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팁 문화 상승의 주범
베트남 물가가 참 많이 올랐다. 평가절하된 한화 환율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베트남 물가를 올리는데 한국인도 한 몫하고 있다면 믿겨질까?
베트남어를 공부하기 위해 호찌민시 인문사회대학교의 한국어학과 학생을 소개받아 개인교습을 받은 적이 있다. 수업료는 매회 1시간 30분에 30만동(약 1만 5천원). 수업료가 적지는 않지만, 한국에 비하면 저렴하고, 한국에선 그렇게 할 수도 없기에 진행하였다. '공부에 돈을 아껴서야!'라는 생각도 함께. 학생인 과외선생님은 수업 없는 날에는 시내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과외도 한다고 한다. 시내에 있는 일본계 4성급 호텔의 레스토랑 쪽에서 근무를 하는데 시급은 24,000동(약 1,200원)이라고 한다. 학생이 과외를 하는 것은 약 10배 급여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공부보다 과외가 더 소중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국인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것이니 자기도 한국어 공부도 되고 돈도 버니 일거삼득인 셈이다.
외국인들이 시내 임차료와 아파트 임차료를 다 올려 놓았다는 말이 있었다. 베트남에 롯데리아, KFC, 졸리비가 시내 매장 임차료 가격 다 올려 놓았고, 한국 사람들이 골프장 캐디피, 가라오케, 마사지 팁 가격 다 올려 놓았다고 하는 말도 많았다. 외국인에게 파는 아파트도 한국사람, 중국사람들이 가격을 올려 놓았다는 소리도 많이들 들었다. 중국인들이 제주도의 땅값을 다 올려놓았다고 했었던 것처럼.
필드에서 유일한 아군은 캐디라고 했던가?
라운딩을 하는 동반자도, 그린도 홀도 모두 플레이어에게는 적이고, 극복해야 할 대상들이다. 그런데 캐디만큼은 나의 의지에 따라 적이 될 수도 있고 동반자가 될 수도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 날 캐디와 마음이 맞아 믿고 샷이나 퍼팅을 하였는데 성공을 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 된다. 하지만 둘이 마음이 맞지 않으면 그 날 하루는 엉망이 되어버리고 만다.
베트남에서는 1인 1캐디로 운영된다. 캐디의 중요성을 아는 분들은 일부러 사전에 캐디를 지명하고 라운딩에 지원을 받기도 한다. 이 때 플레이어에게 200,000vnd(1만원 정도)가 추가로 부과된다. 하지만 정말 마음에 맞는 캐디가 있다면 1만원 정도야 무슨 문제이겠는가!
호치민시를 위시한 남부에서 캐디들이 가장 괜찮다고 소문이 난 곳은 롱탄골프클럽이다. 우선 개장한 지가 20년이 넘었는데 캐디 교육 등이 정말 잘 유지되고 있는 듯 하다. 거리 측정이나 코스 설명, 그리고 그린에서의 라인 설정 등 전문적인 기술은 물론이고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에 익숙해서인지 밝은 모습으로 플레이어와 동반자들을 지원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잘 유지하는 것 같다. 남부에서 제일 큰 36홀을 운영하기 때문에 캐디들의 숫자도 몇 백명이 된다고 한다.
라운딩을 하는데 한 쪽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동반자의 캐디 입에서 "저 오늘 물 올랐어요"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럼 라운딩 끝나고 저녁 같이 오케이?"라고 하자 옆의 캐디들도 웃으면서 "오케이"라며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그만큼 라운딩이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샷에 집중하다가도 relax를 할 수 있는 캐디 동반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날 나의 캐디도 실력이 뛰어나고 재치도 있어 즐거운 라운딩을 마쳤다. 그래서 모두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라운딩을 마쳤고 마지막 클럽들을 확인하고 팁을 건네는 순간 최상의 기분이 푹 꺼져 버렸다. 예전과 같이 40만동(한화 약 2만원)을 건네니 갑자기 캐디의 얼굴이 변하는 것이다. 옆의 동반자는 캐디를 지정해 20만동을 더 주고 했는데 자기는 그렇게 잘 서포트 했는데 왜 그만큼을 안 주냐는 표정이다. 내가 주저하다 보니 옆의 동반자도 어찌해야 할 지를 몰라 다른 사람에게 얼마를 주어야 하는 지를 묻는다. 내가 결정했다. 동반자에게도 그냥 40만동만 주라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번에도 또 더 주게 된다고 하면서. 그렇게 캐디 팁은 올라가고 있었다. 정당하게 팁을 주고도 마치 잘못한 것 마냥 주저주저 캐디에게 후다닥 인사를 하고 클럽으로 들어와 버렸다.
한 분이 물어 보신 적이 있다. 분명히 부킹을 할 때, 그린피, 캐디피, 카트 모두 포함이라고 하는데 왜 캐디한테 40만동이나 더 주냐고. 그냥 팁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그럼 진자 팁이여야 하는데 이건 정해진 금액에, 그것도 지들이 얼굴 붉히는 꼴은 뭐냐고. 그 분 말씀이 100% 옳다. 하지만 현실은 또 그렇지 않은 게 속상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사실 이렇게 말하고도 내가 속으론 불편하다)
관광차 또는 업무차 잠시 베트남에 오신 분들이 한 번 필드에 나가서 캐디들에게 팁을 주는 것, 노래방, 마사지에서 건네주는 팁을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걸 현지인들이 이용해 다음 손님들에게 강요(?)한다는 것이 아쉬운 것이다. "전 손님은 얼마를 줬는데..." 빈정 상하게 만드는 그 한마디에 베트남 팁 물가는 또 한 번 오른다. 사실 베트남은 한국처럼 공식적으로 팁이 없는 문화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