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내는 힘
아파트 앞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연못에 손을 담그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 적이 있다. 물론 뱀이 나오는 무서운 기억이었지만. 앨리베이터에서 아빠에게 안긴 여자 꼬마애에게 아빠가 "인사를 해야지"라고 아이에게 말하면 부끄러운 듯 나를 쳐다보면서 "Chào chú!" (안녕하세요, 삼촌!)라고 인사를 하면 진짜 삼촌이 된 기분이 든다. "아이. 이쁘다"라며 어깨들 토닥거려 주어도 아빠도 아이도 거부 반응이 없다. 옛날 동네 어른들께 인사하던 내 모습과 그대로다.
베트남에서 생활을 하면 할 수록 그런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고, 흐믓한 느낌을 갖기도 하고 한 편으로 그리워지는 것은 아마도 한국과 베트남 사람들이 닮은 꼴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아시아의 동쪽 끝과 남쪽 끝에 위치해 있지만,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배경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서로 다른 언어와 환경 속에서도 비슷한 정서와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는 두 민족 간에 자연스러운 공감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한국과 베트남 사람들의 닮은 점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1. 가족 중심의 가치관
두 나라 모두 가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가정이 개인의 삶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는 효(孝)와 가족의 유대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부모와 자식 간의 의무와 책임이 강조된다. 베트남도 역시 효(Hiếu)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부모를 공경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전통적인 가족 구조가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이 의사 결정과 사회적 관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 유교 문화의 영향
두 나라는 오랜 역사 동안 유교 문화를 받아들여 가족, 예절, 교육을 중심으로 사회를 운영해 왔다. 한국은 조선 시대 동안 유교가 사회의 근본 규범으로 자리 잡아 지금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베트남도 유교의 영향을 받아 제사 문화, 서열 존중, 어른 공경 같은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 어른에 대해 존댓말을 사용하고 어른들을 먼저 챙기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장면이다. 또한 명절에 제사를 지내고 조상을 기리는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교육과 학문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자녀의 교육을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비슷하다.
3. 밥 중심의 식문화
두 나라 모두 쌀이 주식이며, 밥과 함께 다양한 반찬을 곁들여 먹는 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 음식이 관광을 온 한국분들께는 그리 낯설은 음식이 아니게 느껴지고 쉽게 적응하게 되는 경향도 있다. 한국의 김치, 나물, 국과 같은 반찬은 베트남의 채소와 소스 문화와 유사하고, 베트남의 쌀국수(Phở)나 분짜(Bún chả)처럼 쌀을 활용한 요리는 한국의 비빔밥, 떡과 비슷한 정서를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식사 시간에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나눠 먹는 전통이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는 음식을 통해 서로의 유대감을 다지는 문화가 두 나라에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식사중에 이웃이나 지인이 방문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합석을 하고 함께 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4. 인간적인 정(情)과 따뜻함
두 민족은 인간관계에서 따뜻함과 정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정(情)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을 중요한 미덕이나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한 편 베트남 사람들은 "마음으로 대하는 관계"를 강조하며, 서로 돕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강하다. 한국에서는 가족이나 친구, 동기 동창 등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베트남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소소한 일을 함께 나누며 정을 표현한다.
5. 명절과 축제 문화
두 나라는 명절을 통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조상을 기리는 기간도 동일하다. 한국의 설날과 추석은 베트남의 뗏(Tết, 설날)과 중추절과 같으며, 명절에 가족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고, 조상의 묘를 방문하는 전통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이 시간은 가족간의 정과 유대감을 확인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하곤 한다.
6. 어려움을 극복해 온 역사
두 나라 모두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경험하며 민족적 자주성과 독립 의지를 지켜왔다. 한국은 고대 중국의 침략,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강한 민족성을 키운 반면, 베트남은 몽골 제국의 침공, 중국의 지배, 프랑스 식민 통치와 미국과의 전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해 왔으며 각자 강한 자존심과 자긍심을 품고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단결과 끈기로 이를 극복하며, 강한 생존 의지와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공통점이면서도 각자가 자부심이 강해 서로 부딪히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한다면 소통할 수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된다.
7.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와 적응력
한국과 베트남은 최근 몇 십 년간 경제적으로 빠르게 발전하며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베트남은 도이머이 정책 이후 빠른 경제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유지하며, 외국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 또한 서로를 존중하면서 상호발전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된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비슷한 가치와 전통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통점이 참 많은 것 같다. 이러한 닮은 점은 양국 간의 문화적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가족 중심, 유교 문화, 정(情) 문화 등은 어찌 보면 베트남이 한국의 앞선 길을 따라 온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 반갑지 만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베트남의 지금 모습이 더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점점 메말라가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발전의 그림자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