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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홍 Dec 30. 2023

산골 살림의 기본이었던 장 담그기

#12 가사 노동사 ③

산골 살림의 기본은 장 담그기였다. 장을 담글 줄 알아야, 비로소 살림 좀 한다는 소릴 들을 수 있었다. 과정이 제일 복잡하고 까다로운 건 역시 된장이었다.      


“서당 집이 산을 등지고 있었거든. 집 뒷마당이 끝나고 산이 시작되는 경계가 말하자면 메주콩 밭이었어. 5월쯤, 날이 푹해지기 시작할 때 메주콩을 뿌리는 겨.”  

   

지력이 좋아, 뿌려만 놓으면 그런대로 잘 자랐다. 11월이 되면 수확해 마당에 늘어놨다.  가을 햇볕 받은 콩대는 이틀이면 넉넉히 말랐다. 타작은 시아버지 담당이었다. 시아버지가 도리깨질할 때면 동분은 달달한 설탕물을 타다가 드렸다. 


골라낸 메주콩은 커다란 가마솥에 넣어 반나절을 삶고, 두어 시간을 더 뜸 들였다. 나중에 발로 밟았을 때 어지간히 으깨질 정도로 삶는 게 포인트였다. 너무 푹 삶아도 안 되고, 덜 삶아도 안 됐다. 그걸 가늠하는 건 역시 시어머니였다. 뜸까지 들인 메주콩은 자루에 담고, 다시 비닐로 감싸 발로 꾹꾹 밟아가며 으깼다.   

   

“그러고 나면 이제 다라이에 쏟아서 네모 모양으로 빚는 겨. 산골에 틀이 어딨냐? 손으로 탁탁 두드려가면서 적당하게 빚는 거지. 그런 다음에 뒷방 윗목에 지푸라기를 도톰히 깔고 그 위에 올려. 아직 말캉말캉하기 때문에 바로 매달면 안 되고 딱딱해질 때까지 며칠 바닥에 말려두는 겨. 많이 안 했어~! 농사지어서 타작하면 메주콩이 딱 한 말 나왔고, 그거 메주로 만들면 5~6개 정도 나왔어. 여덟 식구 1년 딱 먹을 거니까 그 정도면 적당한 양이었지.”    

 

새벽부터 메주콩 삶기 시작해도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일이 마무리 됐다. 메주콩을 삶든 말든, 삶은 메주콩을 네모 모양으로 빚든 말든 어김없이 끼니는 찾아왔고, 빨래와 청소를 거를 순 없었다. 밥하고 설거지하는 틈틈이 가마솥을 들여다보고 아이들을 씻기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틈틈이 삶은 메주콩을 발로 밟아 으깨고 모양을 빚어야 했다. 그런 날, 동분은 자신의 코 고는 소리에 놀라 깨곤 했다. 


1996년, 큰아들 주성 국민학교 졸업식. 동분 시어머니 故 김동춘 씨 75세 때. 


그렇게 일주일가량 윗목에 두면 표면에 곰팡이가 살짝 피면서 적당히 말랐다.  그러면 지푸라기로 잘 여며 처마 밑에 매달았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말랐다 반복한 메주는 이듬해 봄, 속까지 바싹 말랐다. 된장은 따뜻한 기운이 돌기 전에 담가야 맛있다고 해, 보통은 1~3월 사이에 담갔다. 동분의 시어머니는 3월부터 메주 상태를 수시로 살펴 가며 적당한 시기를 잡았다. 어쨌든 3월을 넘기지 않았다.   

   

“메주 겉에 먼지랑 곰팡이가 잔뜩 쌓였을 거 아녀. 그러니까 메주를 물에 담가서 솔로 살살 씻어내는 겨. 그렇게 물로 씻어내도 이미 딱딱하게 굳어서 으스러지지도 않어. 깨끗이 씻어낸 메주를 다시 소쿠리에 담아서 반나절 말려. 물기가 남아있으면 된장이 맛없는 법이거든. 그런 다음에 이제 단지에 메주를 차곡차곡 넣고, 소금물을 한가득 붓는 겨. 그 위에 숯이랑 홍고추 말린 걸 잔뜩 뿌려. 그렇게 해놓고 뚜껑 딱 닫아서 석 달 정도 더 숙성시키는 겨.”     


5월에 메주콩 심고, 11월에 수확해 타작하고 삶고 메주로 빚어 겨우내 말려 3월, 단지에 쌓아 소금물에 절인 메주가 숙성되는 동안 다시 5월이 되어 새로운 메주콩을 심었으니, 어지간한 인내와 수고로움으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게 장 담그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산골에서 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조리자면 된장과 간장이 필요했다. 그래야 밥상을 차릴 수 있었다. 


6월이 되면 단지 속 새카맣게 변한 소금물(이게 조선간장이다.)에서 메주를 건졌다. ‘다라이’에 놓고 사정없이 치댔다. 치댄 걸 다시 단지에 꾹꾹 눌러 담고, 그 위에 굵은소금을 소복이 뿌렸다. 구더기가 생기지 않게 일종의 살균막을 치는 거다.      


“6월에 건져서 치대면 그게 된장이여. 바로 먹어도 되긴 하는데 깊은 맛이 덜해. 그래가지고 뚜껑 대신 망을 씌어서 다시 햇볕 좋은 곳에서 보름 정도 숙성시키는 겨. 7월은 되어야 깊고 부드러운 된장이 비로소 완성되는 거지. 그러니까 니가 한 번 생각해 봐라. 지난해 5월에 심어서 수확한 메주콩으로 담근 된장 한 번 맛보려면 장작 1년 하고도 2개월이 더 걸리는 겨. 그게 보통 일이었겄냐.”     


된장에 비하면 고추장은 아이들 소꿉장난이었다. 봄에, 시장 가서 마른 홍고추 사다가 방앗간에서 고운 고춧가루로 빻아왔다. 엿기름과 메줏가루, 소금까지 준비해 ‘다라이’에 한데 넣고 물을 부어가며 두어 시간 계속 치대면 완성이었다. 


1983년, 시집살이하던 시절의 동분과 큰아들 주성. 


산골에서 된장만큼 중요한 건 김장이었다. 된장과 김치만 있어도, 그럭저럭 밥상을 차릴 수 있었다. 7월에 씨 뿌린 배추는 9월부터 알이 차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예쁜 놈은 놔두고 못난 놈부터 속아다가 겉절이 담가 먹는 겨. 작년에 담근 김장 김치가 그때까지 있겄냐? 봄이면 끝나지. 산골 겨울엔 먹을 게 없잖어. 그러니까 겨우내 김장 김치만 파 먹는 겨. 그냥도 먹고 찌개나 국도 끓여 먹고 전도 부쳐 먹고 볶아서도 먹고. 봄부터는 미나리로 김칫국물 담가 먹고, 여름에 열무김치 좀 먹다가 가을에 못난 배추 속아 먹다 보면 또 김장철 오는 거지. 아무튼 한 100포기 정도만 남겨놓고 속아 먹다가 10월 초면 배춧속이 차올라. 그러면 니네 할머니랑 지푸라기 갖고 가서 일일이 묶어줬지. 그러다 11월 초에 싹 수확하는 겨.”     


어쨌든 11월 중순을 넘기지 않았다. 더 추워지면 배추가 싱거워진다는 게 시어머니 지론이었다. 서당의 김장은 2박 3일이나 이어졌다. 시어머니는 언제나 그랬듯, 무엇 하나 ‘설렁설렁’이 없었다. 첫날 오전, 배추를 수확해 겉잎을 훑어내고 소금물로 꼼꼼하게 씻어내면 점심이었다. 밥 먹고 오후부터 들통에 배추를 한 포기 한 포기 쌓아가며 층층이 소금을 뿌려서 절였다. 저녁 먹고 나면 맨 위의 배추가 맨 밑으로 가도록, 다시 모든 배추를 한 포기씩 옮겨가며 소금을 뿌려 쌓았다. 


다음날 다시 소금물에 세 번 헹군 배추를 소쿠리에 줄줄이 늘어놨다. 물기를 쫙 빼는 사이, 전날 저녁 미리 준비한 무, 쪽파 고춧가루, 풀 등을 ‘다라이’에 한 데 섞어 양념소를 준비했다. 냄새나는 걸 질색했던 시어머니는 멸치액젓 같은 건 일절 넣지 않았다. 


준비한 양념소로 배추를 치대 단지에 한 포기씩 차곡차곡 쌓고, 맨 위에 시래기 이파리를 덮어 감싼 후에야 뚜껑을 덮었다. 그렇게 커다란 단지 서너 개를 배추로 가득 채우면 어느새 저녁이었다. 그다음날, 동치미까지 담가야 서당의 2박 3일 김장이 끝났다. 집안에 장정이 둘(남편 송일영과 시동생)이나 있었건만, 김장은 오직 시어머니와 동분의 몫이었다. 그다음 날에도 시어머니는 어김없이 새벽부터 마당을 쓸었다. 동분은 수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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