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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un 11. 2024

발달장애아 성교육 강의를 듣고

오늘 오전 10시 부터 백미옥 선생님의 발달장애아 성교육 강의를 들었다. 어제 수영장에서 어떤 아저씨한테 '모지란 애' 소리 들었던 것이 생각이 나기도 하고, 내가 혜성이에게 무심코 했던 말과 행동들이 얼마나 불안했을까 미안해서 눈물이 나는데 꾹꾹 참았다. 뭘 또 강의를 들으면서 우나 싶어서 말이다. 몇 년 전 혜성이 유치원 다닐 때도 교육받다가 늘 경험했던 건데, 누구 한 명 울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된다. 


성기나 가슴, 혹은 타인의 몸을 만지는 등의 행동을 보이면 "이건 안 돼! 하지 마!"가 아닌 그 행동을 대체할 만한 다른 것으로 슬기롭게 유도해야 한단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왠지 정면 돌파가 어려웠다. 나는 그동안, "어? 지금 혜성이 어디 만지고 있어요? 헐~ 지금 고추 만지는 건가요?" 이렇게 장난스럽게 넘어갔었는데 '고추'라는 단어도 쓰지 말고 제대로 성기 이름을 말해줄 것. 

그리고, 유독 감각이 예민해서 용변을 볼 때 꼭 아랫도리를 훌렁 다 벗고 난 다음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제 우리 혜성이한테도 '어리니까' 하면서 그냥 넘어가지 말고 꼭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벗고 용변을 보라고 일러주어야겠다. 혜성이는 예민해서 학교에서는 대변을 본 적이 없긴 하지만, 어떠한 상황이 닥치든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은 줘야 할 것이다. 


발달장애아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친구들이라 '거부'의 경험이 많다. 그리고 늘 억울하다. 그러지 마, 안 돼, 가만히 있어, 앉아 있어... 이 모든 단어들이 아이를 묶어놓고, 눌러놓는 것들... 얼마 전에는 혜성이가 나한테 장난을 치다가 발로 쿵! 하고 내 턱을 걷어차서 혀에서 피가 뚝뚝 흐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얼마 전에는 장난치는 엄마를 저지하다가 팔을 쳐서 멍 들게 한 적이 있다. 덩치 큰 아들인지라 이제는 힘으로 감당 안 되는 때가 오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다시는, 장난이라도 사람 때리지 말라고 눈물 쏙 빠지게 혼을 냈었다. 강의 듣다가 그만 그때 생각이 나서 1차 눈물 주의보. ㅠㅠ 

혜성이는 사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나를 '때린 것'은 아니었다. 장난 치다가 내가 세게 맞은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다른 데 가서도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혼을 낸 건데... 많이 미안했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 짜리 다리... 우리 아이는 장애가 있어요." 

영화 <말아톤>의 지하철 장면이 나한테는 수시로 떠오른다. 얼룩말 무늬 치마를 입은 여성의 엉덩이를 그저 초원이는 얼룩말로 생각한 것이다. 갑자기 성인 남자가 다가와서 엉덩이를 만졌으니, 여성은 얼마나 놀랐을까. 나는 지금까지 그런 꼴 안 당하게 하고 싶어서 제지하고, 꺾고, 안 된다고 소리치고, 늘 마음 졸이며 살아왔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아이랑 지하철 타는 것이 제일 힘들다. 잠시도 가만히 안 있는 혜성이가 다른 사람들한테 폐라도 끼칠까 두렵기도 하고, 지하철 소리를 빠짐없이 다 입으로 소리내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여서 말이다. 우우우웅~~~ 끼이이이익~~~~ 발빠짐 주의, 발빠짐 주의..... 디스스탑 이즈~ 영어방송 나오는 것까지다 맨입으로 따라한다. 신기할 정도로 따라한다. ㅋㅋㅋㅋ 


여하튼 내가 혼쭐을 내던날 밤, 혜성이가 나한테 오더니 이야기했다. 

"혜성이는 아쉬워. 아쉬워... 혜성이는 안 때렸어요."

여기에서 '아쉽다'라는 표현을 쓰다니 귀여웠다. 역시 꼬마 시인들이야!  얼마나 억울했던지 아빠랑 자면서도 계속 혜성이는 안 때렸다고 반복하더란다. 내가 멍들고, 피가 난 것만 생각하고 그렇게 혼낸 것이 마음 아프다. 

자, 그렇다면 오늘 배운대로 한다면... 

"혜성이가 그렇게 세게 팔을 흔들고, 발을 휘두르면 엄마는 피가 나. 그리고 굉장히 아파."

이렇게 이후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기. 


그리고, 혜성이도 엄마도 각자의 몸이 소중한 것이니 선을 긋고, 거리를 둘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엄마니까 하고 함부로 뽀뽀하고 달려들어 안아주고, 에유~ 더럽다고 막 욕실 들어가서 씻기고... 이런 것 하지 말기.사실 내가 멍든 것도 장난으로 뽀뽀하려다가 그 사달이 난 거였다. 앞으로 혜성이랑 살아나갈 길이 멀다. 그래도 오늘 아침에는 나보고 계속 잠을 자라고, 혜성이가 다 알아서 학교 갈 준비할 거라며 가방 챙겨가지고 나갔다. 물통, 숟가락, 수영복에 숏핀, 패들까지... 게다가 시간은 얼마나 잘 지키는지, 집에서 정확히 8시 19분에 나간다. 1분이라도 늦으면 난리난다. 

강의 듣는 내내 혜성이가 보고 싶었는데, 오늘 운동 끝나고 돌아오면 뽀뽀... 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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