여성의 활동 및 역할 보장으로 사회적 활동이 유지되었다는 점이 전통 한국의 여성과는 차별화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베트남은 유교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고유의 문화가 보장되고 계승했다는 점이 지금의 차이를 나태내고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도 고려시대 그리고 조선시대 전기까지만 해도 성평등 상속법 및 남편의 부당한 재혼 금지법 등 베트남과 유사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였으나, 조선시대 후기 성리학의 도입 및 부정한 발전이 남녀불평들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불쾌하고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우리가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후 이혼을 하면 50:50으로 나눈다는 것을 들으면 손해본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도 어찌보면 기존의 삐뚫어진 유교적 관념으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