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세비야 Track. 67 Everything is Sound
2019. 11. 20 (수)
스페인 세비야 투우장
Track.67 Everything is Sound - Jason Mraz
세비야에 비가 거세게 내렸다.
아침부터 세차게 내린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세비야의 셋째 날, 태양의 나라라고 불릴만한 날씨는 어제까지였나보다. 비가 내리니, 밖에 나가기가 망설여진다. 비가 오니 밖으로 향하기 귀찮아지는 집돌이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어제까지 세비야의 주요 관광지는 모두 다녀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잠시 재정비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오전에는 밀렸던 빨래를 했다.
호스텔에서 빨래와 건조를 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오전의 호스텔은 적막한 분위기다.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소리는 없다. 그저 조용히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청소하는 소리밖에 나지 않는다. 일상의 소리가 호스텔에 조용하게 울린다.
여행 중 잠시 느끼는 일상은 여행하며 쌓이는 여독을 잠깐이나마 푸는 순간이 된다. 현지 마켓이나 시장에 가서 요리하기 위해 장을 보는 순간이나, 밀린 빨래를 몰아서 하며 잠시 쉬는 시간과 같은 소소한 여행 중 일상들 말이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모터 소리와 비 내리는 소리가 의외로 조용한 오전의 공기에 잘 어울렸다. 이런 시간은 유럽 여행자가 가지는 "어디든 돌아다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잠시 벗어나는 시간이 된다.
오후에 빨래를 마치고 비가 어느 정도 잦아들자 밖으로 나가보았다.
숙소 근처에 투우장이 있어서 가보았는데, 마침 가이드 투어가 있다고 해서 참여했다. 스페인의 대표 스포츠인 투우는 원래 남부 유럽에 거주하던 켈트족의 의식이었다고 한다. 유럽의 다른 지역은 투우 문화가 쇠퇴했는데, 유독 스페인 지역만 투우의 명맥이 이어졌다고 한다. 스페인에서도 마드리드와 함께 세비야의 투우가 명물이 되었다. 최근까지도 투우 경기가 열린다고 하지만 동물보호단체의 거센 반대도 만만치 않다고. 스페인만의 전통문화인 투우를 포기하지 않는 스페인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는 동물보호법으로 투우를 금지했지만 마드리드와 세비야는 투우 폐지에 대해 고민이 깊다고 한다. 전통 보존과 동물보호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스페인이었다.
투우 문화가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투우의 잔혹함을 선뜻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 날 투우장 가이드 투어를 통해 스페인에게 있어서 투우가 지닌 의미는 남달랐다.
투우는 단순히 소와 싸우는 스포츠가 아니다. 투우장에서 투우사가 맞닥뜨리는 소는 가장 힘센 수소다. 수소가 지닌 의미는 자연의 강력한 힘을 의미한다. 자연의 강력한 힘과 대치하는 투우사는 인간을 의미하며, 일격의 필살로 수소의 숨을 거두는 투우는 인간이 자연을 이겨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도망갈 곳 없는 투우장에서 수소로부터 당할 수 있는 죽음의 운명을 1:1로 맞이하는 인간의 비장함을 담고 있는 문화가 바로 투우의 문화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러한 죽음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는 투우의 문화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동물을 좋아하는 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투우 문화는 없어지고 이를 대신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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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장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을 뽑으라면, 투우사들이 투우 경기에 임하기 전에 기도를 드리는 기도실이었다. 투우사에 감정을 이입을 해본다. 그들은 얼마나 떨렸을까. 실수하거나 자칫 잘못하면 소의 뿔에 들이받아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나는 특히 첫 번째 경기를 앞둔 투우사들의 심정을 상상해본다. 투우 데뷔 무대를 앞두고 얼마나 간절한 기도를 펼쳤을는지.
투우사의 기도실을 보면서 느낀 건 우리도 한 명의 투우사와 같다는 거였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데뷔 무대를 가진다.
데뷔는 비단 아이돌, 연예인, 운동선수 등에만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사회에 데뷔 무대를 가지고, 각자 다른 분야에서 첫 데뷔를 하게 된다. 데뷔를 하기까지 겪는 연습생 시절, 취준생 시절, 학생 시절과는 다른 사회에 데뷔하는 그 기분을 우리는 누구나 겪게 된다. 얼마나 긴장을 많이 하는가. 언제나 처음은 설렘과 함께 찾아오는 긴장이 동반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는 그 순간, 우리는 모두 데뷔 무대를 가지게 된다.
데뷔를 앞둔 긴장감은 오늘 기도실에서 상상했던 투우사 못지않을 것이다.
우리는 투우사처럼 결국 데뷔를 해서 내게 다가오는 수소에 일격을 날려야 한다. 긴장하는 만큼 집중해서 나의 역량을 보여준다. 내게 다가오는 수소를 피할 길을 없기에 나의 능력을 펼쳐야 한다. 그리고 이 순간을 이겨내면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는 투우사만큼은 아니겠지만, 소소한 인정을 받으며 한 단계 성장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투우장의 기도실을 보며, 앞으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할 수 있다"는 기도를 드리며, 내게 다가오는 수소를 피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