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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Jan 28. 2023

세상에서 사라지자

아무도 우리가 어딜 간지 모를 거야

  동문리의 단독주택. 형과 나는 실종된 것으로 꾸미고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기로 했다. 방에 흔적들을 일부러 남겨놓고 창문으로 나와 창문을 조용히 닫았다. 신발을 손에 쥐고 옆집과 붙어있던 담벼락을 고양이처럼 기어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가면 뒷산으로 도망칠 수 있다.


  세상은 우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형이 앞장서고 나는 뒤따라갔다. 조용히 그리고 빨리 따라오라고 형이 내게 눈치를 줬다. 당황반 걱정반으로 집의 담벼락을 넘어서는데 저만치 내 신발을 흘린 게 보였다. 형은 그냥 두고 오라고 했지만 나는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다시 돌아갔다.


  신발을 집어 드는데 현관문이 조금 열린 게 보였다. 현관문 틈으로 보이는 다 썩은 마루에는 산발을 한 아픈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돌이 갓 지난 아기는 어머니에 매달려 울고 있었고, 어머니는 지친 얼굴로 달래고 있었다. 어머니는 당신을 두고 도망가는 나를 멀리서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부르지도 붙잡지도 않았다. 그냥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그래 많이 힘들었지. 너라도 가서 편하게 살아. 엄마는 괜찮아."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나는 엄마의 말이 들렸다. 이빨이 다 빠져서 볼이 홀쭉해진 백발의 엄마를 보며 나는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형한테 조용히 얘기했다.


"형. 나는 도저히 못 가겠어."



그리고 꿈에서 깼다. 아내와 아기가 깰까 봐 이불을 들러쓰고 새벽 내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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