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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pr 11. 2024

안 괜찮았네요, 저...

'괜찮아, 괜찮아' 앵무새처럼 계속 되뇌는 당신에게 

2주 만에 선생님을 만나서 상담을 했다. 그동안 선생님은 정말 근사한 터키 여행을 다녀오셨는데,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정말 재미나게 종달새처럼 알려주셨다. (선생님이 가끔 이렇게 종달새가 되면 탤런트 김정은의 젊은 시절 같이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할 차례. 그 보름 동안 나의 생활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일 큰 것은 4월부터 매일 아이 수영장으로 출퇴근한다는 것 그리고 작은 걱정 하나가 온통 내 삶을 뒤흔들어 놓았던 일도 있었고... 어제는 sns에서 잡음이 조금 있었지만 내 사는 것 바빠 죽겠는데 그 사람들까지 신경 쓸 겨를 없다는 생각에 그냥 지나가려고 꾹꾹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제가 올린 글 하나가 뭐 그렇게 큰일이라고 득달같이 와서 마음 아프게 하는 댓글 남기고 떠나가고, 또 다른 사람 시켜서 내 글 염탐하게 하고... 정말 지긋지긋해요. 그런데, 괜찮아요. 제 인생에 별로 도움 되는 사람들 아니고, 중요한 사람들 아니니까요."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잠깐! 하고 끊으셨다. 이유는 '괜찮아요.'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끝까지 하지 않고 계속 괜찮다고 하면서 중간에 잘라버린다는 것이다. 앞뒤 말이 맞지 않는다는 것. 지금 내 마음은 지긋지긋하다고까지 했는데, 그런데 괜찮다니? 나름대로 마음을 정리하려고 서둘러 닫아 버린 것이 바로 '괜찮아요'로 나온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요즘 많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면 선생님께 미안해졌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상담해 주시는데, 살기 힘들다니... 그래서 말하다 끊고, 말하다가 끊으면서 모든 건 다 괜찮다고 깨끗이 정리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러나 나는 괜찮지 않았다. 하루를 1,2,3부로 쪼개어 살고 있었다. 하루 12시간을 넘게 활동을 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열심히 독서하고, 공부하고, 일어나 버스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뭐 이런 것 가지고... 이 정도면 괜찮은 거다. 행복에 겨운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매일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를 생각해 보니까 안 괜찮았다. 우리 집 18평인데, 크지도 않은 집에서 동동거리며 뛰어다녔다. 커피 한잔에 여유 가지고 포옥 쉬면서 마실 시간조차 없어서 빨래 개면서 오디오북 들으며 마시고, 아점도 대충 밥하고 찌개 떠가지고 서서 먹었다. 그 와중에도 시간 아까워서 공부 삼아 보는 드라마를 쪼개어 봤다. 이런 것, 내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 오케이였다. 운명아 올 테면 와라. 

그런데, 새벽 시간, 잠에서 깨는 시간이 너무 두려웠다. 꿈에서 깬 후에는 머릿속으로 오늘 할 일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떠올랐다. 뭐, 뭐, 뭐... 그리고 또 뭐, 뭐, 뭐... 아무래도 하나도 잘 못할 것 같았다. 하나라도 펑크 나거나 시간이 안 맞으면 안 되는데... 게다가 이 방에서 나가면 밤새 아들이 마루를 어질러놓았을 것만 같다. 불안하다. (왜 집안이 어지러운 것이 나는 이렇게 불안한 지 모르겠다) 이렇게 매일 아침을 열었다. 잠이 모자라면 이 불안감은 더했다. 


"안 괜찮았네요, 저..." 


드라마라면 이 대사가 나간 후 바로 여배우들이 고개를 툭 떨구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현실에서는? 턱을 발발발발 떨면서 눈물을 쏟았다. 참 안 예쁘게... 지금의 내 삶, 나 아니면 백업이 없다. 내가 어디론가 일주일이라도 사라지면 집안은 엉망이 될 것이다. 명명백백하다. 선생님은 내 감정이 그 상태가 아닌데, 왜 내가 함부로 버릇처럼 '괜찮다'라고 이야기하냐고 다정하게 물으셨다. 이렇게 내 감정을 내가 몰라주면 이 감정이 버스에 올라탈 수나 있겠냐고 말이다. 얼른 감정 버스에 올라타서 당당하게 하차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중간에 차단을 해버리면 어떻게 하냐면서. 


내가 나를 안아주기. 오늘 상담에서 얻어온 큰 선물이다. 실제로 두 손으로 안듯이 팔을 안아주면서 다독다독하면 심리적으로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던지는 선생님의 짓궂은 농담 한 마디. 


"요즘 누가 나 안아줄 사람도 없는데, 나라도 안아줘야지."


그러게다 말이다. 누가 나를 꼭 안아준 기억이 멀다. 



오은영 박사의 금쪽 상담소에서도 맨 마지막에 처방이 나가는데, 오늘 우리 선생님도 나에게 처방을 내려주셨다.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 때, 어떤 일 하나로 안 좋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 내가 상상하는 한 가장 좋은 미래를 상상해 보기. 엄마로서의 나, 작가로서의 나,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친구로서의 나, 그냥 나... 모두 구체적으로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매일 이렇게 세 시간씩 힘들게 운동하는 혜성이가 다음 달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활짝 웃었으면 좋겠다. 나중에는 국제 장애인 수영대회 출전하러 나랑 둘이 비행기 타고 가면 그것만 한 신나는 일이 없겠다.

나도 지금 쓰고 있는 드라마 잘 돼서 다 끝나고 포상 여행 떠나러 공항에 다들 모였으면 좋겠고... 연말에 시상식이 있어서 예쁜 블라우스에 바지 맞춰 입고, 메이크업받고 있는 상상을 하니 가슴이 콩닥거린다. 

상상이야 내 마음이니까... 겸손하게 상상할 필요 없지.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들, 가깝거나 먼 미래에 벌어질 가장 신나는 일을 하나씩 상상해 보시길. 그리고 여기에 그 상상을 댓글로 하나씩 남겨주시면 예쁘게 박제해 드리겠다. ^^ 우리 모두 이 글 성지글 되게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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