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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Jun 10. 2020

Track.63 조금은 어른이 된 듯한 느낌

포르투갈 리스본 Track.63 유후 - 박지윤

2019. 11. 16 (토)
포르투갈 알파마 & 벨렘 지구
Track.63 유휴 - 박지윤



어디부터 어디까지 정해놓지 않고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정해놓지 않고서, 나의 발걸음이 닿는 만큼 모두 나의 것이 되리.
- 유후, 박지윤 -


오늘의 리스본 하늘은 맑은 날씨였다. 맑은 날씨 아래 눈이 부신 햇살에 이른 아침부터 잠을 조금 설치는 기분 좋은 설렘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자유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여행하는 24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점이다. 하루를 마음껏 쓰라는 자유여행이 주는 미션은 때론 낯선 문답으로 다가온다. 고등학교 때까지 시간표가 정해져 있었고, 대학교 때는 수업 시간표를 마음대로 구성할 수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정해진 시간에 따라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규칙은 동일했다. 회사를 다닐 땐, 출근 시간은 명확했기에 주어진 업무시간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하루를 이렇게 보내라'라는 규칙 따위가 없는 자유여행에선 24시간을 온전히 내 마음대로 보내도 된다. 도시는 느리게 걷는 자에게 새로운 면모를 보이기 때문에 어디부터 어디까지 정해놓지 않고서 나의 발걸음이 닿는 만큼 다녀보기로 한다. 리스본 거리를 걸어 다니면 거리 풍경이 놀이공원의 세트장처럼 느껴진다. 언덕과 산 위에 건물들이 있어서 그런지, 주황색 지붕들이 언덕길 따라 빗겨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리스본이 지닌 굴곡을 두 발로 느껴보기로 했다.




파란 하늘이 뭉클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오전에는 언덕으로 이뤄진 리스본의 언덕길을 따라가 보았다. 리스본의 명물 28번 트램을 타러 간다. 유명세에 걸맞게 28번 트램을 타려는 사람들은 매우 많았다. 약 1시간 반 정도 기다려야 겨우 트램을 탈 수 있었다. 28번 트램은 알파마 지구를 비롯해 리스본의 주요 관광지를 가는 경로여서 인기가 많다. 28번 트램은 옛날 트램 차종을 유지하고 있어서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크게 풍겨왔다. 굳이 어딘가를 가기 위해 트램을 타는 것보다 그저 트램을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유유히 다녀보는 게 더 나았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정해놓지 않고서 그저 다녀보았다.


28번 트램과 같이 도시를 유랑하다 보면 도시의 관광지를 모두 훑고 지나가는 황금노선을 지닌 교통수단이 있다. 그게 버스이기도 하고, 트램이기도 하고, 전철이기도 하다. 황금노선을 타고 도시가 품은 이야기를 간직한 장소에 가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여행이 좋다.


리스본의 28번 트램을 타고 알파마 지구에 내려 리스본의 경관을 한눈에 내려본다거나,

런던의 15번 이층 버스를 타고 이층 맨 앞 좌석에서 런던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내려보거나,

베를린의 100번 버스를 타고 맘에 드는 관광지에 잠시 내려 돌아보거나.


여행자를 위한 대중교통 1일권을 사서 원하는 장소에 잠시 들러 시간을 보내고, 공원에 가서 잠깐의 여유도 즐겨보고, 도시의 거리를 거닐면서 사람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여행지의 하루를 만끽하는 게 좋다.








'리스본=에그타르트' 공식은 언제나 옳다



오후에는 부다페스트에서 만났던 동행을 리스본에서 만났다. 마침 인스타그램을 통해 리스본으로 온다는 걸 알게 되어 도착시간에 맞춰 오후 벨렘 지구를 같이 다니기로 했다. 벨렘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에그타르트 원조집을 향했다.


리스본 벨렘 지구 제로니무스 수도원 옆에 위치한 에그타르트 가게가 있다. 이름은 파스테이스 데 벨렘 (Pasteis de Belem)이다. 에그타르트는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옷의 수선을 위해 계란 흰자만 사용하고, 남은 노른자로 빵을 만들기 시작한 게 유래다. 이후 1800년대 자유주의 혁명이 발생하면서 수도원들이 문을 닫게 되고, 수도사들이 에그타르트 레시피를 수도원 옆 작은 사탕수수 공장에 팔았는데, 이게 파스테이스 데 벨렘의 시작이 된다.


약 20분의 대기 끝에 자리를 잡고서 에그타르트와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에그타르트 하나와 에스프레소 한잔, 리스본에 오는 목적 달성했도다.

페스츄리처럼 바삭한 겉면과 고소하고 달달한 커스터드 크림이 안에서 터져 나와 입안을 채운다. 그리고 씁쓸한 에스프레소 한 모금이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틈을 메꾼다. 포르투와 리스본에는 여러 에그타르트 집들이 많은데 원조의 맛을 먼저 맛보고 다른 집들의 맛을 비교해보며 다니는 것도 포르투갈 여행의 묘미라 생각한다. 1일 1 에그타르트는 포르투갈 여행에서 진리 중에 진리다.



걷다 보니 마주한 역사의 접점

다들 자신만의 항해를 펼치고 있지 않은가요


에그타르트의 고소함에 빠진 정신을 차리고 나서 벨렘 지구를 구경하러 다닌다. 벨렘 지구를 걷다 보면 어느덧 역사의 접점을 마주하게 된다. 벨렘 지구는 포르투갈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천천히 역사적 이야기를 맞이하면서 제로니무스 수도원, 발견의 탑, 그리고 벨렘 탑을 구경했다.


게임 대항해시대 덕후라면 리스본의 벨렘 지구는 꼭 와야 한다. 포르투갈의 최전성기인 대항해시대를 기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견의 탑에는 엔리케 왕자를 비롯해 포르투갈 항해 부흥기의 주역들이 바다를 향해 우뚝 서있다. 발견의 탑 앞에는 포르투갈이 발 디딘 아프리카,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 지역 지도가 그려져 있다. 1541년 포르투갈은 일본에 도착하고, 포르투갈로부터 조총을 알게 된 일본은 51년 뒤 조총을 들고 임진왜란을 벌인다. 서쪽 끝 포르투갈이란 나라가 동쪽 끝 우리나라 역사에 깊게 관여한 순간을 만든다. 세계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역사에 영향을 주고받고 있었다.


포르투갈과 우리가 알게 모르게 역사적 접점을 이루듯이, 사람들도 자신만의 역사적 접점을 이루는 게 아닐까 싶다. 각자가 인생이란 항해를 일생에 걸쳐 나아간다. 폭풍우 같은 어려운 역경을 겪기도 하고, 잔잔한 바다처럼 평온한 순간도 있을 것이다. 때론 배가 항구에 정박하듯, 앞으로의 항해를 위한 휴식의 시간을 보내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도 나름의 항해를 펼치고 있는 중이다. 이 항해가 펼치는 일지는 이후 나에게 펼쳐질 어떠한 사건과 이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이때의 여행이 지금 브런치에서 여행기를 작성하는 걸로 예상한 적 없듯이.





오늘의 여행 BGM인 박지윤의 '유후(YooHoo!)'는 여행을 다니며 느끼는 감정을 노래한다.

좋은 날씨에 괜히 마음이 들뜨기도 하고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정해놓지 않은 채 다니기도 하고

파란 하늘이 뭉클해서 다시 길을 나서기도 하고

나도 모르던 나를 만나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기도 하다.


아직은 스스로 어른이라 말할 수 없는 듯한 느낌을 가지며 살아가지만,

여행을 하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는 나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는 나를 만나게 되어 스스로 어른의 자격을 충족해나가는 것만 같다.

 

오늘의 BGM을 들으며 리스본 야경을 배경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제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내일을 준비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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