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베 Vs 반한 감정으로는 누구도 발전할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은 강대국 사람들을 우습게 본다. 미국 놈, 중국 떼 놈, 쪽발이 왜놈,
국토도 작고, 인구도 많지 않고, 내세울만한 자원도 없는 나람 사람들이 어디서 이런 자존심이 생겼을까? 고려시대 이후로 중국을 사대하고, 몽골의 직간접으로 간섭을 받기도 했고,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 국권이 침탈되고 식민지 생활을 35년이나 당했다. 그런데도 그런 나라들에 머리를 숙일지언정 마음속으론 뻣뻣하게 대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자존심인 듯하다. 유교 국가로써 중국을 사대하면서도 한 편으론 주위의 국가들은 우리 자신과 비교되지 않는 미개한 나라로 굳게 믿고 있었고 그 내재된 자존심과 긍지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저력이 아닌가 싶다. 물론 한글이나 인쇄술, 도자기, 수원 화성 등 과학적이며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문물을 만들어 냈다는 점은 기본적으로 내재적 자존심을 만들어 낸 기초라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그 힘 중의 하나로, 헝그리 정신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도 주변의 많은 나라들이 헝그리 하다. 헝그리 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겠다고 하는 의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바로 차별화되는 원천이 바로 5천 년 역사의 단일민족이었다는 자존심이 아닌가 싶다.
자존심에 관한 한, 베트남도 뒤지지 않는다. 베트남 사람들은 '소중화주의' 의식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일본인 베트남 역사학자인 후루타 모토오(吉田元夫)는 베트남이 일찍부터 북방중국에 대한 남국의식(南國意識)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11세기 리(Ly, 李) 왕조의 장군 리 트엉 끼엣(Ly Thuong Kiet)이 읊은 한시(漢詩)에서 베트남의 남국의식을 뚜렷하게 읽을 수 있다. 南國山何南帝居 (남국산 하남제거) 截然定分在天書 (절연정분재천서) 如何逆虜來浸犯 (여하역로래침범) 汝等行看取敗虛 (여등행간취패허) 남국의 산하에는 남국의 황제가 거한다고, 일찍이 정해진 바, 하늘의 책에 분명히 쓰여 있거늘 어이하여 역로(중국의 송)는 우리 땅을 침범하는고, 너희는 참담한 패배를 보고야 말지니라. [ 베트남의 소중화의식(小中華意識) 심상준 문화인류학 박사, 2010년 9월 28일 자 재인용 ]
베트남은 지금도 미얀마, 라오스나 캄보디아를 자신의 속국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과 대등하다는 의식은 곧 동남아 주변국가에 대한 소중화의식(小中華意識)으로 연결되었다고들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소중화'라는 단어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리 트엉 끼엣의 한시를 보자면 베트남은 남중화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우리 한국이야말로 소중화 의식을 갖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처음 베트남에서 근무하면서 베트남인 부사장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베트남이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더 잘 살았다. 한국은 대단하다. 그런데 "베트남도 그런 저력을 갖고 있으니 한국처럼 빠른 성장과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속으로 '30년 이상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뒤진 나라가 뭔 소리를 하는 것인지...'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또렷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사실인 것 같다.
문제는 두 나라 국민의 자존심 대결이 이제 외부적으로 표현되면 갈등을 발생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부 유튜버 들과 언론들이 이를 부추기기도 한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며칠 전 '박제방'이라 불리는 텔레그램 대화방이 논란이 되고 베트남에서 반한감정이 고조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어제는 한국의 한 유튜버가 호찌민시의 외국인 여행자거리인 부인비엔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해 영사관의 도움도 못 받고 죽을 뻔(? - 그렇게 사람이 쉽게 죽나? 영상 찍고 자기 챙길 정도의 사람이. 국제 응급병원이 1군에만 2곳이나 있는데 그런 정보도 하나 없이 유흥가에서 그 늦은 새벽시간에 혼자 영상을 찍고 다닌 것 같은데...) 했다는 기사로 반베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코로나 시기에도 베트남의 비행기 입국 불허 사건, 바이러스 태극기 훼손 표기 사건, 베트남 대표음식 '반미' 폄하 사건 등 여러 사건들이 기사들로 만들어지며 상호 간에 비방과 불신 반목을 조장되기도 하였다. (사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아니라면 이 사건들을 기억하지도 못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200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선 한국과 한국인을 우호국가/시민으로 여기며 부러운 국가와 시민으로 대우해 주었었다. 하지만 중국이 발전하면서 2000년 이후는 조공을 바치던 변방의 조그마한 국가, 시민으로 전락하였다. '지들이 돈 벌러 왔지! 우리보다 나은 게 뭐야!' '너희들 필요 없어 갈라면 가!'라고 하면서 배척 또는 심지어 괄시당하기까지 하였다.
베트남이라고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지금은 '불과 50년 전만 해도 우리보다 못 살던 것들이 돈 좀 벌었다고 어디서 행세를 부려!' '한국 너희 없어도 되니 떠나려면 떠나라!'라고 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말이 귓가에 들리는 듯한 분위기이다.
우월하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서, 말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인정을 하고 그렇게 대우를 해 줄 때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마음속으로야 민족과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을 갖는 것은 중요할 수도,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일방적인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에 거부감 또는 반발을 가져올 수 있다. 현재의 상황은 2000년대 초 한국과 중국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만큼 '베트남 국민들이 베트남을 그렇게 자랑스러워한다'라는 것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것이 서로가 공존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두 나라 국민들이 마음속에 강한 자존심을 갖고 생활하고 있으니 어찌 쉽겠는가! 우리 눈엔 베트남 사람들이 부족한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반면 우리도 그들 눈과 마음에는 부족한 것들이 많을 수 있다. 똑바로는 보되, 한 편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도와주려고 하고 또 우리도 배우고 도움을 받을 것은 받는 것이 서로가 발전하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