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부패와의 전쟁에도 커미션이 필요할까?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23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집계 결과, 베트남은 100점 만점에 41점을 기록하며 168개국 가운데 83위에 머물렀는데 이 점수는 아시아·태평양지역 평균 45점에도 못 미치는 수치이다. 2015년 31점으로 112위에서 순위상, 점수상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부정부패의 문제는 현 정부에서 중점사업으로 추진할 정도로 사회, 경제 발전에 저해 요소로 손꼽힌다.
이러한 부정부패에 대해 정부에서도 개혁의 칼날을 세우고는 있지만 몸에 배어 있는 커미션 문화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2017년 11월. 다낭시의 인민위원장은 토지 및 도시관리에 대한 위반과 발생한 문제점에 대한 책임자로서 경고조치를 당하였으며, 건설회사 대표로 베트남 최초로 자가용 비행기를 구입하여 화제가 되었던 Hoang An Gia Lai社의 회장도 부정비리의 오명을 받아 사세가 급속히 몰락한 상태이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부정부패로 인한 공산당 고위 당직자들의 사퇴로 지금까지 베트남은 정치적 혼돈의 시간을 갖고 있다.
2023년 1월, 응우옌 쑤언 푹 (Nguyen Xuan Phuc) 전 대통령이, 자신이 총리로 재직하던 시기에 발생한 부하들의 부정부패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이 사건은 COVID-19 대응과 관련된 부패 스캔들로, 부하들이 과도한 비용의 테스트 키트 계약과 관련된 뇌물 사건에 연루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팜 빈 민 (Pham Binh Minh) 및 부 득 담 (Vu Duc Dam) 두 명의 부총리도 2023년 초 부정부패 혐의로 사임했다. COVID-19 기간 동안 베트남 국민들의 귀국 항공편과 관련한 뇌물 사건에 연루된 것인데, 귀국 항공편을 위한 비싼 항공권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리가 이유였다.
또한 한국의 국회의장 격인 베트남 국가회의 의장인 부엉 딘 후에 (Vuong Dinh Hue)은 자신의 비서가 뇌물 수수와 관련해 체포된 후 자진 사임했다. 그의 사임은 인프라 프로젝트와 관련된 부정부패 혐의였다.
이렇듯 최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부정부패와 연관되어 사퇴를 하게 됨으로 당과 국가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실추되었다. 하지만 부정부패의 모습은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의 하나이다. 대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로부터 회사에 추천을 받아 취직을 하게 되는 경우 첫 월급은 고스란히 교수님의 몫이다. 혹은 친구가 회사 입사를 소개해 주어 입사를 하게 되는 경우에도 첫 달 월급분을 그 친구에게 준다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끼리 하는 일이니 확인할 수는 없다. 아파트를 임차하는 경우에도 집주인은 임차 1개월치를 중개인에게 지불해야 한다.
2004년 첫 해 베트남 주재원으로 나와 회사 직원의 소개로 아파트 임차계약을 진행하였는데 그 직원은 한 해가 지나기 전에 이직을 하였다. 그런데 한 해 임차 계약이 끝날 즈음 부동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임차계약을 연장하여야 하는데 이직한 그 직원이 찾아와 새로 일 년 계약치에 대한 커미션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라 절대 중개 수수료를 그녀에게 줄 필요가 없다고 하고 말았지만 '베트남이란 곳이 이렇구나'라고 확실히 우리나라와 차이 나는 것을 발견한 한 사례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관광 가이드 등이 식당이나 호텔로부터 커미션을 받고 있는 것으로는 알고 있지만, 베트남은 지금도 그것이 아예 공식적이어서 커미션 계약서를 작성한다고도 한다. 개인은 10% 법인은 16~18% 정도의 커미션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화점 부지개발을 담당했던 나로서는 이런 커미션에 대한 황당하고도 믿기지 않는 일들을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이 경험한 것 같다. 백화점을 만들려는 부지이다 보니 호찌민시, 하노이에서도 가장 노른자 땅을 선택해야만 했고 그런 땅은 이미 해외 유수 기업들도 개발을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그런 프로젝트들이었다.
하루는 허름하게 옷을 입은 사람 둘이 사무소에 들어와 자기가 어느 부지를 계발할 수 있도록 호찌민시의 인민위원장과 만나게 해 주겠다며 자기들과 함께 사업을 추진하면 프로젝트 개발 확실히 할 수 있다며 내놓은 자료가 인민위원장과 함께 찍은 사진 몇 장이었다. 부지에 관련된 토지 지적도나 개발 계획 등을 보여달라고 하자 500만 불 선수금을 자기 회사의 Escrow account에 넣으면 모든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하고 만약 그렇게 한 상태에서 개발이 실패하면 자기네가 500만 불을 보상금으로 더 우리에게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양측이 같이 500만 불을 escrow account에 넣는 것도 아니고 우리만 넣고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엔 내게만 온 사기꾼인가 싶었는데 몇 해 그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사람도 몇 번 보게 되었고, 다른 회사 직원들로부터도 그런 황당한 경험담을 듣곤 했다.
호찌민시 2군의 부지개발을 진행하는데 처음 우리 쪽에 의뢰가 들어온 프로젝트가 부지 규모가 커서 롯데 건설과 롯데자산으로 이관된 프로젝트가 있었다. 즉 그룹에서 복합상가를 짓고 우리는 백화점을 임차하여 운영하는 식으로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건설의 법인장에게 프로젝트 진행사항을 묻던 중 황당한 얘기를 또 한 번 들었다. 중개인이 그 프로젝트에 아파트를 지으면 한 층 전체를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한 채가 아니고 한 층 전체를 달라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대담한 것인지 아니면 무모한 것인지… 그렇게 그 프로젝트의 진행은 중단되었다.
그렇다고 부패한 베트남 사람으로만 쳐다보면 함께 살아가기 어렵지 않을까? 여기도 조금씩 자정작용을 통해 청렴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을 알고 이해하고 쳐다보고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베트남에서 근무할 당시 법인장님이 내게 "이곳은 무엇을 해도 최소 3% 커미션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너는 왜 내가 술이라도 한 잔 안 사주나?'라고 우스개 소리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저도 알기는 하는데 외국인한테는 안 통하나 봅니다. 제게는 직접 안 주네요. 달라 할 수도 없고요."라고 답변하고 같이 웃어넘긴 적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자기끼리 단합하는 것도 놀라울 정도이다. 겉으로는 외국인들에게 매우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마음속에 ‘외국인들은 우리의 밥이다. 어떻게든 뜯어먹어야 한다’라고 굳은 의지를 품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롯데리아에서 근무하던 때, 매장에서 현금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매장에 근무하던 매니저가 매장에 있는 금고 돈을 가지고 자기 고향으로 달아난 사건이었다. 매장에는 CCTV가 모두 설치되어 있었기에 범인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매니저의 신병을 확보하고 훔쳐 달아난 돈을 찾는 것이다. 경찰서에 연락하여 해당지역 담당경찰이 매장을 확인하고 본사로 찾아왔다. 범인은 확인되었으니 범인을 수배하고 잡아 어떻게 돈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한국인 관리자들의 큰 오판이었다.
경찰은 ‘우리에게 왜 매장에 보안 요원이 배치되지 않았는가?’ 먼저 따져 물었다. 당시 건물이나 중대형 점포는 각각 보안업체의 보안요원을 설치하라는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매장은 그리 큰 상태도 아니었고 건물주가 그 보안 문제는 해결하여야 할 것이라 판단, 보안 요원을 별도로 고용하지 않고 있었다. 보안업체도 실은 전직 경찰간부들이 만든 회사들로 경찰관 전관예우 차원으로 운용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문제는 보완할 테니 범인을 잡아 도난당한 현금을 찾아달라고 요청하자, 더 황당한 일이 발생하였다. 범인은 도망을 간 상태인데 고향까지 가서 범인을 잡는 데에는 인력과 비용이 들게 되는데 자기들이 범인을 잡아 돈을 찾아주면 얼마를 주겠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이 경찰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베트남에선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경우 범인을 잡아달라고 의뢰하는 피해자가 얼마의 사례금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한 후 사건해결이 시작된다고 하였다. 특히 우리처럼 외국계 기업이나 외국인한테는 요구하는 액수가 훨씬 더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외국인들이야 원래 돈 많은 사람들이니 그 정도 부담하는 것은 큰 부담도 되지 않을 테고 어차피 그 돈은 베트남 자국민에게 들어갔으니 아쉬울 것도 없다는 심보인 것이다. 경찰들은 두어 차례 본사에 방문하였지만 우리가 어떤 커미션도 줄 수 없다고 하자 그대로 수사에는 아무런 진척도 없었다. 이후 법인에선 자체적으로 해결 방법을 강구하기로 하고 매니저의 현금 도난 사건은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 되었다. 범인을 잡은 후 사례금을 받는 것도 뭐 한데 수사 전부터 나눠 먹는 것을 협의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외국인이나 외국기업인 경우에는 수사에서도 차별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자체적으로 보안과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씁쓸한 결론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베트남에서 커미션 관행은 오랜 전통과 경제적, 문화적 배경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듯하다. 교통경찰들의 함정 단속과 과태료 대신 현금을 수령하는 경우는 일상에서 듣는 이야기들이다. 회사에서 구매팀의 담당자가 공급업체로부터 일정 %의 커미션을 받는다는 정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러한 관행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고, 국제적 기준을 따르는 기업들과 정부의 반부패 노력이 결합되면서 일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나의 눈에는 아직도 커미션 문제는 공공연한 상태인 듯하여 외국인으로서 좀 더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돈이 없으면 경찰을 도움을 제 때, 제대로 받지 못한다니, 내 주변에서 구멍 난 모래주머니처럼 나의 것이 새어 나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