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가족, 신앙과 종교가 분리되지 않는 듯한 베트남의 일상
베트남의 공식명칭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즉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집회의 자유는 없으며 포교 또한 허락하지 않는다. 중국과도 같은 사회주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의 어느 곳에서든 종교적인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택시나 승용차에 오르면 자동차 전면에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 또는 성모 마리아 등의 조각상들이 모셔져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자동차와 기사 자신과 승객의 안전과 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현지 식당 한 구석에는 성주신을 모시거나 고객이 더 많이 오게 해 준다는 신을 모시는 제단이 모셔져 있고, 고급 레스토랑이나 심지어는 호텔 프런트에서도 이런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가정에서는 조상의 제위나 사진을 모셔 놓고 가정의 행복을 기원한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말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신과 조상에 대한 공경과 기원을 바라는, 어찌 보면 가장 마음 여린 사람들이 베트남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제가 발전하고 소득이 증가하면서, 조상과 신들에 대한 공경과 기원을 하면서 자신들의 부와 행복을 기원하는 것은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다. 시내 한 복판의 금 싸라기 땅에 새로이 거대한 사찰이 세워지고 샹들리에의 조명을 받는 관세음보살이 세워지고, 호화로운 묘지를 조성하고 조상을 모시는 것이 곧 그들에게 행운과 복을 가져다준다는 소박한 믿음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가장 종교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 사람들의 종교적인 모습은 현실 속에 배어 있다고 과언이 아니다.
베트남 대부분의 가정에는 조상님들의 영정을 모셔두고 있다. 매장을 새로 열 때에는 예외 없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심지어 한 달에 두 번씩 정해진 날 저녁에 간단한 제사상을 차려 제를 지낸다. 매장을 같이 쓰고 있는 MUMUSO의 사장은 갓 결혼한 30대 초반의 젊은이인데 매 달 15일이 되면 매장 앞에 제물을 갖다 놓고 향을 피우는 의식을 행한다. 자기가 오지 못하는 날이면 매니저를 시켜서라도 반드시 그 의식을 잃고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종교보다, 가족보다 무서운 것이 무엇이 있으랴!
사회주의가 가장 배격한 것이 유심론인데 사회주의 국가, 공산당이 영도하는 베트남의 이런 모습은 아이러니이다. 강대국의 침략도 모두 물리치고, 자존심으로 똘똘 뭉치게 한 요인중 하나가 그들의 종교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부모님이나 가족들의 묘를 성대하고 예쁘게 만들려는 경향이 뚜렷해져 베트남에선 공동묘지 사업이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판단에, 공동묘지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시장조사와 컨설팅을 진행한 일이 있었다. 현재도 많은 사립 공동묘지가 운영되고 있는데 묘지의 분양이 시작되면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매진이 되어버린다고도 한다. 묘지는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달리 땅을 매입하여 개인이 직접 꾸미기도 하고, 기존에 만들어진 묘지를 구입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듯 가족의 묘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묘지에 있어서는 공권력도 함부로 철거, 이장 등의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고 한다. 실례로 베트남의 여의도라 불리는 뚜티엠 지역을 개발하고자 기존 주택의 철거 명령과 함께 토지 정리를 하는데 사적으로 조성된 묘지와 사찰이 몇 개 있었는데 철거반이 들어가 모든 주택들을 철거하면서도 묘지와 사찰은 건들지도 못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한다. 철거를 하는 명령이 떨어져도 실제 철거를 진행하겠다는 인부들이 나타나질 않고, 공무원도 그것에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정부보다 신앙과 종교가 무서운 것이다.
베트남의 경제성장에 따른 변화중 하나는 사찰과 성당의 신축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 호찌민 시내에도 새롭게 사찰이 생겨 나고 있고 외곽에는 대형사찰들이 계속 건설되고 있었다. 백화점 프로젝트 부지개발을 담당했던 나로서는 시내 한 복판에 새롭게 사찰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종교 집회에 대한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저렇게 크고 화려한 사찰이 새로 만들어지도록 허가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36.6% 무종교라고 밝힌 사람이 63.4%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베트남에는 유불선 및 귀신신앙을 함께 숭배하는 혼합주의적 신앙생활을 하는 불교신자가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3 차지한다고 한다(이중 정식 불교신자는 그중 30%로 보는 의견도 있음). 다음으로 천주교가 신도수 약 6백만 명이고, 개신교는 약 1백만 명의 신도들이 있다고 한다. 또한 민족 종교인 까우다이교 신도가 약 2.3백만 명, 화하오교가 1.4백만 명 정도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더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베트남 사람들의 삶 속에는 우리보다 더 종교적인 모습과 행동이 많음을 쉽사리 발견하게 된다. 고속도로 옆에서 놀라운 장소를 발견하였다. 고속도로 옆에 반듯하게 모셔진 묘소였다.
아파트와 국도를 사이에 둔 인도에 묘소가 있는 것을 발견하곤 놀랐다. 저곳에 묘소를 만들 엄두를 낸 사람도 그렇고, 그걸 그대로 인정하고 보존하고 있는 사람들에도 놀랐다.
베트남에서는 집이 아닌 곳에서 돌아가시지 않으면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고 한다. 슬픈 일이지만 아마도 저분은 이 국도에서 사고로 명을 달리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자식들이 이곳에 묘소를 만들고 모시고 있는 것이리라. 내가 푸미에 오고 얼마 안 되어 발견했으니 최소한 5년이 넘게 되었다. 그런데 매번 지나가다 보면 밤에는 전등과 향이 피워져 있는 것을 보면 가족들이 자주 와서 챙기고 있는 것이리라.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에서 살고 있는 내가 가장 놀란 일 중의 하나는 수많은 사찰들을 보는 것이다. 지방도시에 불과한 푸미(Phu My)에 와서는 몇 집 건너 보이는 사찰들의 모습에 큰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왜 이곳에는 이렇게 많은 사원들이 있는 것일까? 베트남 시민들이 무속신앙이나 종교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고,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찰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 현지인들에게 이 지역에 사찰이 많은 이유를 물어보았으나 누구도 답변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베트남은 동남아 지역 국가이면서도 중국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공존을 하고 있다. 남부지역은 소승불교가 대부분이다. '소승불교에서는 참선을 중시하니 승려들이 자그마한 사찰을 만들고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가?'라는 그럴싸한 나만의 추정만을 하고 있었다.
한 날 아침, 아침 운동을 하시던 여사 한 분이 내일 아침에 베트남 현지 사찰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하시면서 차를 가지고 올 테니 같이 가자고 했다. 베트남에서 불교에 특별한 날인가 싶기도 하고 현지 사찰을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동의하고 방문을 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곳에선 수많은 신도들과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특별한 행사를 하는가 싶어 대웅전에 들어가 큰 절을 하고 나왔다. 그러자 한 분이 내 손목을 붙잡고 큰 사당 옆의 조그마한 건물로 이끌고 갔다. 놀라운 것을 보았다. 영정 사진과 위패 등이 모셔져 있는 사당이었다. 나를 그곳으로 이끌던 분이 한 남자의 사진을 가리키며 당신의 남편이라고 했다.
일종의 납골당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묵념을 하고 나오니 많은 신도들이 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 곳에서는 자선 및 모금행사도 진행을 하고 있었는데 규모가 큰 사찰인 듯하다. 아이자이를 입은 젊은 신도들이 모여 다니며 자원봉사를 하는 듯하다. 마음도 행동도 너무 이쁜 모습들이다.
행사를 치르고 나오니 또 다른 곳으로 차를 몰고 간다. 외부에서 볼 때는 그저 시골의, 너른 마당을 가진 집 같은데 안으로 들어가니 집의 한가운데 부처님 상이 모셔져 있고 그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제배를 한 후 모두들 벌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 베트남의 사찰이 납골당의 역할도 함께 하는구나' 그날은 망자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날로써 가족분들이 모여 함께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베트남 사람들도 풍수를 믿는다. 즉 배산임수도 적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호찌민시에는 없는 산도 있고 앞이 바디이니 배산임수의 명당자리에 속하는 이 지역인 것이다. 현지인들에 물어보니, 호찌민시뿐만 아니라 주변 도시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곳에 모셔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왜 이 지역에 이렇게 많은 크고 작은 사찰들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9월 1일 내일 베트남 독립기념일을 기념하여 4일간의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지인불들과 푸미의 산에 올라 사찰을 방문하였다. 무릎이 아플 것을 각오하고 오르기 시작했는데 지난번 어린이들의 산행에 힘을 얻은 것에 더불어 오늘은 3배 1보를 하며 산을 오르는 젊은이들에 힘을 얻어 사찰까지 올랐다.
1,400여 계단이라고 하니 약 470배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산을 오르면서. 집에서 108배를 해도 땀이 범벅이 되고 이제는 108배를 할 용기도 나지 않는데 저 젊은이들이 무슨 신앙심으로 저렇게 하면서 오를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단체로 어느 사찰에서 단체로 그 행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그저 한 둘씩 단독적으로 그렇게 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몇몇 사람들의 두 손에는 모래 봉지가 들려져 있었다. '사찰에 큰 역사가 있는 것이리라.'라는 추측을 하면 경외감을 갖고 따라 올라갔다.
사찰의 대웅전 옆 한편에 모래들을 모아두는 곳이 있었고, 3보 1배를 하면서 들고 올라온 모래를 쏟아붓고 있는 젊은 청년 연인(?)들의 모습이 너무 기특하기도 경이롭기도 하여 눈이 마주치자 먼저 엄지척을 보여주자 수줍은 듯 웃으며 합장을 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종교와 신앙이 일상인 듯하다. 저들과 마주칠 때마다 환하게 웃고 먼저 인사하는 모습이 그런 내적인 신앙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한 베트남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