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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Dec 09. 2024

좌절과 불안의 시간 속에서

쿠데타 이후 허탈한 마음

 어렸을 때의 기억이다. 학교 앞에 장갑차들이 서 있었고, 부모님은 밖에 다니지 말라고 하셨던 흐릿한 기억이다. 하지만 그 기억은 멋있는 군인의 모습이 아닌 무서운 군대 아저씨들의 그것이다. 

 한국에서 며칠을 보내고 온 그 사이에 또 그런 일이 발생할 뻔한 것이다. 그날 낮에 약속된 미팅을 위해 지하철로 이동을 하면서 젊은 군인들이 흥이난 모습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연말이라고 '휴가를 나왔구나. 정말 좋을 때다. 이제는 이어폰도 꼽고 다니네'라고 생각하면서 유난히 많아 보이는 휴가 군인들이 신기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흐뭇해했는데... 그날 밤 쿠데타 소식에 정말 어이가 없고, 학교 앞의 장갑차가 떠올랐다. 가슴 조리며 국회의 계엄령 해제 건에 대한 국회의장의 지휘봉이 내려치기까지 얼마나 조마조마했었나. 휴가를 나와있던 장병들이 떠올랐다. 그 좋은 연말 휴가를 치르지도 못하고 바로 돌아가야 하겠네...

유난히 많이 보였던 연말 휴가 장병들의 모습

 쿠데타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치 현실이 아닌 듯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등의 거창한 단어들이 떠오르기 전에, 광주의 그림이 떠올랐고, 절대로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라는 생각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군인들이 국회에 난입하는 모습과 야간 투시경을 끼고 온 특수부대원들을 보면서 '정말 국민을 또 적으로 삼고 전쟁을 하려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들었다. 

 윤 석열이 한 짓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대통령이라는 자가. 다른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저 자는 반드시 즉결 처형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린 학생이었던 나도 그 군인들이, 밖에 나가는 것도 무서웠는데, 지금 내 아들 딸들은 그런 느낌도 받아 본 적이 없다. 계엄령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며칠간 글을 쓰는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마음은 계속 불안하기만 하다. 

 저 사악한 자와 수하들이 또 어떤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지, 또 군홧발을 들이밀지 모를 일이다. 국방부 대변인의 뻔뻔한 대답 '우리의 통수권자는 아직도 대통령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정말 치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TV화면에 대고 국민들이 보는데 부끄러움 하나 없이 저럴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저런 놈들이 명령을 받으면 '옳다 이 때다' 싶어 뛰쳐나와 난동을 부리지 않을까 겁부터 났다. 우리 자녀 세대들이 그런 모습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윤석열 수괴와 수하들 그리고 적극 동조하고 있는 자들은 일벌백계를 해서 꿈도 못 꾸게 해야 하는 것이다. 


 탄핵 특검의 불발 소식에 무기력함의 연속이다. 국민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정의를 외쳤던 그 수많은 순간들이 헛된 노력으로 치부되는 듯한 기분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무력한가? 왜 우리의 소망은 번번이 무너지고 마는가?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더불어 떨쳐지지 않는 불안함이 마음을 채운다. 그가 또 언제 어떤 무모한 결정을 내릴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믿음을 짓밟을지 상상조차 두렵다. 그의 행보는 더 이상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그로 인해 만들어질 파괴와 상처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고통을 남길 것이다.


 이런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적어본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을 싱숭생숭 그대로 인 것 같다. 역사는 늘 반복되고, 우리는 이미 많은 시련을 이겨내 왔다. 지금도 허탈하고, 불안하고, 힘들지만, 이 순간조차도 지나갈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왜 우리에겐 이런 시련이 더 많을까?라는 불평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 사람의 권력에 무너질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믿으면서도 이렇게 국민들을 허무하게 만들어 버린 현실이 너무 속상하다. 그래도 우리 자식들에겐 그 믿음이 지켜질 수 있도록 내 마음이 강해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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