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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Jun 16. 2020

Track.64 우리는 모두 럭셔리버스에 타고 있다

포르투갈 리스본 Track.64 럭셔리버스-One More Chance


2019.11.17 (일)
포르투갈 리스본 - 세비야 야간 버스
Track.64 럭셔리버스-One More Chance



세비야로 가는 버스를 타러


“힘든 인생은 없어 럭셔리한 경험만 있을 뿐......”
- 럭셔리버스 -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내고 세비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리스본에서 세비야로 가는 길은 길고 긴 하루가 필요한 길이었다. 리스본에서 세비야는 거리는 가까워 보이지만 가는 방법은 녹록지 않다. 비싼 돈을 내고 공항까지 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비행기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파로(Faro)에서 몇 안 되는 환승을 하거나, 아니면 주간 7시간 넘게 걸리는 버스를 타고 가거나. 세 가지 방법 모두 시간과 돈을 모두 길바닥에 버리는 방법이기에 적합하지 않다. 몸이 하루라도 젊은 사람이라면 시간과 돈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을 택하기 마련이다. 결국 내가 택하는 방법은 야간 버스를 타고 숙박과 교통을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진정한 배낭여행자라면 야간 버스 정도는 타 줘야죠~!!!

이 말은 내가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만난 후배의 허세가 조금은 담긴 조언이었다.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발을 디딘 그녀는 주말, 공휴일, 연휴 등을 이용해 유럽여행을 다니던 당찬 아이였다. 그녀는 겁도 없었는지 유럽여행을 다닐 때, 야간 버스를 애용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돈과 시간이 없으니까. 야간 버스나 야간열차를 타며 숙박비와 교통비를 한 번에 해결하고, 자고 일어나서 바로 여행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라는 거다.


사실 나는 여행지에서 호스텔 도미토리에서 자더라도 큰 불편함 없이 지내는 여행자이지만, 야간 버스는 최소한으로 이용하려 했다. 왜냐면 야간 버스를 타고나서 다음날 여행하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야간 버스를 타느니 차라리 아침에 일찍 출발하는 교통편을 선택해 여행을 하는 것이 나의 여행 중 교통편 가치판단이었다.


하지만 리스본에서 세비야로 가는 여정만큼은 야간 버스를 택해야만 했다. 야간 버스를 제외하고는 시간과 돈, 모든 게 비효율적인 교통편이었기 때문이었다. 후배의 말처럼 진정한 배낭여행자, 그것도 진정한 짠내투어 여행가라면 야간 버스를 택하는 상황을 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저녁이 지나 밤으로 향하는 시간에 나는 호스텔을 나와 터미널로 향했다.





조금은 낡은 버스터미널에서


밤 9시 30분 리스본 Sete Rio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10시 출발 예정인 세비야로 가는 버스를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Sete Rio 터미널은 국제 버스노선이 다니기에는 의문이 드는 낡고 작은 터미널이었다. 그동안 유럽에서 만난 버스터미널은 우리나라의 버스터미널과 같거나 일부 도시는 그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리스본 Sete Rio 버스터미널도 마찬가지였는데, 국제버스터미널이 없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유럽은 국제버스터미널이나 국내 시외버스터미널이나 그게 그거인 느낌이었다.


시설이 실망스러웠던 리스본 Sete Rio 버스터미널과 다르게 다행히 버스는 깔끔하고 신식이었다. 10시가 되자 버스에 탑승했고 리스본의 오리엔테(Oriente) 버스터미널을 들렀다. 오리엔테 버스터미널은 Sete Rio 버스터미널과 달리 신식 버스터미널이었다. Sete Rio 버스터미널이 노선의 시작점이라서 낡은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터미널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차후에 리스본 야간 버스를 이용한다면 신식의 오리엔테 버스터미널에서 탑승할지도 모르겠다.




밤거리를 거스르는 버스를 타고


리스본 오리엔테역을 지나 버스는 세비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실내조명은 꺼지고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기대며 잠을 청한다. 오전에 마신 커피 때문인지, 아니면 조금은 불편한 자리 승차감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앞자리 포르투갈 아주머니의 코 고는 소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쉽사리 잠은 오지 않았다. 야간 버스의 첫 경험에서 잠을 푹 잘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이렇게 잠이 오지 않을 줄은 몰랐다. 새벽을 향하는 버스의 감성에 맞춘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를 들으며 잠에 들으려 노력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정차하고 나서부터는 짧은 쪽잠을 자기 시작했다. 자다 깨다를 반복 했지만 세비야에 도착하기 전 2시간은 그래도 깊게 잠을 잤다. 몸이 어느 정도 버스에 적응해 잠에 들 때쯤, 도착지에 도착했다.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 갈 때의 야간열차는 운행시간이 길어 푹 자고 날 수 있었는데, 리스본에서 세비야로 가는 야간 버스는 깊게 자고 일어나기엔 조금 애매한 시간대였다.




새벽에 맞이한 세비야 Armas 버스터미널 대합실


밤새 세비야로 향한 버스는 세비야의 Armas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세비야로 넘어오니 핸드폰에서 로밍 메시지가 새롭게 날아왔다.


"bienvenido, Espanol "


세비야 Armas 터미널에 도착하니 핸드폰 시계는 새벽 5시 20분을 가리켰다. 숙소에 들어가도 체크인을 받아주지 않는데, 그렇다고 터미널 대합실에 불안해하며 동트기를 기다리는 것도 무리였다. 여기는 스페인, 한국과 같은 24시간 운영하는 맥도날드, 스타벅스는 꿈도 꿀 수 없다. 일단 숙소로 이동해보기로 한다. 길을 나서니 새벽 동트기 전의 어스름이 짙게 깔린 풍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었는지, 그 새벽길을 혼자서 떠났다. 새벽에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멘 동양인 남자 한 명은 스페인에서 첫 여명을 맞이했다.


터미널에서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자 다행히 리셉션은 24시간으로 운영되어 짐만 맡기고 공용공간은 사용할 수 있었다. 숙소 예약할 때, 사전에 메일로 새벽에 도착한다고 미리 말해두었더니 리셉션에서 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체크인하기 전에 짐을 맡기고 공용공간에서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공용공간에 보니 소파가 있다. 소파를 침대 삼아, 콘센트에 휴대폰을 충전하며 밀려온 졸음을 참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뻗었다.


인기척이 느껴져 잠에서 일어나니 공용공간에선 다른 사람들이 조식을 먹고 있었다. 공용공간은 아침에는 조식 공간으로 이용되는데, 나는 사람들 조식 먹는 가운데에서 잠에 빠져있었다. 사리판단되지 않는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창피함보다는 뻔뻔함이 더 앞선다. 소파에서 좀 잔 게 뭐가 대수랴. 대충 아무렇지 않은 척, 침을 닦고 머리를 대충 정리한 뒤에 일어났다.


시간을 보니 체크인하기엔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세비야에서의 첫날, 남들보다 좀 더 일찍 세비야에서의 하루를 시작해보려 밖으로 나갔다.


저 소파에서 나는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러게요... 저도 지내는 동안 한 명도 보지 못했어요..ㅠㅠ







우린 모두 럭셔리버스를 타고 있다

“우리는 기다리며 살지 멋진 순간들만. 하지만 우릴 기다린 건 황당한 순간들.
하지만 먼 훗날 뒤돌아보면 모두 럭셔리한 무용담. 걱정할 필요 없어 모두 추억이 될 테니.”
- 럭셔리 버스 -  
야간 버스 타러 가는 길에 찍은 한 컷, 이때까지만 해도 오늘 밤이 어떨지 모르던 나였다.


여행을 하며 올리는 인스타그램의 사진과는 다르게 여행의 진짜 모습은 항상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두 달이 넘는 여행을 하며 멋진 순간들도 있었지만 황당한 순간들도 많았다.

캐리어 바퀴가 빠져 데굴데굴 굴러 영국 신사가 내게 바퀴를 건네주었던 웃지 못할 비 내리던 리버풀,

버스 출발시간을 잘못 알아 헐레벌떡 뛰어가 출발 1분 전에 정류장에 겨우 도착했던 취리히,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소매치기를 당해 경찰서를 가고 멘붕된 멘탈 수습하고 없어진 여행경비를 만회해야 했던 피렌체까지.


이외에도 여행 중 화장실이 급해 하늘이 노랗게 변했던 순간, 호스텔에서 오지게 코를 골던 외국인 덕분에 밤새 뜬 눈으로 지새우던 날, 호스텔 침대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커플 덕분에 직원이 방에 찾아와 불을 켜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던 하루까지


여행하며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멋진 순간들보다 이동하며 캐리어를 질질 끄느라 힘든 순간, 당장 내일 신을 양말을 욕조에 쭈그려 앉아 손빨래하는 순간, 바람에 우산이 뒤집혀 어떻게든 우산을 쓰려 전전긍긍하는 순간이 여행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기억이었다.


전혀 럭셔리한 순간이 아닌 궁상맞은 시간도 있지만, 그런 시간도 여행의 일부가 되어 럭셔리한 경험과 무용담, 그리고 추억이 된다. 오늘의 지치고 힘든 야간 버스 경험도 돌이켜보면 럭셔리한 추억이 될 터이니.


노래 가삿말처럼 힘든 인생은 없고 럭셔리한 경험만 있을 오늘 밤, 세비야에서의 첫 하루, 그리고 이번 유럽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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