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정거장은 분노, 분노 역입니다.
상담을 받고 왔다. 아주 추운 겨울날 시작해서 벌써 봄이 되었으니 석 달은 꼬박 받은 것 같다. 살면서 잠깐 잠깐 정신의학과 다니며 뭔가 고쳐보려고, 편해보려고 하다가 그만 둔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꾸준히 상담을 받은 것은 정말 처음이다. 1974년 생, 올해로 쉰한 살인데... 이제서야 1974년부터 2024년까지 샅샅이 톺아본다. 나도 모르던 나를 계속 알아가는 중이다.
선생님한테 배운 가장 큰 것은 바로 감정 버스 하차시키기. 살면서 화가 나는 일이 왜 없겠나. 상담을 시작하던 무렵에는 페이스북에서 실명 저격도 한 번 당해보고, 어떤 사람에게 전화로 고래 고래 핀잔도 받았었다. 내 입장을 설명을 하려고 해도 안 듣겠다고 했다. 답답하고 억울했다. 이 감정이 꽤 오래 갔다.
1단계. 화가 나는 나를 인정하고 보듬어주기.
선생님께, 그리고 내 친구 한 명에게 이 감정을 고백했다. 그리고, 선생님과 친구는 정말 진심을 다해서, 그리고 실질적인 대처 방안을 제안하며 지지해주었다.
2단계. 그 감정을 내 감정 버스에서 하차 시키기.
선생님과 친구의 지지가 이 감정을 내가 계속 가져갈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고, 당당히 버스에서 하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시간은 오래 걸렸다.
3단계. 역지사지.
그 감정이 내리고 나니 빈 공간이 생겼다. 이런 것들 다 이론적이고 도식적인 것 같지? 아니다. 정말 마음에 빈 공간이 생겼었다! 그리고 다소 홀가분해졌었다. 그러니까 안 보이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 내 이름까지 써가며 포스팅을 했었는지, 왜 통화좀 하자며 전화를 했었는지... 그리고 그분들의 입장이...
물론 옛날의 나였다면 빡쳐서 역공격 펼치고 온갖 날카로운 단어와 벼린 문장들(인 척 하며)로 실명 저격 하고 염병을 떨었을 테지만, 3단계까지 오니 그분들께 그럴 순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럴 순 없었다.
진심을 다해 거칠지 않고, 스스로 너덜거리지 않는 마음으로,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귀한 시간을 내주시는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