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하의 작품을 보고...
눈물의 표면장력. 이목하의 작품. 페이스북에서 이 그림을 발견하고는 이목하가 누구지... 하고 찾아보다가 인스타 들어가서 정말 반해버렸다.
보석 같은 순간을 포착하고, 지나간 것의 해괴함, 괴이함, 초라함을 안아 확대하고... 화가는 손으로 그림만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연마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사진가도 마찬가지.
지금 그림 안의 여자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상상해 봤다. 갑자기 30대 젊은 시절, 회사에 다니면서 직장 생활하던 때가 떠올랐다. 한 마디로 참 답 없던 시절. 나는 철이 아주아주 늦게 들었던 터라, 나의 젊은 때를 생각해 보면 거의 무뇌아 수준, 머릿속에는 우동사리나 가득 찬 수준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요즘 오디오북으로 한참 듣고 있는 <세이노의 가르침>에서는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20대, 30대에 들으면 좋을 이야기들이 그야말로 매 줄마다 우르르 쏟아진다. 운 좋게 타고나서 어쩌다 태어났는데 엄마와 아빠가 재벌, 준재벌 급이어서 대기업이나 유서 깊은 사업장을 물려받는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맨주먹으로 우뚝 일어선다. 아니다, 우뚝이나 일어서면 말이라도 안 하지, 요즘은 더더욱 취직하기도 어렵다고들도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덜컥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대학 시절에 공부를 잘해서 간 거냐? 그것도 아니었다. 계속 딴 데(뭐겠는가? 연애지...)에 정신이 팔려서 과가 법학과, 엉덩이로 공부한다는 법학과인데 좋은 성적을 거둘 수가 없었다. 뿐인가. 지금이야 구두쇠가 다 되었지만 그때는 씀씀이까지 헤프고, 여우 같은 사람이 못 되는 지라 연애에 적잖은 돈이 깨져서 늘 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그렇게 알바는 알바대로 해야 할 형편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비장하게 다음 학기 학비를 버느라 학업에 열중할 수 없었다는 그간의 나의 핑계는 말 그대로, 조금은 화려한 크림이 얹힌 컵케잌과도 같은 핑계고, 노느라 일하느라 공부 못했다. (그렇다고 아주 신나고, 재미나게 논 것도 아닌 것이 내 젊은 시절의 안타까운 점이다...) 그나마도 중간에 그만두고 여기저기 면접을 봐서 당시 붐일 일었던 '벤처기업'이라는 데에 들어갔다.
다시 <세이노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서... 세이노는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할 것이며, 깊게 집중적으로 들이 파라고 당부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 같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고 여기며 앞으로 더 좋은 일, 나에게 맞는 일이 올 것으로 희망을 걸고 지금 하는 일을 설렁설렁 넘긴다는 것이다. 개소리하지 말라고 일갈한다. (실제로는 더 정제되고 찰진 욕설도 나온다만...)
커피 심부름을 시키면 '내가 이런 일이나 하려고 회사 들어왔나' 하고 입이 댓 발 나온다는데, 천만에... 원두의 종류를 구분해 내고, 더 좋은 향을 머금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 내리는 방법을 달리 연구해 보는 것도 나름의 일하는 방법이다. 그냥 커피를 찻잔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따끈한 물로 국밥 토렴을 하듯 잔을 데우고 난 후 따르면 향이 더욱 좋단다. 게다가 믹스 커피도 그냥 물 부어서 젓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따뜻하게 데운 잔에 믹스 커피를 붓고 물을 조금 넣어 뻑뻑하게 녹인 뒤 적절한 양의 물을 더 붓는 것이다.
나는 무슨 커피 하나 타는 것 가지고 이렇게 유난인가, 그래도 노인네, 이 정도까지 들이 파라는 예시를 들어주시느라 그런 거겠지 하고 참고 들었다. 그런데, 그 뒤에 따라오는 심화 과정이 더욱 놀랍다. 커피를 타서 내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취향을 모두 기억을 하고 메모를 해두는 것이다. 아아,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 메모를 탕비실에 떡 하니 붙여야 한다. 그래서 내가 없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커피를 탈 때 더 묻지 않고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커피 심부름, 전격 파고들기의 최후, 지구 내핵 단계란 것이다!
이런 근성과 일머리들이 내게는 너무도 없었다. 두 번째 직장에 들어갔는데, 팀장이라고 어떤 무섭게 생기고, 얼굴만큼이나 심술이 덕지덕지 발린 것 같은, 잘난 척 드럽게 하던 여자가 조금씩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여자가 회사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 사정을 일절 봐주지 않았던 것뿐만이 아니라 더한 페널티가 주어진 다음 출발선에 섰었다. 업무 시간에 집에서 온 전화를 받는다고? 바로 "무슨 일이야?"로 되돌아왔다. 팀 꼴랑 두 개 있는 작은 회사, 팀장이 당시 30대 중반 노처녀로 양대 산맥을 이뤘던 우리 회사의 히스테릭한 분위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더더욱 문제는 그 팀장을 데리고 외부 미팅을 다니면서 각별히 아끼던 부장님이 계셨다는 것. 신입인 나에게 부장님이 물으셨다.
"PPT 좀 할 줄 아나?"
이 부장님이 외부에서 미팅을 하고 돌아오면 그쪽에 제출할 사업 기획서를 펜으로 슥슥 그어서 날 준다. 그러면 당연히 막내인 내가 그것을 PPT로 예쁘고 깔끔하게 만들어서 보내드렸어야 했다 보다. 그걸 몰랐던 거다. 이 바보 멍텅구리가!
"아니요."
그날부터 나는 팀 왕따가 되었고, 팀장의 구박은 이제 눈에 띄게 거세어졌다. 물론 그 회사에서 일도 잘 주어지지도 않았다. PPT도 못하는 막내 직원, 뭐에 쓸모가 있단 말인가. 요즘, 트위터 같은 데에서 우스개로, 회사 가서 절대 할 줄 안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엑셀'이라는 말이 돈 적이 있었다. 이건 개그니까 그렇지, 아무리 내가 입 꾹 다물고 엑셀 할 줄 안다고 말 안 해도, 시키면 까야하는 게 직장이다.
그 뒤로 나는 집에 일을 가지고 가서 복습과 예습을 하기 시작했다. PPT, 엑셀 등도 따로 배우기는 했는데, 내 대가리로는 도무지 쉽게 익혀지지 않았다.(지금 PPT는 상당히 수준급으로 다룰 줄은 안다... 그러나, 인생무상, 상전벽해... 수많은 다른 툴들이 나와서 뭐 딱히 필요하지는 않아 보인다)
"회사가 돈 받고 공부하는 데야? 언제까지 익히기만 할 거야."
"미련하긴... 일 끝나고 집까지 일을 싸들고 가다니..."
이런 이야기들을 수없이 들으며 비운의 사회 초년생 시절을 보냈다. 아니, 초년이고, 중년이고, 말년이고 간에 나는 사회생활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 입안의 혀처럼 구는 거 딱 질색인 데다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계발을 하고, 하다못해 통번역 학원도 다니는데 나는 빨리 일 끝나고 나가 맥주 마시고 싶었다. 그런 세월들이 쌓여 이렇게 반백 살이 되어서야 조금 사회에 눈을 뜬 멍청한 원인이 된 것이다. 게다가 거센 인생 팔자까지 겹친 터라 안 그래도 판단력이 느리고, 흐린 내가 인생 폭풍까지 처맞으니 더더욱 안 좋은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인생 나 혼자만 열심히 애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좋은 부모'는 내가 고를 수는 없지만 '좋은 사장'을 알아보는 눈은 길러야 한다. 즉 내가 노력하면 하는 만큼 알아보고 그에 대한 보수를 정당하게 지급할 줄 알며, 사장 혼자 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그때 바로 나를 발탁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품이 넉넉한 성정의 사장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고 세이노는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걸러야 할 사장의 요건 몇 가지를 주욱 나열해 주는데, 들으면서 계속 "아, 참.. 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의 사회생활에서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비루한 인물들이 줄줄이 떠올라서 말이다. 물론 저 위에서 이야기한 팀장과 부장 선물 세트도 포함된다. 이도 내 책임이다. 무조건 돈이 급해서, 당장 다음 달 월급이 없으면 생활이 안 되니까 무조건 면접 봐서 OK 전화 온 데부터 갔으니 내가 '사장 볼 눈'을 기를 수야 있었으랴.
"소설 『향수』에서 밀란 쿤데라는 nostos(귀환), algos(괴로움)라는 어원을 들어 그 고통을 노스탤지어(nostalgia)라고 했다."
오늘 오전 읽었던 페이스북 글 중에 유난히 마음에 맴도는 구절이다. 노스탤지어는 '고통'이구나. 기억은 날 것이고, 추억은 발효된 것이라는 소설가 이문재의 문장도 지나간 것에 대한 기본값은 행복함이 아니라 날카롭고 매운 것이 아닐까 한다.
이목하의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저 그림의 주인공만큼 어렸던, 그때의 내 모습들이 영화 트레일러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날들의 실수, 모자란 점들, 거짓으로 가려왔던 것들을 이제야 조금씩 인정하게 된다. 회사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 노력은 하는데 잘 안 될 때, 심지어 어디에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헤매던 나의 젊은 날... 회사 퇴근은 하면서도 뒷 마음이 찜찜해 괜스레 눈물이 나던 날의 기록이다. 그림 한 점으로 이렇게 깊은 기억의 우물을 긷게 되니 예술의 힘은 대단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지금 걸려있다고 하니, 시간 내어 가봐야겠다.
SeMA 옴니버스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
20240822-20241117
여기서... 그냥 해본 쓸데없는 또 다른 생각. 왜 사람들은 멋진 그림을 보면, "와! 사진 아닌가요? 사진 같아요!"라고 탄성을 지르고, 근사한 사진을 보면 "이거 그림 아닌가요? 완전 그림이네요!"라고 놀라워할까.