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이며 살아온 인생의 작은 결과물
죽음은 삶을 찬란하게 한다.
마지막에 가지고 갈 추억을 모으자.
삶은 다양하고 더 다양해져야 한다.
나의 천성으로 세상에 기여하자.
나를 객관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기록이 대신해줄 수 있다. 최근에 나름 긴 시간 동안 내 삶을 차근차근 되돌아봤다. 어설픈 메모와 사진에 의지하며 기억을 뒤적거리면서 과거의 나와 만났다.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했지만 과거의 나는 분명 지금의 나와 다른 사람이었다. 마치 익숙한 지인 같았다. 사람은 삶의 방향을 조금씩 틀뿐 완전히 다른 길을 가지는 않는다. 과거의 내가 했던 고민과 생각들을 보니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인지 어느 정도 알게 됐다. 그리고 잊었던 나의 가치관과 취향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10대부터의 고민과 나의 취향, 남긴 글과 그림들을 훑어보며 나는 몇 개의 문장을 발췌했다. 그건 나를 설명하는 문장이기도 하고, 내 가치관이기도 하고 또 내 지향점이기도 하다.
죽음은 삶을 찬란하게 한다.
죽음은 늘 삶의 주변에 머문다. 우리가 모르고 있고 모르고 싶을 뿐. 죽음이 정말 피부로 와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을 때 그때야말로 삶은 찬란해진다. 옆 사람이 생을 마감하고, 내가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 삶은 더욱 절실해지고 소중해진다. 죽음이 남의 얘기가 아님을 잊지 말자.
마지막에 가지고 갈 추억을 모으자
성공한 삶이란 마지막 순간에 가지고 갈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언젠지 구체적으로 알고, 행복을 만끽하는 시간을 갖자. 죽기 전에 가지고 가고 싶은 추억을 사는 동안 많이 만들자. 그게 내가 일을 하는 이유이고 가족과 해야 하는 일이다.
삶은 다양하고 더 다양해져야 한다.
삶의 기준이 너무 획일화되어있다. 한 종류의 감자만 키우던 아일랜드처럼 우리는 행복의 대기근을 겪고 있다.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 삶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세상이 다양하다는 걸 깨닫고 더 다양해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
나의 천성으로 세상에 기여하자.
들판의 풀들은 자기 역할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천성에 맞게 자신에게 맞는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그 자체로 세상에 기여한다. 하늘이 준 나의 천성을 거스르지 말고 생긴 대로 살면서 세상에 기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