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귀국길 Track.74 Curtain Call - 태연
2019. 11. 27 (수)
스페인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 - 한국 인천 국제공항
Track.74 Curtain Call - 태연
눈부신 너와 나 끝에 Curtain Call, 바람처럼 안녕
감히 망칠까 나 못한 말 내게 다시 와줘
조명이 날 비추고 네 모습을 가려
눈부셔 슬펐던 우리 Curtain Call, 그 순간처럼 안녕
- Curtain Call -
여행의 마무리 BGM, 커튼콜 (Curtain Call)
차승원과 유해진이 출연하고, 그리고 나PD가 제작한 ‘스페인 하숙’의 마지막 엔딩은 태연의 Curtain Call이 흘러나오면서 그동안 하숙에 들러준 사람들의 방명록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들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작은 마을에서 알베그레를 운영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기억하며 프로그램의 막이 내린다. 이번 여행의 대미를 함께할 마지막 날의 BGM을 고를 때, 나는 문득 스페인 하숙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언젠가 다시 만날 그 날을 고대하며 안녕을 고하는 노래 가사는 스페인 하숙이나, 여행을 마무리하는 오늘에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스페인 하숙에 들러 하룻밤을 보낸 사람들과 같이, 나 역시 유럽여행을 다니며 그동안의 도시들을 스쳐 지나갔던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을 테니까.
이번 유럽여행의 마지막이자 오늘의 여정은 오후 2시 55분에 바르셀로나 엘프라트를 이륙하는 비행기에 탑승해,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서 4시간 경유를 거친 뒤, 밤 9시에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일정이었다. 오늘을 떠나면 2번의 비행을 거쳐 내일(28일) 오후 4시에 도착하게 된다. 이제 유럽여행이란 연극의 마지막 결말을 향해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로 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면 몸이 꿉꿉한 느낌을 받게 된다. 깨끗이 씻어서 그 느낌을 최대한 나중에 받고 싶었다. 샤워 후에는 짐을 정리했다. 어제 한 아름 가득 사 온 선물과, 그동안 여행하면서 구매한 기념품들을 캐리어에 정리했다. 스페인 카탈루냐 와인과 뮌헨 맥주잔은 깨지지 않도록 옷가지에 둘러 충격을 방지할 수 있게 감쌌다. 에든버러에서 구매한 해리포터 노트와 영국에서 구매한 토트넘, 맨유 배지는 구겨지지 않도록 잘 펴서 넣었다. 아버지 선물용으로 구매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구매한 넥타이와 어머니 선물용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구매한 화장품도 캐리어 한쪽에 정리해 넣었다. 캐리어 무게를 고려해 골고루 짐을 분산했다.
짐을 정리하고 나니 사물함 앞에 운동화 한 켤레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의 여행을 함께해 준 운동화와 작별해야 할 시간이었다. 뚜벅이 여행자로서 도시를 두 발로 다니다 보니, 어느새 운동화의 뒤꿈치가 닳아 뚫어질 지경이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여분의 운동화를 챙기긴 했지만, 그래도 나와 함께 했던 운동화에 나름의 애착이 지녔던 것 같다. 새하얗던 운동화가 여행을 다니며 때가 끼고, 밑창이 닳고, 조금씩 낡아지게 되면서 74일 함께한 전우애가 틔이게 된 듯했다. 운동화에 감사했던 마음을 뒤로하고, 더 이상 운동화로서 기능을 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운동화를 비닐에 묶어 쓰레기통에 버리는 걸 끝으로 모든 짐 정리를 마쳤다.
유럽을 떠나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서, 체크아웃하며 호스텔 직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늘 걷던 익숙한 카탈루냐 광장 가는 길에서 오늘은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는 게 실감 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카탈루냐 광장에 도착하자, 공항버스들은 바르셀로나를 떠날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의 미련은 두지 않기로 다짐하곤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
바르셀로나 시내 풍경을 카메라 렌즈에 담기보다 눈에 담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의 개성 강한 건축물을 눈에 담아 기억 속에 저장해두었다. 시간이 지나 글을 쓰는 현재에 생각해보면, 이때 눈으로 풍경을 담는 건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카메라보다는 눈이 더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담아두었기 때문에.
공항 가는 길, 오늘따라 유난히 짧게 느껴졌다.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에 도착하고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 편을 체크 인했다. 비행기 표를 수령하고, 캐리어를 수하물로 부친다. 한껏 무거워진 캐리어를 수하물로 붙이니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한껏 가벼워진 발걸음 위에 집으로 향한다는 새로운 설렘이 보태어진다.
그렇게 바르셀로나로 입국하는 사람들을 사이로 나는 여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여정을 나아갔다.
바르셀로나 엘 프라트 공항에서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에서 파리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렸다. 파리에 착륙할 때쯤 황금빛 저녁노을이 전면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이제 파리에서 4시간 경유하고 인천으로 돌아간다.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서 도착해 한국행 비행기 편을 확인하자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점점 실감이 났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유럽에서의 첫 발걸음을 내딛던 순간에는 오늘이 그저 먼 훗날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74일의 마지막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행 비행기가 사람들을 기다리는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의 게이트 앞에서, 그동안의 여행은 내게 어떤 의미를 남겼는가를 돌이켜보았다.
이 주제를 가지고 시작한 이번 여행에서 나는 과연 마디를 어떻게 채웠을까.
우선 여행을 다니면서 매일 여행 에세이를 쓰는 건 멈추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의미를 되돌아보기 위해 그동안의 썼던 글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74명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여행을 다니던 날마다 느꼈던 감정이 모두 달랐던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가 있었다. 내가 마주했던 '나'의 모습에선 내가 아는 내 모습도 있었고, 내가 알지 못했던 의외의 모습도 있었다. 여행을 다니며 나타난 나의 모습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요새 유행하는 MBTI를 통해 사람의 성향을 정립할 수 있다곤 하지만, ENFJ인 나는 여행하면서 INTJ의 모습이나 ESFJ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나의 모습은 일상에서의 나의 모습과는 달랐다. 어떤 상황에선 소심하기도, 어떤 상황에선 의외로 깡을 선보이기도 했다. 모험을 즐기기도 했고, 편안한 안락함을 택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 가지로 정할 수 없는 '나'를 만나고 왔던 여행이었다.
여행의 마디를 채운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여행을 하면서 하루를 같이 보낸 많은 사람들이 공존했다. 식사시간이나, 투어와 같이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준 사람들부터 마음이 맞아 다른 도시에서 재회했던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나와 맞지 않는 스타일도 있었고, 너무나도 잘 맞는 스타일도 있었다. 내가 작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도 있었고, 내가 큰 도움을 받았던 감사한 은인도 있었다. 여러 분류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 가치관, 인생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된 점이다. 휴가 시즌을 빗겨 온 사람들은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고민과 걱정의 답을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었다.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공유하면서 여행이란 짧은 마디를 채워왔다. 여행에서 마디를 채운다는 건, 스스로 채워가는 부분도 있겠지만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채워가는 부분도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나와의 대화를 하게 된다.
혼자서 장기여행을 하게 되면 혼자가 되는 순간이 많기에 끊임없이 나와의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질문을 하고 답을 구하게 된다. 남들에게 오그라 들어서 하지 못했던 존재의 이유나, 앞으로의 미래, 정말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진솔한 나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특히 앞으로 한국에 돌아가면 해야 할 것들이 많기에, 나에게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서 묻고 답을 내렸다. 스스로 해답을 찾아 결심한 것도 있지만 차차 답을 찾아가야 하는 문항도 있었다. 이런 문항의 답변을 찾아갈 수 있었기에 스스로의 대화가 가치 있었다. 혼자 여행하는 자의 진정한 동행은 언제나 자신임을 잊지 말자. 나와의 대화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 사랑하고픈 것, 인정하기 싫은 것, 인정해야만 하는 것, 용서해야 하는 기억, 감싸줘야 하는 초라한 순간, 그리고 기억하고픈 나에 대하여 알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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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을 하면서 단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이번 74일의 여행은 내게 헛된 여행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여행하느라 써버린 텅장을 메워야 하겠지만, 유럽에서 가고 싶고, 보고 싶고, 먹어보고 싶었던 곳 모두 가보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데 극한의 짠내투어도 해보고, 소매치기도 당해서 초긴축정책을 스스로에게 펼치며 다녀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대신 느리게 걸으며 도시가 지닌 이야기를 온몸으로 받았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지니게 되었으며, 조금은 어른이 된 듯한 알 수 없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짠내투어를 하면서 다니는 게 여행인가라며 반론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의 여행에 후회는 없다. 계획 세울 때의 설렘 그대로 여행을 다녔고, 계획을 마무리하는 지금 조금은 스스로에게 뿌듯하기도 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일상으로 복귀, 냉랭한 현실이 나를 기다리겠지만 그래도 버티면서 할 수 있는 추억을 마련해놓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난 후회 없는 75일간의 여행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 두 달간의 유럽여행이 인생을 바꿨다는 케네디 前 미국 대통령과 같은 여행을 나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여행을 마친 지금 돌아보면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면 20대의 버킷리스트였던 유럽 한 바퀴 일주 여행을 무사히 이루었으니까. 그리고 이때의 경험과 기억은 잊지 못할 테니까.
지난 75일간의 여행을 돌이켜보니 어느새 한국행 비행기 탑승시간이 가까워졌다. 이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국적기인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라타 좌석에 앉으니 모든 게 안도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이제 진짜 여행이 끝이 나는구나"하고.⠀
한 편의 희곡 같던 여행이 끝나고 커튼콜이 올라간다.
언제가 다시 될지 모르겠지만 유럽에 다시 올 순간까지,
안녕,
다시 안녕.
PS.
아직 유럽여행 플레이리스트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보너스 트랙과 Outro도 기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