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대학교 기숙사 입소 전날이었다. 이불이나 옷이나 다 택배로 보낼 예정이라 짐이랄 것도 없었다. 그래서 혼자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부모님은 그게 내키지 않으셨던 모양이었다.
아빠는 스타렉스를 가진 친구를 부르고 택배로 보낼 짐까지 다 욱여넣었다.
차에는 아빠 친구, 부모님, 나까지 총 네 명이 있었다.
짐을 싸고 동네를 빠져나가려는데 앞에서 또 다른 아빠 친구가 손을 흔들어 차를 세우셨다.
"어디 가냐?"
"큰딸, 기숙사 들어가서 짐 옮겨주러 간다. 왜 따라붙으려고?"
"잠깐만 기다려 나도 가자."
그러더니 아저씨는 재빠르게 집으로 들어가 약 5분 뒤에 나오셨다. 그새 잠바를 챙겨 입으셨고, 한 손에는 갓 구운 반건조 오징어, 한 손에는 맥주캔을 들고나오셨다.
집에서 대학교까지는 차로 편도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런데 이 자유로운 영혼의 아저씨는 고민도 안하고 반건조 오징어와 맥주만 들고 타셨다.
예상보다 출발 시간이 약 5분 정도 늦어진 상황에 나는 예민…. 해 질리는 없었고 그저 당황스러웠다.
반건조 오징어를 든 아저씨는 오늘 다른 일정이 없으셨나? 혹시 목적지를 인근 다른 지역으로 잘못 들으셨나? 아리송했지만 어른이 내린 결정이므로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 큰길로 빠지려나 했는데 반건조 오징어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우회전, 우회전! 영식(가명)이도 따라붙는대, 내가 아까 전화했지."
그렇게 영식이 아저씨도 동행하게 되었다.
이 따라붙는다는 말을 다른 지역에도 쓰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예정에 없었지만, 누군가 가니까 나도 따라간다. 또는 나는 무엇을 하러 갈 건데 너도 함께할래? 와 같은 상황에서 '따라붙는다.'라는 말을 쓴다.
재미있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을 서울 와서는 못 들어본 것 같다.
생각난 김에 따라붙는다는 말을 쓰도록 해야겠다.
나의 고향은 아주 작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을 사는 부모님에게는 고향 전체가 집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넘어지면 친구 집, 뒤로 넘어져도 친구 집, 걸으면서 비틀대도 좌, 우로 모두 친구 집이다.
읍내 장이라도 서면, 동창회가 따로 없다. 나는 몰라도 나를 알고 계신 부모님 친구분들과 지인들이 계시는데, 때로는 이런 게 매우 숨 막혔다. 특히 청소년기는.
아무튼 그러다 보니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직진으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유혹에 약한 것인지, 챙겨야 할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 쉬어가는 정거장이 참 많다.
한 번은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에 갔었다. 역시나 동창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은 친구였기 때문에 결혼식에는 신랑 친구들과 부모님들의 동창회가 따로 없었다.
어찌어찌 식사까지 마치고 집으로 가야 해서 차편을 알아보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빠를 만났다.
친구 차로 데려다줄 테니 타라고 해서 친구와 나는 아무 의심 없이 탔다.
택시비를 아낄 수 있어서도 좋았지만, 빨리 집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뻤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갈림길이 나올 때 마다, 건물이 나올 때마다 멈추어갔다.
승객을 가득 태운 고속버스를 타고 이정표에 보이는 휴게소마다 들려도 이것보다는 덜 멈춰갔을 것이다.
작은 슈퍼를 하는 친구 집에 한 번 서고,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드시고 있다는 친구 집에서 한 번 서고, 연락도 없이 무작정 친구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친구를 불러내고, 한번은 말 그대로 읍내로 돌아가는 아빠에게 따라붙은 아저씨도 계셨다.
타는 건 자유지만, 말 그대로 내리는 문은 없었다.
분명 오전 예식 후 점심을 먹고 차에 탔는데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면 말을 다 했다.
친구는 중간에 카카오택시든 히치하이킹이든 해서 간다고 했지만, 그런 산골에는 카카오택시가 오질 않는다.
겨우겨우 집에 돌아와서 지친 몸을 뉘며 반성했다.
함부로 타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