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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Aug 13. 2021

단순하게 살고 있습니다.

 내 주변엔 멀티플레이어가 많다. 본업과 취미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람. 이 일을 하면서 저 일도 생각하고, 그 와중에 주변 사람들까지 챙기는 사람. 나는 그들을 대단히 여긴다. 그렇게 여기기만 한다. 살면서 몇 번인가 원치 않게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했는데 가랑이가 찢어져 쓴 맛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멀티플레이어가 들으면 언짢을 수도 있지만, 때때로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올 때가 있다. 하지만 기분 나빠하지 마시라. 숨이 가쁜 건 내 몫이다. 이제 나는 그럴 때마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우리가 본디 다른 종임을 생각하면서.

 나는 멀티플레이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의 장점이, 한 가지 일에 곧잘 몰입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평소 많은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주로 혼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업무를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업무 중엔 최대한 그 일에만 집중하려 한다. 그래야 일이 될까 말까 하지 않나. 돈 버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딴 길로 샜다가는 일이 제때 끝나지 않고 자꾸만 밀리는 통에 하루하루 부담만 늘어갈 뿐이다. 이젠 체력이 달려 미루다 벼락치기하는 것도 벅차다.

 하고 싶은 일을 웬만하면 혼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자유롭기 때문이다. 자유라는 건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을 때 성립되는데, 무언가를 혼자 하면 그럴 일이 드물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행복을 만끽한다.



 앞서 나는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여기서 몇몇 사람들이 반박하는 소리가 들린다. "인스타 보니까 친구들도 많이 만나던데? 친구 많더만". 해명을 좀 해야겠다. 만일 내가 여전히 서울에 살았다면 지금처럼 여러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진 못 했을 것이다. 회사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과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잉여 에너지가 남아있질 않았으니까. 요즘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루에 단 한 명도 마주치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라 모아둔 에너지로 장풍 쏘듯 사람들에게 시간을 쓸 수 있다. (요가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는 되려 에너지를 얻으니 열외로 하자)

 제주로 이주하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대체로 나를 만나기 위해 제주행을 택한 사람들이다. 나는 무리하지 않고 내 컨디션이 온전할 때 그들을 만난다. 그들은 이주 후 내가 잘 적응하고 있는지, 한편으론 제주에서의 삶을 동경하기도 하며 내 이야기를 들으러 온다. 살아보지 않은 낯선 환경에 정착하는 일이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기 때문에 그간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그러면 그들 대부분은 그간 힘들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삶의 터전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이야기의 농도가 이토록 짙어질 수 있다니,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들에겐 제주에서의 시간이 짧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것을 쏟아내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어느새 나는 떠나는 그들을 배웅하며,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중 몇몇은 머잖아 다시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그때 했던 비슷한 이야기를 들고서. 도시에서의 삶은 그토록 지리멸렬한 것인가. 그랬던 것 같다.

 정말 막역한 사이일 경우 서로 못 본 지 너무 오래된 탓에, 말 그대로 '보고 싶어' 해후하기도 한다. 보고 싶다는 말을 예의로나 해봤지, 진짜 누군가 보고 싶어 질 날이 올 줄이야. 그들과 보내는 시간은 전혀 피곤하지 않다. 정말 놀랍게도.

 간혹 제주에 여행 왔다가 마침 내가 생각나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산뜻하게 만났다 쿨하게 헤어진다.

 이렇게 한 차례 친구들이 다녀가면, 비록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졌지만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 것을 느낀다. 변함없이 서울에 살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다.



 제주로의 이주로 내 생활은 더 단순해졌다. 그만큼 무언가에 몰입할 환경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셈이다. 어수선한 주변을 정리하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의 마음가짐도 한결 편안해졌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기분 좋은 소식이다.

 이렇게 진심을 다해 시간을 쓰다 보면 나는 어디에 게 될까. 무언가에 깊어지게 될까? 지금은 그저 흥미롭기만  , 조급하거나 두렵지 않다. 즐거웁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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