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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May 18. 2024

아들의 첫 수영 시합 여행기

돌고래 일기

지난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4박 5일간의 전남 광양 시합 여행. 정식 명칭은 '전국장애인학생체육대회'다.
수영 종목에 나간 아들 혜성이는 초등학교 자유형과 접영 모두 결선에 진출했고, 자유형 7위, 접영 5위로 대회 마무리. 결선에 오른 모든 친구들이 아이보다 한 2-3살은 많은 데다가 처음 출전한 전국 대회라 대견하다.


장장 6시간 운전하고 좀 전 돌아왔다. 대회 내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나도 한 1-2킬로 빠졌을 것 같다. 힘들다. 그러나, 진짜 많은 것 배우고, 느끼고, 즐기다가 왔다.

<배운 것>

1.

수영 시합 신청할 때에도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 그래봤자, 아직 우리 혜성이는 주종목이 접영이고, 그다음이 자유형이고, 아직 대회 막내뻘이라 50M 나가야 한다. 이번에도 자유형 50M를 신청할 때 누락해서 속이 많이 상했었다.

2.

대회 당일에는 웜업하고 결승까지 갈 것을 생각하고 수영복 3개, 수건 3개는 들고 나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탑투토 워시 돌돌 감을 커다란 비닐 2개 필수. 하루에 수영복을 세 번 갈아입을 것 준비.

3.

경기할 때 같은 팀 엄마들, 혹은 다른 소속이어도 아는 엄마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본다.  '내 새끼' 나가는 시합을 내가 직접 촬영하면 동영상의 퀄리티가 박살이 난다.  소리 지르랴, 한숨 쉬랴, 심장 부여잡으랴... 즉, 촬영 품앗이를 해야 함. 단, 다른 엄마들은 너무나 객관적으로 수영장을 펼쳐서 찍는 경향이 있다. 남의 자식 시합도 최선을 다하여 고퀄로 서비스할 것.

<느낀 것>

1.

혜성이가 정말 많이 예민한 아이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자기가 불안해하는 요소를 다른 비장애 친구처럼 말로 요청하고 해결하기가 어려우므로 주변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불안 요소는 '수모'.  머리에 물을 묻히고 쓰는 루틴이 있는데, 물을 묻힐 환경이 어려운 지경이라 그런 것이다. 샤워실에서 물 묻히고 나오라고 했는데, 아마 다른 선수들이 샤워를 하려고 줄을 서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생수병을 하나 쥐어주고, 수영 모자에 물을 묻히고 쓰라고 하면서 연습을 몇 번 했더니 모든 불안감이 사라졌다. (유튜브로 남자, 여자 수모 쓰는 법 완벽 총정리 해주신 정유인 선수 감사^^)

이번에도 냄비, 프라이팬, 평소 쓰던 수저 다 가져갔는데, 역시나 편안해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녹초가 된 것... 삼 시 세끼 다 해 먹이는 것 보통 일 아니다.

2.

수영은 길게 보고 오래 해야겠다는 생각. 일희일비하지 말고 즐기는 것이 포인트인데, 그게 잘 안 된다. 인간인지라...  사실 이번 대회 '결승 진출'이 목표라고 겸손한 척 지랄하며 공공연히 얘기했는데, 뻥이다. 미안하다.

이름처럼 혜성같이 나타나서 4학년 막내가 형아들을 제치고 메달을 따는 상상을 했었는데, 안 됐다. 대신 내 '진짜' 목표는 자유형이나 접영이나 5위였는데, 이뤘다. 됐다. AD 카드 받은 것은 정말 하나하나 다 모아 걸어 놓을 생각이다. 이 모두 혜성이의 역사니까.



3.

매일매일 혜성이 수영 가르쳐주시는 이태원 JH 클럽 이준하 선생님 존경합니다.

서울 팀 감독님과 코치님이 어제는 저녁 드시면서 이 이야기를 하셨단다. 혜성이 '수영 참 잘 배웠다'라고. 다섯 살 때 운동 시작한 이래 잘못 든 습관, 영법 다시 배우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4월에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두 달째. 진짜 놀라운 광속의 발전이다. 이준하 코치님 덕분이다.

<즐긴 것>

1.

경기 없는 날, 혜성이랑 둘이 광양 관광했다. 진짜 너무나 기가 막혔던 광양 와인 동굴. ㅋㅋㅋㅋㅋㅋㅋ 동굴을 다시 와인 테마 파크처럼 만들어 놓은 건데, 들어가면서 계속 웃었다. 너무 기가 막혀서.... ㅠㅠㅠ 바로 옆에 에코 파크가 있어서 들어가려고 했더니 직원이 오늘은 친구들이 없어서 재미없을 거라며 들어오지 말라고 저지(?)했다. 더 웃겼다. ㅋㅋㅋㅋㅋ


2.

첫날, 자유형 100M 경기 마치고 같이 운동하는 누나랑 이모랑 넷이 식사. 엄마들은 이날, 너무 취했던 터라 다음 날 조금 힘들었다는 후문. 그래도 이날 다 같이 넷이서 '화이팅!' 외치면서 건배를 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나 보다. ^^

3.

나 홀로 순천 여행. 날씨는 별로 안 좋았는데, 순천,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다. 향후 차박지로 내 마음에 픽. 이날 와온 해변에서 차박을 너무 하고 싶었는데, 아아... 그놈의 파카를 놓고 왔다. 요즘 같이 차박 하기 좋은 날씨가 어딨다고. 그래도 새벽에는 두터운 파카가 있어야 한다.



4.

전라남도에서 체전에 신경 많이 쓴 것이 고마웠다.

오늘은 마지막 날, 아침 10시 웜업 마치고 10시 30분 첫 경기 시작하기 전까지 레크리에이션 오빠야를 모셔서 한 25분간 진짜 광란의 도가니가 되어 재미나게 춤추고 놀았다. 경품까지 마련하고... 다들 한마음이 되어 싸이의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평생을 웃게 해 줄게요~ 떼창 하고, '마지막 승부'를 쬬! 쬬! 소리 지르며 노래 부르는데 전광판에는 10분 뒤 아들 경기한다고 이름 뜨고....  마지막 날 첫 경기가 혜성이의 경기였다.

5.

메달을 따면 부상으로 마스코트 인형을 받는데, 오늘은 2관왕 한 서울 팀 고등학생 형아가 혜성이한테 인형 하나 선물로 줬다.  야호! 나는 이 인형 받을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웬 횡재! 혜성이도 이 인형 받고 싶었는지, 너무너무 좋아한다. "예쁜 치마를 입은 귀여운 여자네." 이러면서... ㅋㅋㅋㅋ (플러팅 용어가 잔뜩 들어간...)


6.

비장애 선수들은 고등학교쯤 되면 부모님들이 선수만 내보내고 마는데 장애인 대회는 조금 다르다. 지난번 충북 대회에서도 성인인 이인국 선수 어머니를 만나기까지 했다. 이렇게 오래 아들 따라다니면서 여행하는 것도 재밌겠다 싶다. 이인국 선수는 장애인 수영계의 거의 박태환 급 스타선수다. 그때 어머님이 내게 해주셨던 말씀이 있다.

"아들 국제 대회 나갈 때 함께 나가면서 여행하는 것 재밌어요. 내 돈 안 들고 너무 좋지. 운동 잘 시켜봐요."

이것 참 좋군.



그동안 너무 아들 수영 얘기, 대회 얘기 많이 해서 지루하셨을 것도 같은데... 응원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불륜과 사랑과 달빛과 삶의 퍽퍽함, 그리고 돈의 무정함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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