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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Mar 27. 2022

푸른 파장을 낳은 <푸른 파장>

 가비언니. 지난여름, 언니가 아침이면 따뜻한 커피와 함께 책을 읽던 우리 집 안락의자에서 언니의 책을 읽었어요. 순식간에 몰입할 수 있었죠.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을 때 단편영화 몇 편을 연달아 본 느낌이었을까요. 감독도 주연 배우도 모두 '조가비'라고 쓰인 엔딩크레딧의 영화들이요. 화면이 꺼진 후 극장 안에 불이 켜지면 관객들은 문을 나서며 이렇게 말하는 거죠. "이거 실화랬나?" 뭐 그런.

 직접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글로 읽는데 왜 두 눈이 뜨거워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언니 오빠는 마치 어디서 들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전해주듯 말했었는데. 그것도 웃으면서. 왜 글에서는 언니 목소리가 더 작게 들리는지 모르겠어요.

 한여름 제주의 서쪽 바닷가에서 태닝을 하던 언니. 그러다 틈틈이 펼쳐 든 노트에 무언가를 써 내려가던 언니. 그때 썼던 글도 이 책에 담겨 있을까요.

 저는 <푸른 파장>이라는 제목이 놀랍도록 절묘하다고 생각해요. <푸른 파장>이 푸른 파장을 낳았거든요.






 제주로 이주하기 전 언니와 볕을 쬐며 산책한 적이 있었죠. 오빠 없이 둘만의 시간을 보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단둘이라 쓰려다 우릴 앞장섰던 두부가 생각났네요. 그날 들렀던 한남동 서점에서 언니가 제게 책 한 권을 선물했어요. 김한민 작가의 <비수기의 전문가들>이라는 책이요. 책을 건넨 후 커피를 마시며 언니가 제게 말했어요. 힘든 일이 있거나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싶을 땐 언제든 이메일을 보내라고요.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될 거라고 말이죠.

 그로부터 며칠 후 저는 제주로 이주했어요. 그리고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죠. 저는 그대로인데 제 주변의 모든 환경이 한꺼번에 바뀌는 일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도, 만만치도 않았어요. 그 모든 게 제가 선택한 결정이라는 사실이 저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어요.

 고백하자면, 그즈음 <비수기의 전문가들>을 꺼내 읽다 포기하고 말았어요. 언니도 알다시피 언니에게 이메일을 보내지도 못했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몇 차례 언니에게 손편지를 우편으로 보낼 수 있었어요. 힘든 시기를 흘려보내고 난 후였죠. 어차피 흘러갈 거, 그때 언니에게 하소연이라도 할 걸. 만약 언니에게 이메일을 보냈다면 언닌 어떤 내용으로 답장을 보냈을까요. <푸른 파장>을 읽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언니. 삶은 왜 이리도 극단적인지 모르겠어요. 곰팡내로 가득한 10대 때의 기억은 차치하더라도 말예요. 하루 중 삼 분의 이를 모니터 앞에 앉아, 중력을 결코 이길 수 없는 척추가 내려앉아야만 비로소 큰돈을 손에 쥘 수 있었거든요. 그 와중에 저는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내게 과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제 체력과 시간으로 맞바꾼 마땅한 대가를 받고도 말이죠.

 빅브라더는 어딘가 분명 존재한다고 믿게 된 저는 그 '큰돈'을 포기하고 일하는 시간을 삼 분의 일로 줄였어요. 그러자 통장으로 입금되는 숫자도 자로 잰 듯 그만큼 줄어들었죠. 이러나저러나 월급이라는 놈은 매달 내 노동의 가치를 하찮게 여겨지게 만들었어요. 이쯤 되면 마음 수련인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제가 돈 버는 데엔 영 요령이 없는 건지도 모르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니잖아요. 내 척추가 닳아 없어지고 나서야 살 만해지면 뭐해요, 지금의 젊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운동을 열심히 해도 이렇게 여기저기 쑤신데. 그래서 이번 달 월급 앞에선 어깨를 좀 폈어요. 귀여운 월급을 받기 전 통장에 남아있던 앙증맞은 잔고를 저금하면서요.

 누군가는 고루하다 여길 생활방식이 어느덧 자연스레 제 습관이 되었어요. 그러고 보면 고루하다는 건, 실은 타인이 누군가를 평가하는 잣대가 아닌가 싶어요. 저는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고, 빠듯하다 싶은 시기엔 더 아껴도 보고, 사용한 물건은 늘 제자리에 두고, 신선한 채소로 요리해 먹고, 설거지는 바로바로 하고, 기름 튄 가스레인지는 제때 알코올로 닦아주고, 몸이 원하는 만큼 운동하는 이 생활이 아주 마음에 들거든요. 언니가 말한 것처럼 "나의 건강, 정신, 집을 매일 살피고 관리해야 된다는 것을(조가비 <푸른 파장>, p30)" 저도 매일 느끼고 있어요. 그래야만 극단적인 이 삶에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언니 오빠가 있어 삶이 더 재미있기도 하고요.






 저는 항상 오빠가 행운아라 생각했어요. 언니를 만나서.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짧은 대화만으로도 그렇게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여름 언니 오빠와 함께 보낸 시간 동안 오빠만 복 받은 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역시 여행을 같이 해봐야 친구를 더 깊게 알 수 있는 건가 봐요. 언니가 책에서 말했듯, "예측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짜증과 불만보다는 색다름에 재미를 느끼는(조가비 <푸른 파장>, p142)" 사람이 오빠니까요. 힘에 부쳐도 불평불만이라곤 단 한 번도 없던 오빠에게 고마웠어요. 그리고 우리가 밤마다 개복치라 놀리던 언니 곁에 그런 오빠가 있어 참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기억을 뱉어내 글로 토해내(조가비 <푸른 파장>, p158)"는 것이 10대의 언니를 위로했을까요. 그 글을 쓸 때 언니는 무덤덤했나요. 그 글을 읽던 제 눈은 다시 금세 뜨거워졌는데. 그러다 다짐했어요. 저도 사랑의 언어를 적어보겠노라고. 어린 시절의 제게, 한때 원망했던 저의 오빠에게, 평생 악착같이 애처롭기만 했던 엄마와, 삶의 대부분을 제 증오로 먹고 산 아빠에게. 친구들에게. 뜻밖에도 그 다짐을 하게 해 준 언니에게 가장 먼저 사랑의 언어를 전해요.

 언니가 제게 그랬죠, 앞으로의 네 삶이 더 기대된다고. 저도 늘 그래요. 앞으로의 언니 삶이 더 기대돼요. 언니의 실험을 응원해요. 지금껏 그래 왔듯 모든 순간을 함께 공유할 순 없겠지만 다음 책이 나오면 앞으로 언니와 제 사이의 공백이 또다시 채워지겠죠. 벌써부터 그날이 기다려져요. 물론 조만간 만나게 될 테지만.

 다시 한번, 고마워요. 책을 펼쳐 줘서. 푸른 파장이 삶의 작은 위로가 되어 와닿게  줘서. 저도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알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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