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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ug 08. 2024

여름 글짓기 교실을 열었습니다

더워 죽는 나날 속의 글공부

뜨거운 여름...
학생들은  여름 방학을 맞이해서 다들 학교에 가지 않지만, 어떤 곳은 '글공부'를 가열차게(아아... '가열하게'가 맞다고는 하는데, 내 입과 손은 영 성에 차지 않는다. '가열차!고' 싶다) 하고 있다. 사실 거의 글공부 선생님 혼자 원맨쇼를 하며 멱살 잡고 끌고 가는 모양이기는 하지만...
그 원맨쇼를 해대는 글공부 선생님은 나다. 그리고 내가 사는 서울에서 조금 먼 곳까지 차를 끌고 다니며 일주일에 한 번씩 네 번을 간다. 한 기관의 의뢰를 받아서 보육원의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 교실을 연 것이다.
당연히 어른들의 글쓰기 교실과는 분위기가 하늘과 땅 차이다. 어른들은 글을 쓰고 싶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 돈을 내고 걸음 한 것이고, 아이들은 그냥 방학 때 학교도 안 가고 원 내에서 빈둥대며 그냥 남느니 이렇게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돌리려는 선생님들의 배려로 '끌려' 온 것이다.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줄이라도 새로운 생각, 싱싱한 문장을 건질 때의 그 꿀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른들에게는 집에 가서 글을 쓸 수 있도록 숙제를 내 드리는데, 아이들에게는 '숙제는 안 해온다'는 것을 디폴트로 깔고 수업을 진행한다. 숙제를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신 수업 시간에 종이와 연필을 준비해서 다만 한 문장이라도 스스로 써본다. 내가 "시작!"을 외치고 조용히 글을 쓰는 그 시간도 함께 느껴보면 고요하고 좋다. 그런데도 참 그 한 문장도 잘 안 쓰는 아이들이 몇 있기도 한다.

어제의 두 번째 글 쓰기 미션은 어린 시절 이야기 써보기였다. 심심해도 좋고, 슬퍼도 좋고, 아늑해도 좋다고 했다. 특히 한 책상에 쪼로로 앉아 있는 녀석들 세 명, 죽어도 배배 꼬며 안 쓰려는 걸 단 한 줄만이라도 쓰라 해서 그중에 한 명이 이렇게 겨우 쓴 것이다.

- 누구한테 맞은 거야?

- 퇴소한 형들한테요.

- 에구… 왜 맞아.

- 맞은 기억 밖에 없어요. 맞아야 돼요.

- 응? 왜 맞아야 돼?

- 이겨먹을라고 하믄 뒤지야 돼요.


조용한 남자애가 갑자기 목소리가 커져서 하는 말,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이겨먹을라고 하믄 뒤지야 돼요.

명언이다. 한껏 칭찬했다.


어제는 수업하고 나서 5시간을 운전해서 서울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내내 또 한 명의 아이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고2, 남자아이이고, 우리 딸보다 한 살 어린 아이다. 두 시간 수업 시간 계속 게임만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그 개구쟁이 3인방 중 한 사람. 그래서 아이들이 혹시라도 글 쓰는 시간,  재미없어할까 봐 퀴즈나 빙고 게임까지 준비해서 갔는데도 계속 핸드폰에 코를 박으며 게임하고 수업을 방해하는 친구였다. 전화 오는 것 다 받고...


- 나는 다 맞은 기억 밖에 없어요. 쓸 게 없어요.

그래서 나도 그렇다고 했다. 진짜 엄마한테 많이 맞았으니까... 그리고 우리 때는 다 맞고 자랐으니까....

- 선생님도 많이 맞았어. 진짜 그 기억이 많네.

그러면서 나는 오른손, 지난 6월에 다친 것이 아직 계속 아프고 낫지를 않아서 주먹 잘 쥐어지지도 않는데 주먹 쥐고 아이한테 내밀었다. '퉁 쳐줘' 하고... 그랬더니 갑자기 내 손을 잡는 것이다. 두 손으로...
클 태, 별 성....

'큰 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온 아이. 과연 키가 벌써 한 180은 된다.

집으로 돌아와서 '보육원'에 어떤 아이들이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계속 검색했다. 역시 고아원이다. 이름만 바뀐 것이다. 함께 사는 선생님들을 '이모',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산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방에 다섯 살짜리 꼬마들도 언니, 형아들하고 함께 자는 모양이다. 게다가 기가 막히게도 보육원은 지역에서 기피 시설인지라 산중 깊숙이 박혀 있거나 인적이 아주 드문 곳에 위치한다. 이것이 내가 그렇게 먼 곳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지 못하고 차를 애써 가지고 다니는 이유다. 게다가 껑충 높은 곳에 있으니 다들 언덕이 가파르다. 방학이 끝나면 아이들은 매일 학교에 다닐 텐데 정말 이렇게 높은 곳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버스나 많이 다닐까 싶었다.  제일 중요한 자립문제... 이 아이들은 나중에 어떻게 자립해서 살까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고...

계속 그 큰 별, 아이가 생각이 난다. 게다가 눈은 핸드폰에 가 있으면서도 퀴즈는 얼마나 잘 맞추던지... 똑똑하기까지 한 아이다.

- 선생님도 자라면서 진짜 많이 맞았어.

그랬더니 게임하다가 바로 내 손을 잡아줬다. 아마 주먹을 내미니까 잡으라는 이야기인 줄 알고 잡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 손을 잡아주던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보육원' 검색을 하면서 나무위키 보니까 조금 화가 난다. 아이들이 얼마나 밝고 현실적인데... 다들 어떤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집을 얻고, 저축을 할 것인지 생각하면서 자라는 아이들이다. 물론 그렇게 현실 대책을 미리미리 세우는 법을 보육원에서 자체적으로 혹은 나처럼 외부 강사를 초빙해서 미리미리 가르쳐주기도 하겠고(실제로 어제는 컴퓨터 설치하면서 교탁 안에서 '자립'에 관한 브로슈어를 발견했었다), 차차 성장하면서 부모님, 혹은 보호자가 안 계시다는 것 때문에 본능적으로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이런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그 따위로 범죄, 자살 이런 어두운 이야기만 가득 채워 놓았는지…

그나저나 아이들 정이 많이 드네. 다음 주가 마지막 강의다. 이럴 때는 적당히 정 주고, 열심히 강의하고, 깨끗하게 뒤돌아오면 된다고 들은 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찢어질 때에 찢어지더라도 사랑도 잔뜩 주고, 있는 동안 신나게 지내고 오는 게 최고라는 마음으로 간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실은... 정작 아이들은 별생각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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