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도구들
자아인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제삼자로 나를 내려다봐야 한다. 미로 속에서는 방향을 찾을 수 없지만 미로 위에서 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명확해진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싶은 마음은 모든 이의 근본적인 의문이다 보니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을 만들어왔다. 흔히 O형은 외향적이고 AB형은 특이하다는 식의 혈액형 유형구분 1920년대 일본에서 시작되었고 별자리로 보는 유형은 기원전까지 올라가 바빌로니아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심리학을 배경으로 고도화된 검사도구들이 주로 치료에 많이 쓰인다. 그중 쉽게 접할 수 있는 검사방법을 소개하고 개인적으로 유용했던 방법도 소개한다.
MBTI는 심리학에 관심이 많던 모녀가 만든 가장 대중화된 성격검사 방식이다. MBTI는 개인의 경향을 내향/외향, 직관/감각, 감정/사고, 판단/인식으로 나누어서 총 16가지 성격유형으로 분류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이다 보니 유형별로 해석해 놓은 사례가 정말 많다. 그러다 보니 해석이 아니라 개인감상을 적은 경우도 있으니 걸러서 확인해야 한다.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이 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사는지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인간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예측을 쉽게 해주는 정도로는 유용하다고 본다. 워낙 대중화되어 온라인에 검색하면 쉽게 찾아서 할 수 있다.
애니어그램 성격유형은 출처를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오랜 시간 내려오면서 체계화된 성격검사 방법이다. 감정, 사고, 본능의 각 3요소를 가지고 조력가, 성취자, 예술가, 사색가, 충성가, 낙천가, 지도자, 중재자, 개혁가의 9가지로 성격을 분류한다. 애니어그램은 사람의 성격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는가를 설명해 주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자면 ‘사색가’ 유형은 건강할 때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이지만 건강하지 않을 때는 허무주의와 병적인 공포를 보인다고 한다. 또 어떤 부분에서 동기부여를 받는지,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성격이 무 자르듯이 나눌 수 없고 계속 변한다는 점에서 좋은 분석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애니어그램’을 검색하면 온라인에서 쉽게 검사해 볼 수 있다.
DISC는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4가지 행동유형을 보인다고 보고 진단하는 방식이다. DISC는 이 4가지 행동유형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주도형, 사교형, 안정형, 신중형) 하나의 질문에 열정적, 신중한, 대담함 이런 식의 단어를 주고 나와 가장 가까운 하나와 가장 먼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약 40개 정도의 문항에 응답하면 D.I.S.C 4개 유형에 점수를 측정해서 제일 높은 것부터 나열한다. CDSI라면 신중함(Compliance)하면서도 주도적(Dominance)한 행동유형을 보인다고 예상하는 것이다. 내가 속한 유형은 지나치게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고자 하는 행동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유형별로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설명해 준다. 성격유형검사와 같이 해보면 좋다. 온라인으로 무료검사 가능하다.
이런 검사 도구들은 스스로가 원하는 유형이 있다면 의도적으로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지나치게 일반화시켰다는 단점이 있다. (사람 성격은 훨씬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또 현재 기준으로 나오는 결과이니 종종 해보면서 어떻게 바뀌는지 관찰해야 한다. 좋은 점은 검사 도구도 해설도 비용 없이 온라인과 도서(자세히 해석해 놓은 책이 많다)로 쉽게 접할 수 있게 공개되어 있다. 처음 접근하기 좋다. 개인적으로는 애니어그램, DISC 조합이 유용했다.
병원에서 신체종합검진처럼 전문가가 검사하고 해석해 주는 다양한 검사방식가 있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심리검사는 필요한 사람이 많다. 치료 목적이 아니더라도 검사결과를 설명 듣는 과정에서 오래된 고민이 시원하게 설명되는 경우가 있다. 종합심리검사에서는 정서, 행동, 기질, 대인관계 등을 상세하게 검사하는데, 수백 개 문항을 OMR카드로 응답하거나 문장을 완성시키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상담사와 대화를 나누는 방식도 있다.
이 검사들은 앞에서 말했듯이 자아를 인식하는데 선입견이 들어가서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걸 최대한 방지하는 장치들이 있다. 그래서 실제의 나에 훨씬 가까운 자아를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기질이나 환경 같은 다양한 원인들을 훑어보기 때문에 ‘왜’ 내가 그런 사람인가에 답변을 얻을 수 있고, 성숙도 20%, 위험회피 30% 이런 식으로 수치와 설명이 나오니 내 위치를 좀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선입견이 거의 없는 타인(전문가)으로부터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종합검진(풀배터리 검사)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 (MMPI, SCT, BGT, TCI 등이 있으니 미리 검색해 보고 필요한 검사가 뭔지 알고 가면 좋다) 전부 검사받으면 시간은 4시간 정도 걸리고 훨씬 상세한 분석결과를 들어볼 수 있다. 문제는 비용이 많이 든다. 개인 심리상담센터에서는 보통 20만 원 내외, 대형병원은 50만 원 내외이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사는 곳에 가까운 사회복지관에 가보기를 권한다. 사회복지관에는 보통 심리치료실이 있고, 거기서도 검사를 해준다. 비용도 물론 더 가볍다. 10만 원 내외.
기업에서 채용할 때 많이 사용하는 직무적성평가는 세상의 일들을 세세하게 쪼갠다음 그 일을 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짝지어 놓고 시작한다. 예를 들어 공무원(사무행정)이라면 당연히 문서를 작성하고 그걸 주변사람들한테 잘 전달해야 하니 ‘사무기기 활용 기술’과 ‘의사소통능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채용과정에서 필요한 지식, 기술, 능력, 태도 등 표준항목을 만들어놓고 시험문제를 만들거나 면접에서 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는 방식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맞는 일을 찾고 있지만 이 방식은 거꾸로 일에 맞는 사람을 찾는다.
취업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기업들도 직무에 필요한 인적성검사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 추천할만한 것은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워크넷이라는 사이트의 직업심리검사이다. 모두 비용 없이 온라인으로 검사받을 수 있으며 한 항목에 20분~80분 정도 소요된다. 10여 가지 검사도구가 있으나 그중 ‘직업선호도검사’, ‘직업적성검사’, ‘직업가치관검사’를 권한다. 여기에 더해서 교육부에서 운영하는 커리어넷에 ‘주요 능력효능감검사’도 같이 해보면 좋다.
내가 가진 능력(언어력, 수리력 등)과 직업적인 성향(현실형, 탐구형 등)을 알 수 있어서 좋다. 아쉬운 건 적합한 직업을 찾아준다는 명확한 목적으로 가지고 진단해주다 보니 추천직업의 목록을 나열해 준다. 나에게 맞는 일이라고 해서 좋은 일자리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추천직업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의사, 경찰, 약사, 교사 이런 식으로 단순 매칭해 주는 경우가 있어 참고하는 게 좋다. 왜냐하면 경찰 안에서도 교육을 하는 직무도 있고 범인을 검거하는 직무도 있다. 직업의 이름만으로 접근하면 맞는 일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추천 직업보다는 검사결과를 잘 보면 된다.
다양한 자아인식 도구들은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과학적으로 가장 검증되었다는 검사도구들도 상담하고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조금씩 다르게 나오기도 하고,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가에 따라 답변하는 방향이 달라지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검사결과도 바뀌기도 한다. 현재의 나를 명확하게 진단해 주는 도구는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검사 결과들의 ‘경향’이다.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보면 그 사이에서 공통된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를 만난 것처럼 머릿속에 한 사람이 그려지는 순간이 있다.
내 공통된 결과를 풀어서 쓰면 이렇다. “내향적이며 다른 사람에 깊이 공감한다. 통찰력을 가지고 문제를 분석하여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있으며, 창조적인 예술활동이 맞는다. 반면에 사회성이 부족하며 부정적이 되기 쉽고 행동에 옮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수리능력과 추리능력은 평균 이하이다.” 사실 어떤 결과들은 서로 충돌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모아놓고 보면 한 곳으로 수렴하는 게 보인다. 그 정도면 성공적인 자아 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