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온 길이 곧 걸어갈 길
걸어온 길을 보면 나를 알 수 있다
내가 누군지 아는 방법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를 온전하게 나로 인식할 기회도 없었지만 세상도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시간들을 관통하고 어언 40년이 지났다. 이렇게 모든 일상이 멈추고 얼어버린 강물에 갇히고 나서야 내가 누군지 고민할 생각이 들었다. 나를 객관적으로 내려다볼 방법은 남이 되어 나를 보는 것인데, 나를 색안경 없이 오랫동안 봐온 누군가를 붙잡고 “내가 누군지 알려주세요.”라고 정신 나간 질문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내가 남이 되어 유년기의 나, 청소년기의 나, 어른이 된 나를 멀리서 팔짱 끼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기에 본의 아니게 깊이 사유하는 습관이 생겼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깊이 잠수하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는 경험은 아주 오래전부터였던 것 같다. 고민은 나에게 때로는 답을 주기도, 가치관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다행히도 나는 그 고민거리들을 글로 남기며 살아왔다. 그때는 그저 북 받치는 감정을 토해낼 길이 없어 휘갈긴 메모들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전부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살면서 내가 했던 고민과 그 결과를 천천히 되돌아보기로 했다.
10대 : 작은 세상
오래전이라 또렷하게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좋았던 기억만 남아있다. 어머니 말씀처럼 그때 우리 가족은 ‘황금기’를 지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들 다니기 시작하고 10대가 된 나의 고민은 ‘뭐가 되어야 하는가’였다. 시골에 사는 학생이 살면서 보고 들은 조그마한 세상에서 될 수 있는 걸 찾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타의에 의해 강요된 장래희망과 사춘기의 근본적인 존재에 대한 고민이 뒤섞여 있었던 것 같다. 주변의 권유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나마 그림에 소질 있던 내 나름의 답은 ‘화가’였다. 나와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표적인 단어였지만 난 그게 뭘 하는지도 잘 몰랐다. 할 수 있는 것도, 갈 수 있는 곳도 별로 없던 그때, 방에서 홀로 보고 싶은 것들을 그리는 게 제법 즐거웠던 기억으로 나는 그게 좋겠다고 했다. 세월이 한참 지나고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삼촌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단다. 음악가는 세상을 음으로 인식하고, 수학자는 세상을 숫자로 본다. 어릴 적 너는 세상을 그림으로 인식하더구나.”
20대 : 죽음, 행복, 다양성
죽음을 주로 겪는 삶의 주기였는지 아니면 우연인지 모르겠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이 20대에 몰려있었다. 지인들의 가족 장례식도 많았다. 장례식장에서 밤새워 고인을 기억하고 가족을 위로하는 일이 잦았다. 하루아침에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당시에는 당황해서 슬픈 줄 모른다. 슬프다기보다는 어이없다는 감정이 맞을 것 같다. 그러다가 정신없이 장례를 다 치르고 며칠 지난 후에 일상으로 돌아오면 아직도 떠난 사람이 거기에서 당연하게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게 허상이란 걸 깨닫고 그때부터 슬픔이 몰려온다. 쏟아진다. 마음만 먹으면 가서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전화기만 들으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뭘 해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그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우울한 20대를 관통하면서 사실은 ‘죽음이 삶을 껴안고’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언젠가, 아니 언젠지 모르는 순간에 죽는다는 사실은 오늘을 더 소중하게 느끼게 해 줬다. ‘행복’을 열심히 찾아가며 살아야겠다고 느낀 시기였다. 그때의 기록들을 보면 나는 뭔가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몰두’, ‘치열’, ‘전념’ 이런 단어들을 꾸준히 써가며 정말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고자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고 나서 탈진해서 한참을 보냈다. 그때는 행복이란 오늘을 후회 없이 모두 쏟아부어야 미래에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맞는 행복도 아니었고, 마라톤을 100미터 달리기 하듯 뛰고 한참을 앓아눕기를 반복하는 어설픈 노력의 연속이었다.
행복을 결론 내릴 순 없었지만 행복을 위한 조건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사람들의 치열한 경쟁은 안정되고 풍족한 환경, 미래 가능성, 자유, 유대감 이런 행복의 조건을 갖추기 위한 과정이었다. 누군가는 그 목적을 알고 있었고, 누군가는 왜 경쟁에 뛰어들었는지 잊고 있었다. 나도 맹목적으로 그 경쟁에 뛰어든 한 사람으로 구석에서 애쓰며 기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꽃다운 젊음을 쏟아부으며 경쟁하고 있는 또래들 중 극소수만 그 목표를 달성한다는 사실과 목표 달성에 실패한 나머지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사실이 숨 막히도록 답답했다. 그래서 한편으로 다른 삶의 방식을 고민했고 그 탓에 나는 또 또래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밀려났다.
몇 번의 여행을 갔다. 그냥 놀러 가는 여행이라기보다는 나름 목적이 있는 여정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이런 것의 답을 찾고자 떠났다. 아르바이트해서 산 10만 원짜리 접이식 자전거로 많이도 돌아다녔다. 배낭과 자전거만 버스에 싣고 가는 단출한 여행이었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시원한 답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이 비좁았다는 것, 사람이 사는 방식은 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함을 알았다. 생경한 풍경과 낯선 사람을 만날 때마다 고정관념이 조금씩 무너졌다. 생김새도 사는 곳도 제각각인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사는 모습은 행복 또한 다양하고 또 다양해져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30대 : 지향점
정신없이 몇 년을 보냈다. 꾸준히 기록하던 메모가 몇 년, 몇 달을 건너뛴 걸 보고 그 시기에 뭘 했는지 되돌아보니 일하고 방에서 눈을 붙인 기억밖에 없었다.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지만 이제와 멀찍이 나를 바라보니 겁에 질려 눈치 보며 뛰어다니는 사람이었다. 먹고사는 걱정이 하루에서 한 달로 한 달에서 내년으로 점점 길어진 덕분인지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나.. 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욕을 먹고 밤을 새우고 몸이 상하고 이런 일들을 수도 없이 겪으면서 내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30대의 고민의 대부분은 내 지향점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누군가는 성취를 위해 누군가는 맹목적으로 일상을 살고 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기 힘든 세상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어설픈 삶의 지향점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결국은 타인에 의해 학습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많은 월급, 높은 직급, 큰 성과, 이런 것들을 위해 나를 갈아 넣고 자아를 지워가며 살아왔는데 언제가 될지 모를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런 것들이 과연 내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일기 몇 줄도 못 쓸 만큼 바쁘게 살아온 몇 년은 남기고 싶은 추억은 없고 지우고 싶은 기억만 있었다. 어쩌면 그 몇 년은 내 인생에서 지워진 시간이 아닐까.
마지막 순간에 떠올릴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뿌듯한 기억으로 가득한 사람이야말로 성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 앞에서 고르고 골라 가지고 갈 기억들을 부지런히 모으면서 사는 게 어쩌면 살면서 내가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