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25 (월) 바르셀로나 한 바퀴 Track.72 꿈을 모아서 (Just in Love) - S.E.S
당신과 걸어가요, 꿈을 모두 모아서
당신과 걸어가요. 꿈을 모두 모아서 저 하늘 속으로 , 내 마음 모두 담아 둘게요 - 꿈을 모아서 (S.E.S) -
바르셀로나의 날씨는 연이어 청량한 맑은 하늘로 가득했다.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의 끝자락, 하늘은 다행히도 맑은 날씨를 허락해주었다. 맑다 못해 청량하고 깨끗한 하늘이었던 바르셀로나의 4번째 아침이었다. 오늘은 맑은 하늘처럼 같이 청량하고 깨끗한 노래를 BGM 삼고 싶었다. 재생목록을 내리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청량한 노래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S.E.S의 ‘꿈을 모아서(Just in Love)’는 내게 가장 청량한 느낌을 주는 노래다.
요즘의 아이돌 걸그룹의 노래를 매우 좋아하는 나지만, 이 노래를 이기는 요즘 걸그룹 노래는 아직 듣지 못했다. 청량한 멜로디에 깨끗한 목소리가 더해지고, 외국어와 외래어가 단 하나도 없는 예쁜 노랫말이 노래를 완성한다. 함께 하는 사람과 꿈을 모아서 미래로 걸어가자는 내용의 가사가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고, 청순한 느낌을 주었다. 그 어떤 있어 보이는 외국어나 외래어, 아니면 인싸력을 뽐내고픈 신조어 등이 없이, 오직 우리말의 아름다운 느낌을 살린 노래 가사가 이 노래의 최고 매력이라 생각한다.
오늘의 BGM인 '꿈을 모아서'를 들으며 현관 밖을 나와본다. 푸른 하늘, 청명한 공기, 그리고 살짝 따스한 햇빛까지. 거리를 나설 때 만날 수 있었던, 모든 요소가 '꿈을 모아서' 노랫말과 어울렸다.
차들의 광장이었던, 에스파냐 광장
바르셀로나의 대표 광장인 에스파냐 광장, 이곳은 자동차들의 광장이었다
오늘은 에스파냐 광장 쪽으로 향했다. 카탈루냐 광장과 맞먹는 바르셀로나의 대표 광장인 에스파냐 광장은 카탈루냐 광장과는 다른 느낌을 내게 선사했다. 바르셀로나의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온다면 카탈루냐 광장을 먼저 만나게 된다. 카탈루냐 광장은 바르셀로나의 중심이며, 모든 지역으로 향하는 교차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항상 북적이고, 관광지의 느낌도 강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장의 역할에 충실한 공간이다.
반면 에스파냐 광장은 카탈루냐 광장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에스파냐 광장은 광장이긴 하지만, 사실 에스파냐 광장은 광장이라 사람들이 모여있을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부르기보다는 거대한 로터리에 가깝다. 에스파냐 광장은 사람보다 자동차들의 광장이었다. 에스파냐 광장 정중앙에 있는 로터리를 중심으로 자동차들이 바삐 움직인다. 에스파냐 광장을 중심으로 차들이 지나갈 때, 차창 넘어 사람들은 바르셀로나의 대표 관광지를 스쳐 지나가게 된다.
에스파냐 광장에는 거대한 모뉴먼트 투우장이 자리하고 있고, 그 반대에는 거대한 베네치안 쌍둥이 탑이 서있으며, 뒤로는 카탈루냐 미술관과 몬주익 언덕이 있었다. 모뉴먼트 투우장은 원래 투우장이었으나 카탈루냐 지역에는 동물학대로 투우가 불법이 되면서 금지되었고 투우장은 내부 공간을 쇼핑몰로 용도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다. 세비야와 다른 투우장의 쓰임새를 보며 지난 세비야에서의 여행 기억이 잠시 떠올랐었다.
에스파냐 광장에서 바라본 바르셀로나의 모뉴먼트 투우장
에스파냐 광장에서 바라본 베네치안 탑, 카탈루냐 미술관, 그리고 저 멀리 몬주익 언덕
저 하늘 속으로, 내 마음 모두 담아둘게요
카탈루냐 미술관
베네치안 쌍둥이 탑
베네치안 쌍둥이 탑은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의 종탑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종탑이 하나라면, 바르셀로나에는 쌍둥이 탑으로 존재한다. 카탈루냐 미술관으로 향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쌍둥이 탑을 기점으로 카탈루냐 미술관과 몬주익 언덕으로 이어지는 영역이 구분되었다.
쌍둥이 탑을 지나 카탈루냐 미술관 앞에 도착하니 커다란 분수대가 맞이하고 있었다.
카탈루냐 미술관 앞 분수대에서는 몬주익 분수쇼가 있는 날이면 화려한 분수쇼를 자랑한다. 오늘은 아쉽게도 분수쇼를 하지 않는 날이라 분수대가 운영되지 않았다. 몬주익 분수쇼가 세계 3대 분수쇼로 뽑히는데, 그 이유는 가장 오래된 분수쇼이기 때문이라 한다. 기술이 발전되어 분수쇼의 규모나 화려함은 몬주익 분수쇼를 능가했지만, 그래도 클래식한 멋에 있어서는 몬주익 분수쇼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나중에 다시 바르셀로나에 올 때는 몬주익 분수쇼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몬주익 분수대를 지나 카탈루냐 미술관으로 올라가 본다.
카탈루냐 미술관은 높이가 꽤 되는 곳에 위치해있는데,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에스컬레이터가 옆에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빠꼼히 바르셀로나 시내가 드러났다. 미술관 정상에 도착해 카탈루냐 미술관 입구 앞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에스파냐 광장의 전경도 꽤 볼만 했다. 에스파냐 광장의 전경, 바르셀로나 시내의 모습, 그리고 저 멀리 티비다보 놀이공원을 비롯한 바르셀로나를 둘러싼 산의 모습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바람이 살랑 불어오니 그저 테라스에 앉아 경치만 바라봐도 기분이 좋다. 동산과 같은 높이의 미술관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바르셀로나 전경의 기억은 푸르렀던 하늘,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설렜던 여행의 기억으로 남았다. '꿈을 모아서'의 노랫말처럼 여행의 기억을 모두 거두어 바라본 하늘에 담아보았다.
카탈루냐 미술관 테라스에서 바라본 바르셀로나 시내 전경과 하늘, 산과 티바티보 놀이공원
뚜벅이의 보상은 달콤한 츄러스 하나면 충분했다
카탈루냐 미술관 테라스에서 내려와 어딜 갈까 고민하며 구글맵을 켰다. 오늘같이 청량한 날씨에는 걸어 다니며 거리의 매력을 느리게 알아가는 게 뚜벅이 여행자의 여행법이다. 오전부터 바지런하게 돌아다닌 탓일까? 뱃속이 출출해지자 나는 지체 없이 발걸음을 고딕지구로 옮기로 결정했다.
고딕지구에서 맛볼 바르셀로나의 맛은 단 하나. 츄로스였다.
세비야에서도 츄로스를 먹어봤지만 바르셀로나의 츄로스가 유명해서 맛보고 싶었다. 스페인의 전통 간식인 츄로스는 한국식 츄로스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어봤기에 더욱 그 맛이 궁금했다. 츄로스를 먹으려 고딕지구에 간 이유는 고딕지구에 유명한 츄로스 가게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츄레리아' 라는 가게다. 한국의 여행 TV 프로그램을 비롯해 여행 가이드북, SNS에서 꼭 가봐야 하는 집으로 선정된 가게다.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애매한 시간, 새참으로 츄러스만한 간식도 없었다.
고딕지구의 츄레리아에 가니 브레이크 타임에 걸렸다. 오후 영업 시작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에, 고딕지구를 한 바퀴 구경하고 오기로 했다. 고딕지구에서 이곳저곳 느긋하게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 영업 시작시간에 가까워졌다.
나는 오후 영업 시작하자마자 바로 주문해서 먹었다. 방금 튀겨 나온 츄러스는 쫀득쫀득하고 설탕이 살살 뿌려져 단맛이 극대화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핫초코에 츄러스를 빠뜨리고선 살짝 낮은 기온에 굳기를 기다린다. 겉은 초콜릿의 맛으로, 속은 츄러스의 쫀득한 맛으로 마무리한다.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서 먹는 츄로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맛있는 맛이었다. ‘선을 넘는 녀석들’ 시즌1에서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김구라가 그렇게 츄러스를 외치는 걸 충분히 이해할만했고,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권혁수가 츄러스 먹방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알만했다.
뚜벅이 여행자에게 작지만 커다란 감동을 주는 보상은 츄로스 하나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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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이 뿌려진 일반 츄로스, 일반 츄로스에 초콜렛을 찍먹하는 초코 츄러스
브레이크 타임에는 문이 닫혀있던 츄레리아 가게(좌)와 츄러스 판매대 (우)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했던 라 보케리아 시장
바르셀로나의 대표 시장인 라 보케리아 시장
츄러스를 먹고 나선 바르셀로나의 대표 시장인 라 보케리아 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여행지에 가면 꼭 들르는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시장이다.
시장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의 생활이 녹여져 있기에 정겨운 공간이라 생각해 평소에도 집 근처 시장을 자주 찾는 편이다. 바르셀로나의 대표 시장인 라 보케리아 시장에 들어서자 각종 식자재를 진열하며 판매하는 가판대에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실 식재료를 보며 어떤 맛인지 궁금한 채, 한국에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멈추지 않았다.
츄러스의 달콤 짭짤했던 맛에 갈증이 나서 1유로짜리 과일주스를 마시면서 시장을 둘러보았다. 시장에는 침샘을 자극하는 먹음직스러운 향기들이 가득했다. 하몽의 짭조름한 냄새부터, 과일의 상큼한 향, 빵의 고소한 냄새 그리고 해산물의 바다 내음까지, 코끝을 자극하는 기분 좋은 냄새들이 시장에 가득 메웠다. 시장 한쪽에 마련된 노점 식당에선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대화하는 사람 사는 냄새도 가득 풍겨왔다. 시장이 주는 사람 사는 냄새를 가득 맡으면서 오늘의 뚜벅이 여행을 마쳤다.
P.S.
글을 쓰는 지금, 코로나 19로 인해 시장의 활력이 줄어든 모습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쉽사리 풍겨오지 않는 게 안타깝다. 지금의 현실이 얼른 극복하고 다시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시장에 가고 싶다. 라 보케리아 시장에서의 기억이 지닌 사람 사는 냄새를 한국과 내가 사는 고장에서 가득 맡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