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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Apr 07. 2023

나를 찾은 방법

자발적 경험


어떤 일도 실제로 경험하기 전까지 결코 현실이 되지 않는다.

-존키츠-



경험의 깊이와 농도


 경험은 세상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나를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오랜 시간 동안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고, 대단한 배짱이 있는 건 아니다 보니 거창한 경험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소개할 내용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겪는 흔한 경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법들이다. 일상 속에서 가장 효과적인 경험 몇 가지를 늘어놓자면 책, 영화, 여행, 일이라고 본다. 뒤로 갈수록 경험의 농도는 짙어지지만 폭은 좁아진다. 책으로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경험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경험은 오감으로 느끼는 일보다 농도가 훨씬 옅다. 반면에 일은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데 반해 책처럼 쉽게 다양한 경험을 하기 어렵다.



1. 방구석 무한대의 경험 : 책


‘책’이 무슨 경험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장면을 우리 뇌는 현실과 그렇게 잘 구분하지 못한다. 미국 클리블랜드병원에서는 팔에 힘을 주는 상상만으로 4개월 동안 근육을 15% 향상한 유명한 연구가 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감옥 속에서 15년간의 상상훈련만으로 수십 명의 적과 상대하는 장면이 완전한 허구는 아닌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책으로 한 경험과 실제 경험이 뒤섞인다. 이렇게 책은 참 쉽고 또 싸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좋다.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삶을 경험해 볼 수도 있고 나와 같은 누군가를 만나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경험이 목적이라면 장르는 소설이 좋다. 앞에서 인용한 일본작가 나쓰메 소세키(~1916)는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을 주는 소설을 썼다. 우리나라에서는 박경리 작가가 인물을 세밀하게 글로 표현했다. 소설로 다양한 인간상을 간접경험 해볼 수 있다. 글의 장르와 무관하게 유행에 민감한 주제는 대형서점에 가면 쉽게 경험할 수 있고 시공간을 초월한 다양한 분야의 경험은 큰 도서관에 가서 할 수 있다. 개성 있는 책들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은 서점들도 많아졌다.



2.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든 생생한 경험 : 영화


   다음으로는 ‘영화’를 추천한다. 영화는 책 보다 훨씬 구체화된 형태로 경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책 보다 훨씬 몸에 녹아들어 가는 느낌이라서 선호하는 편이다. 영화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보통 시놉시스(초안)가 만들어지면 그걸 가지고 소재조사를 한다. 주식투자자에 대한 이야기라면 월스트리트를 걸어보고 실제 종사자들을 만나고 그 분야의 이야기를 듣는다. 배우는 배역의 모델이 되는 사람을 만나고 그 모델의 세세한 습관까지 따라 해가며 영화에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영화를 보면 현실에 가까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재미가 아니라 호기심을 갖고 영화를 보면 다른 세계에 사는 여러 사람들을 간접경험할 수 있다. 다른 삶을 표현하는 영화들은 상업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크린에 올라가기 쉽지 않다. 그래서 독립영화들을 추천한다. 세상의 다양한 인간상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영화가 많다. 독립영화관이 많지 않으니 평소에 독립영화관 소식을 구독해 놓고 원하는 영화가 나오면 찾아가서 보길 권한다. 나는 인디그라운드라는 곳에서 정보를 얻는다.



3. 낯선 곳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나 : 여행


  못 가서 그렇지 먹고 즐기는 관광도 좋다. 그런데 금방 휘발된다. ‘비우는’ 관광보다 ‘채우는’ 여행이 조금 더 많아야 한다. 낯선 환경에 나를 넣어보고 평소에 할 수 없는 경험을 찾아가며 해보는 ‘여행’을 추천한다. 그런 여행에서는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안개 낀 새벽의 숲을 좋아하는 나를 처음 만나게 되고, 나지막한 집들이 모인 마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나를 알게 된다. 생경한 환경에 놓이면 선입견이 깨지면서 본연의 나를 볼 수 있다. 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선택의 폭이 늘어나고 절박함도 줄어든다. 살고 있는 세상이 확장되는 느낌. 영혼이 충만해지는 느낌이다. 문제는 비용인데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교통비와 숙박비다. 그래서 자전거 여행을 추천한다. 접이식 미니벨로는 대중교통에 가지고 탈 수 있다.(짐칸추천)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자전거로 이동하고 숙박은 게스트하우스처럼 여럿이 함께 자는 시설에서 해결하면 생각보다 큰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같은 자전거여행자를 만나서 함께 여행하거나 현지인과 말을 트기가 비교적 쉬운 장점도 있다.



2. 밖에서는 알 수 없는 현실경험 : 일


 감동을 주는 공간을 보면서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실무교육을 받고 건축가의 생각과 결과물에 점점 빠져들었다.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름 포트폴리오까지 만들어서 평소에 관심 갖고 보던 건축가의 사무실에 호기롭게 찾아갔다. 당연히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흔쾌히 일을 같이 해보자고 했다. 그곳에서 하루 네 시간 일하는 가짜 계약으로 새벽에는 인부가 오기 전에 현장 청소를, 낮에는 양중(자재 나르는 일)을, 밤에는 뒷정리를 시키며 어깨너머로 배울 기회(?)를 주었다. 그러다 어느 주말에 새벽부터 나와 힘들게 청소하고 준비하고 있던 게 현장이 아니라 사장 가족이 단란하게 고기 구워 먹을 평상이었음을 알고 나서야 정신 차렸다. 책으로 보고 강연만 쫓아다니며 들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일’은 가장 확실한 경험이다. 우리는 평소에 다른 분야에 대해서 많이 듣는다. 어떻게 일을 시작하는지, 돈은 얼마나 버는지 등등.. 그러나 밖에서 보는 시선은 살짝 미화되어 있다. 홍보는 늘 성공사례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정작 그 분야의 본질적인 이야기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만 알고 있다.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암묵적으로 공감하는 것들. 그런 중요한 정보는 직접 발을 담가봐야 알 수 있다. 속된 말로 그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 능력으로 밥벌이라도 하며 살만한 경쟁력이 있는지 재보기 위해서라면 주변을 맴돌지 말고 깊이 발을 담가보는 것도 방법이다. 안 좋은 경험은 가늘고 길게 하기보다 짧고 굵게 하는 게 낫다.



비루한 나를 던지는 용기


 그동안 경험한 책과 영화, 여행자로 살아본 지역들,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게 해 준 일들, 모두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소중한 조각이다. 이 조각들은 또 언젠가 방황하고 있을 때 무의식에서 불쑥 나와 방향을 가르쳐줄 것이다. 그래서 가치 있는 경험과 가치 없는 경험을 나누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껏 기억에 남은 경험들은 하나같이 남이 시킨 경험이 아니라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껴서 시작한 경험이었다. 자기 의지로 시작한 일들은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과정이 목적이다 보니 오히려 나쁜 결과가 더 도움이 되었다. 온몸으로 과정을 기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설프더라도 비루한 자신을 끌고 가서 경험에 던지는 용기였고, 필요한 것은 그저 과정 하나하나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태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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